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십정동 부부 살인사건
인천 부평구 십정동은 우물이 열 개 있어 ‘열우물’ 또는 ‘십정(十井)’이라고도 불렸다.
2006년 11월16일 새벽 이 지역의 한 다세대 주택 2층에서 잔인한 살인극이 벌어진다. 해당 건물 1층은 건축 설비업체와 방앗간에 세를 줬고, 이들 세입자들은 남매사이였다.
2층에는 집 주인 부부인 남편 김아무개씨(56)와 아내 임아무개씨(53)가 살고 있었다. 김씨 부부 집은 십정동에서도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 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형적인 주택 밀집 지역이었다.
이날 새벽 2시50분쯤 1층 세입자 A씨(49)는 잠결에 2층에서 나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우당탕’하는 소리를 들었다.
A씨는 옆집에 사는 매형 B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A씨는 찝찝하기는 했으나 혼자 가기에는 무서웠고, “별 일 있겠나” 싶어 다시 잠에 들었다고 한다.
날이 밝자 A씨는 새벽에 들은 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전 8시쯤 매형 B씨에게 새벽녘에 들었던 소리 얘기를 하고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은 2~3cm 정도 열려 있었다. 두 사람은 살며시 현관문을 열고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을 보고 기겁했다.
주인 부부가 흉기에 찔려 숨져 있었고, 거실에는 피가 흥건하게 적셔 있었던 것이다.
A씨는 곧바로 112에 “사람이 죽어 있다”며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도 참혹한 현장에 혀를 내둘렀다. 집주인인 남편 김씨는 목과 심장 등에 8군데, 아내 임씨는 가슴과 등에 무려 37군데나 흉기(과도)에 난자당한 상태였다.
경찰 과학수사반은 현장 정밀 감식에 들어갔다. 현미경까지 동원해 샅샅이 뒤졌지만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나 머리카락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시신 옆에 흰색 우비가 하나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초겨울 차가운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였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런 날 사건 현장에 우비가 놓여 있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우비는 미세한 체크무늬에 단추가 3개가 달린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또 보란 듯이 피 묻은 운동화 발자국이 마루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집 안 풍경도 예사롭지 않았다. 방안 서랍이 열려 있는 등 누군가 이 곳 저 곳을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정작 집 안에 있던 현금과 패물은 그대로 있었다.
대신 부엌 찬장에 있던 약 1억 원이 들어있는 예금 통장과 건축업을 했던 남편 김씨의 사업장부가 없어졌다. 이것 또한 경찰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통장은 비밀번호나 명의자의 동의가 없으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리고 형사 60명을 투입했다.
김씨 부부의 사망시각은 새벽 2시 30분에서 5시 사이로 추정됐다. 경찰은 외부 침입 여부를 살폈으나 담을 넘은 것으로 보이는 흔적은 없었다. 외부에서 현관문을 부수거나 따고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당시 계절이 겨울인데다 새벽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현관문을 열어뒀을 리도 만무했다.
범인은 김씨 부부가 열어준 문으로 태연하게 걸어 들어갔다는 것이 된다. 반항 흔적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범인이 1명이었다면 성인 2명을 한꺼번에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남편이나 아내 둘 중 1명에게 먼저 흉기를 휘둘렀다면 다른 1명은 본능적으로 방어나 저항을 하게 된다. 아니면 “사람 살려”라고 소리쳐 이웃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김씨 부부에게서는 방어흔이 없었다. 아는 사람, 즉 면식범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씨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26)은 서울의 한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둘째 아들(24)은 지방 국립대의 수의과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경찰은 한때 두 아들을 의심하기도 했으나 알리바이가 확실해지면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김씨 부부가 참혹하게 난자당한 것으로 봐서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에 무게가 실렸다. 특히 아내 임씨가 남편 김씨보다 8배나 많게 흉기에 찔렸다. 이를 두고 경찰은 원한관계가 아니면 불가능한 상황으로 봤다.
물론 원한관계일 수도 있으나 범인이 김씨 부부 중 1명을 먼저 찌르고 나서 순식간에 다른 1명을 찔렀는데, 빨리 숨을 끊어놓기 위해 무차별 흉기를 휘둘렀을 수도 있다.
경찰이 탐문수사를 해보니 김씨 부부에게는 특별한 채무나 눈에 띄는 원한을 살만한 것도 없었다. 이웃과의 사이도 원만했다. 사건 이후 김씨 부부의 금융거래 내용과 보험가입 여부 등을 조사했지만 돈을 빼갔거나 특이한 점은 없었다.

사건 발행 후 경찰은 약 1달 동안 현장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아울러 우범자 등 1천 500명을 조사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과도)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인 우비는 국내에서 제조된 것이 아니라서 판매처를 찾지 못했다. 현장에 남겨진 발자국의 신발 밑창과 동일한 제품을 분석해본 결과 ‘퓨마’ 운동화로 특정됐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더 이상의 수사 진척이 없었다.
