제주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제주 출신인 이승용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해 검찰에 입문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준표 전 국회의원 등과 사법시험 동기다.
이 변호사는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하다 1992년 고향인 제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제주에 내려온 지 7년만에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1999년 11월5일 오전 6시48분, 양아무개씨(27)는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옛 체신아파트 입구 삼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어스름이 걷히자 주차돼 있던 소나타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양씨는 조심스럽게 차 안을 들여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승용차 안에는 한 남성이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에 고개를 숙인 채 숨져 있었다. 그는 바로 제주지방변호사회 소속 이승용 변호사(44)였다. 양씨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경찰과 119 구급대가 도착해 보니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로 가슴(심장)과 배를 3차례나 찔리고 왼쪽 팔꿈치 부분은 흉기에 관통당한 채였다. 운전석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차량 밖 도로에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출혈이었고, 왼쪽 팔꿈치 부분의 관통상은 방어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 변호사는 차량 밖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렸고, 이를 피하기 위해 차량 안으로 들어와 운전대를 잡으려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변호사의 오른 손에 차량 열쇠가 쥐어져 있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이 변호사는 정장 차림에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차량 안에서 없어진 물품은 없었다. 현금이 든 지갑과 소지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일반 가정이나 식당 등에서 일반인이 사용하는 종류와는 달랐다. 살해 수법도 급소인 가슴(심장)을 찌르고 배와 팔 등을 추가로 공격하는 등 매우 잔인했다.
피살자가 검사 출신의 변호사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제주는 물론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제주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의 중앙지구대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7개팀, 40여명으로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경찰은 피해자가 변호사인 것을 감안해 처음에는 수임 사건에 대한 불만이나 원한관계에 의한 살해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 다음으로 살인 전과 등 용의선상에 오른 60여 명을 상대로 알리바이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해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모두 제외됐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사건 당일 오후 2시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3시 10분쯤 제주시 연동에 있는 카페 여종업원에게 “찾아가겠다”며 3차례 전화한 사실을 밝혀내고 치정 살인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
카페 여종업원과 주변 남성들의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했지만 사건과 연관 지을 만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당일 술을 마신 남성과 이 변호사의 가족과 변호사 사무장 등을 상대로 행적을 조사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수사를 하면 할수록 용의자가 좁혀지고 특정해야 하는데 점점 난항을 거듭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 등 단서가 될 만한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자도 없었다.
심지어 사건 현장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다급해진 경찰은 1만장의 전단지를 만들어 각 파출소와 숙박업소, 슈퍼 등에 배포했다. 현상금 1천만 원도 내걸었다. 반상회까지 열어 주민들에게 전단지를 배포하면서 목격자를 찾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결국 1년 뒤 수사본부는 해체됐고, 6천여 쪽의 사건 기록만을 남겼다.
당시 유족 측은 “시간이 지나도 범인은 있다”며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미제라며 손을 놓고 있다. 하소연 할 곳도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사건은 계획적인 범행 가능성이 높았다.
범인은 이 변호사의 급소인 심장 부분을 찔렀고, 배와 팔을 난자했다. 처음부터 죽이려고 작정했다고 봐야 한다. 범인이 노린 것이 돈이었다면 현금이 든 지갑 등을 노렸어야 하는데, 없어진 물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에다 승용차 안과 차를 세워둔 부근까지 피가 흥건한데도 범인은 발자국하나 남기지 않았다.
국과수 감정결과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일반 가정이나 음식점 등에서 쓰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특정하지 않았으나 전문적인 살인도구일 가능성이 높았다. 범인이 평소 갖고 다니던 흉기거나 범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21년이 지난 2020년 6월27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핵심 단서가 나왔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 김아무개씨(55)가 당시 상황을 폭로한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두목인 백아무개씨(2008년 사망)가 자신에게 범행을 지시했고, 그는 동갑내기 손아무개씨(2014년 사망)를 통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당초 두목은 다리를 찔러 겁을 주라고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직접 행동에 나선 손씨가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에 대한 근거로 범행에 사용된 흉기 제작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경찰은 곧바로 재수사에 착수했고, 2021년 4월 김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인터폴에 적색수배 요청을 했다. 캄보디아에 체류하던 김씨는 불법체류 혐의로 현지에서 검거된 후 추방됐고 8월18일 국내로 강제 송환돼 제주로 압송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판단해 방송 프로그램에 자백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를 통해 해외에서 귀국할 때 필요한 여비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김씨의 판단 착오였다. 원래 이 사건은 2014년 11월5일 0시를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그런데 변수가 있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범인이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이에 따라 김씨가 해외에 도피한 기간을 더하면 2015년 8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될 수 있었으나 그 이전인 7월24일에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일명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김씨는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된 것이다.
김씨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자신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해 방송에 출연했던 것이다.
검찰은 김씨를 살인과 협박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김씨가 본인의 자백 취지의 인터뷰를 방영한 방송사 PD를 협박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명불상의 인물이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 피고인에게 살인을 지시했을지부터가 의문”이라며 “피의자 진술 외 별다른 추가 증거가 없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상당 부분은 단지 가능성과 추정만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부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을 향해 “법률적 판단이 무죄라는 것”이라며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2심은 김씨의 제보 진술에 신뢰가 있고, 살인 고의와 공모공동정범까지 인정할 수 있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징역 12년을 선고하면서 뒤집혔다. 김씨는 상고했고 대법원은 “피고인의 제보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공소사실을 입증할 정도의 신빙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행 현장 상황 등 정황 증거만을 종합해 살인 고의 및 공모 사실을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살인 혐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로써 이 사건은 또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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