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초병 임신부 강간치상 사건
전북 전주가 고향인 윤아무개씨(여‧22)는 1966년 서울로 올라왔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노점상을 해서 번 돈으로 시골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윤씨는 장아무개씨(33)와 약혼했다. 이미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행복한 단꿈도 잠시였다.
결혼을 몇 달 앞둔 윤씨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 피해를 입고 말았다. 1968년 5월14일 윤씨는 친구 집에 갔다가 늦어서 급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녀가 이날 밤 0시5분쯤 국방부 청사 앞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국방부 정문을 지키고 있던 초병(헌병)이 윤씨 앞을 가로 막았다. 헌병중대 소속 박봉순 상병(25)이었다.
그는 “통금시간이 넘었는데 어딜 가느냐, 조사할 게 있으니 따라오라”고 위협했다. 그리고는 위병실을 거쳐 통제구역인 본관 5층 통신반 숙직실로 끌고 갔다. 이때 국방부 통신실 교환병인 공군소속 노효영 병장(23)이 합세했다.
이들은 윤씨를 겁박한 뒤 옷을 벗기려고 했다. 윤씨가 “내게는 약혼자가 있고, 임신 중이니 제발 살려 달라”고 울면서 사정했다. 박 상병과 노 병장은 이런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윤씨의 얼굴을 때리고 팔을 꺾는 등 마구 때려 실신시켰다. 그런 다음 옷을 벗긴 뒤 차례로 강간했다.
윤씨는 새벽 2시30분쯤 실신상태에서 깨어났다. 범인들은 윤씨를 숙직실 밖으로 끌어냈다. 그녀가 소리 내서 울자 박 상병은 “장관이 주무신다. 떠들면 아래로 내던져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박 상병은 이어 본관 입구에서 근무 중이던 또 다른 헌병이 보는 가운데 윤씨를 청사밖으로 끌어내 후암동 앞 골목에 팽개치고 돌아섰다.
윤씨는 약 30분쯤 지나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겁에 질린 채 300m 거리에 있는 약혼자의 집까지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몸이 망가진 윤씨는 아무런 기운이 없었다. 기력을 잃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100여m를 기어가다가 지쳐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윤씨의 우는 소리에 놀란 주민들이 나와 약혼자인 장씨에게 알려줬고, 그가 윤씨를 등에 업고 남대문경찰서 관할 후암서부파출소에 신고했다.
경찰은 윤씨를 성폭행한 박 상병과 노 병장을 군 수사기관에 이첩했다. 군은 두 사람을 강간치상혐의로 구속했다. 국방부는 이 사건 발생 후 군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어나자 합동조사위원회를 꾸려 이들 외에도 당일 정문 초병 임무를 맡았던 박기섭 일병(22)도 구속했다.
이들 3명은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에 회부됐다. 범인들은 강간사실을 부인하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들은 “윤씨가 만취한 채 화장실을 찾으며 스스로 청사에 들어왔다”며 “속옷을 벗기고 난잡한 짓을 했으나 강간한 사실은 없다”고 잡아뗐다.
국방부 보통군법회의에서 군 검찰은 노 병장과 박 상병에게 ‘강간치상 및 명령위반죄’를 적용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박 일병에게는 초병의 수소 이탈죄를 적용 징역 2년을 각각 구형했다.
군 검찰관은 “온 국민이 국방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때 국방의 총본산인 국방부 청사 안에서 피고인들이 비인도적인 강간행위를 저질러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을 자아낸 것은 추호도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보통군법회의는 박 상병과 노 병장에게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박 일병에게는 군 검찰 구형대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3일 새벽 2시30분쯤 강간하고 기억력 장애, 수면 장애 등 1주일간의 안정을 요하는 상해를 입혔음이 명백하고 30분간 순찰임무 또는 교환임무를 포기, 직무를 유기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 박기섭 일병은 국방부 정문 초병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초소를 10분간 이탈, 피해자를 상관의 허가 없이 국방부 청사내로 끌어 들였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인 윤씨는 사건 이후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으나 약혼자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국방부 측에서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관을 두 번이나 옮기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국방부 청사 안에서 있었던 초유의 강간 사건, 국군의 흑역사 중 하나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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