결국 수사본부가 해체되면서 이 사건은 지금까지 미해결로 남아 있다. 숨진 김씨 부부가 살던 집은 두 아들 명의로 되어 있고, 안방 등은 그대로 보존 중이라고 한다. 현재 이 사건은 인천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032-455-2854)에서 맡고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범인은 면식범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범인은 면식범(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범인은 담을 넘지 않고 대문을 통해 들어왔다. 또 피해자들이 현관문을 열어준 것으로 보이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새벽에 집안으로 들였을 리가 만무하다.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방어한 흔적이 없는 것도 면식범의 소행을 뒷받침한다.
만약 면식범이 아니었다면 현관문으로 태연하게 들어가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문을 열어주기 전에 시끄럽게 대화가 오고갔을 수가 있는데 1층 세입자들은 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2.범인은 김씨 부부와 자주 만나는 사람이다.
새벽에 김씨 부부의 집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깊은 잠에 빠져든 부부를 깨워 문을 열게 했다.
새벽에 문을 열어 준 것은 범인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평소 김씨 부부와 자주 만나는 사람일 것이며,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범인은 1~2명이다.
범인은 분명 1명 아니면 2명이었다. 범인이 면식범이라면 김씨 부부를 죽이지 않고는 완전범죄가 성립될 수 없다. 우비 등을 준비한 것을 보면 처음부터 살인을 목적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범인이 1명이었을 때와 2명이었을 때에 약간의 모순이 발생한다. 김씨 부부가 살고 있던 건물 아래층(1층)에는 2가구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자칫 실수하면 범행이 탄로 나고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도 범인은 아주 위험한 방법을 선택했다.먼저 사건 현장에 남겨진 우비와 발자국을 봤을 때 범인은 1명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범인이 1명이었다면 어떻게 순식간에 성인 2명을 죽일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또 김씨 부부에게서는 본능적인 방어흔이 없는 것도 석연치 않다.
부부 중 남편이나 아내에게 먼저 흉기를 휘둘렀다면 한쪽은 이를 막기 위해 몸싸움을 하거나 이 과정에서 손에 방어흔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김씨 부부의 비명소리나 “살려 달라”는 도움 요청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
또 시신에서는 아무런 방어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다.범인이 2인 이상이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랬다면 범인들은 상식적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어야 한다.
먼저 피해자들을 완전하게 제압했어야 한다. 흉기로 위협한 후 청테이프나 케이블타이(플라스틱 재질의 결박용 끈) 등으로 결박해서 비명이나 저항을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집안을 뒤져 현금 등 금품을 챙겼어야 한다. 그러나 범인들은 김씨 부부를 결박하거나 소리내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 등의 조치 없이 범행에 나섰다. 이것은 범인들이 어느 정도 사건 현장이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물론 2명이 흉기를 꺼내 1명씩 김씨 부부를 위협한 후 ‘통장’과 ‘거래장부’를 가져오게 한 후 순차적으로 죽였을 수도 있다. 이때 범인 중 1명이 우비를 입고 김씨 남편을 찔렀고, 아내는 또 다른 1명이 흉기로 위협함으로써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을 수는 있다. 그런 후 김씨의 아내를 무차별 찔러 살해한 다음 1명의 범행으로 위장하기 위해 우비를 현장에 벗어놓고 일부러 발자국을 남겨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지문이나 머리카락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범행 후 현장을 완벽하게 정리했다고도 볼 수 있다.
3.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사건 현장에는 당일 날씨와 전혀 상관없는 우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것은 범인이 처음부터 ‘살인’을 염두에 뒀고, 피가 옷에 묻는 것을 막기 위해 준비한 것이 된다. 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이나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은 범행 당시 장갑을 끼고 모자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후 현장을 한 번 더 정리함으로써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신발자국의 경우에는 수사에 혼돈을 주기 위해 일부러 남겼을 수도 있다. 범인이 2명인데 1명으로 눈속임하거나 신발 크기나 운동화 밑창 무늬가 평소 범인이 신는 신발과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4.’원한’보다는 ‘돈’과 ‘거래관계’가 의심된다.
범행 목적은 원한관계 보다는 ‘돈’과 ‘거래관계’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금과 패물에 전혀 손대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범인은 큰돈이 급했을 것으로 보이고 김씨 부부에게 ‘목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찬장에 있는 1억 원의 예금 통장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비밀번호는 김씨 부부를 위협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아니면 범인의 최종 목적은 돈이 아니라 ‘거래장부’였을 가능성도 있다. 통장은 돈을 노린 강도로 위장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5.’거래장부’에 비밀이 있다.
‘거래 장부’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범인은 일반인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거래 장부를 왜 챙겨갔을까. 그것은 범인이 남편 김씨가 건축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된다. 또 그것을 챙겨간 것은 그 안에 범인과 김씨의 거래 내역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래장부가 그대로 있었다면 경찰은 거래관계를 따져 용의자를 찾으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범인이 김씨에게 줘야 할 돈이 있었고, 그걸 주지 않기 위해 김씨 부부를 죽였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장부를 가져감으로써 채무관계나 거래관계를 없애고 용의선상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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