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여교사 스토킹하다 잔혹 살해한 제자
2013년 12월18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에서 20대 남성이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다. 손에는 뭘 감싸고 나왔다. 그는 인근 주민과 마주치자 “내 얼굴에 뭐 묻었냐”고 물었다. 주민이 “안 묻었다”고 말하자, 쏜살같이 사라졌다.
몇 시간 뒤 건물 주변이 시끄러웠다.
119 구급차량이 도착하고 건물 안에서 3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들것에 실려 나왔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폴리스라인을 치고 건물 출입을 통제했다. 피해자는 대안학교에서 진학지도를 담당하는 조은혜 교사(34)였다. 조씨를 살해한 것은 다름 아닌 제자이자 방금 건물에서 뛰쳐나온 유아무개씨(남·22)였다.
도대체 유씨는 왜 스승인 조씨를 살해한 것일까. 두 사람의 악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한 대안학교 11학년(고교 2학년)이었던 유씨는 진학지도담당 교사인 조씨를 만나게 된다. 유씨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조씨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고, 이내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조씨에게 유씨는 ‘제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유씨의 짝사랑은 점점 병적인 집착으로 이어졌다. 조씨에게 쉴새없이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냈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답장이 없으면 온갖 욕설과 협박을 퍼부었다. 이어 조씨의 주거지를 찾아갔고, 스토킹을 시작한다. 조씨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2010년 12월부터는 학교 수업을 자주 빠지더니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조씨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에 조씨는 학교 측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또 유씨의 부모를 불러 주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부모는 아들을 심하게 꾸짖고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이 일로 유씨는 조씨가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망신을 줬다고 생각하며 앙심을 품고 복수할 기회를 엿봤다.
그는 2011년 2월 학교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조씨와 사귀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씨로 부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살해할 마음을 먹는다.
2월8일 유씨는 길이 20cm 정도의 쇠막대기를 들고 조씨의 집 앞에 잠복했다. 조씨가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위협하며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유씨는 있는 힘을 다해 조씨의 목을 졸랐다. 하지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범행을 멈췄다.
그는 조씨를 살해하는 대신 강간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쇠막대기로 위협하며 침대에 눕혔으나 조씨가 흐느껴 울자 죄책감에 범행을 포기한 뒤 집을 나섰다. 조씨는 이런 사실을 유씨의 부모에게 알렸다. 유씨의 부모는 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2월16일 대학병원 정신과에 데려갔다. 유씨는 정상이 아니었다.
의사는 그가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미행, 폭력 등의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망상장애 외증’이라고 진단했다. 유씨는 3개월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유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유씨의 온 신경은 한국에 있는 조씨에게 쏠려 있었다. 그의 집착은 더욱 커졌다. 그는 자신만 불행해지고 조씨는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자신의 불행이 모두 그의 책임이라 생각하며 복수심을 품었다.
그러던 2013년 7월쯤 유씨는 고교 동문으로부터 조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유씨는 이에 격분, 같은 해 7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조씨에게 “너를 강간하고 싶다” “너는 내 여자다” 등의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무려 400여 차례에 걸쳐 보냈다.

조씨의 SNS에도 “기필코 죽일 거야” “은혜쌤 어디 있을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등의 글을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와 함께 게시하는 등 조씨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조씨는 자신의 SNS 계정을 폐쇄했다. 그러자 유씨는 조씨의 친구들에게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얼마 후 조씨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자, 유씨는 결혼한다는 소문을 기정사실처럼 믿어버린다.
그해 12월 유씨는 미국에서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귀국해 조씨의 개인정보를 이용, 인터넷 검색 등으로 그가 강남구 신사동의 유학원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씨는 조씨를 찾아가 사귀자고 간청했지만 거절당하고 “스토커로 경찰에 고소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격분해 또다시 살인을 결심했다.
12월18일 유씨는 과도를 들고 조씨가 다니던 유학원 건물 주변에서 그의 퇴근시간에 맞춰 잠복했다. 저녁 7시15분쯤 유씨는 조씨를 보자마자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계단으로 올라온 유씨는 이 건물 3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씨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머리, 얼굴, 목 등을 15차례 찌르고 발로 찼다. 결국 조씨는 과다 출혈로 숨을 거뒀다. 유씨는 조씨를 살해한 뒤 이삿짐 운반용 플라스틱 박스에 시신을 넣어 근처 계단에 숨겨놓고 달아났다.
유씨는 범행 후 조씨의 휴대전화로 평소 친분이 있던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죽였다”고 알렸다. 목사는 이런 사실을 유씨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사건 당일 밤 10시30분쯤 유씨의 어머니 이아무개씨(51)가 경찰에 전화해 “망상장애가 있는 아들이 지인에게 울면서 ‘여자를 죽였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에 출동, 신사동 건물 계단에 놓여 있던 상자 안에서 조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유씨는 사건 발생 15시간여 만에 범행 장소에서 멀지 않은 인근의 건물 주차장에 숨어 있다 경찰에 붙잡혔다.

조씨는 살해당하기 전까지 유씨의 집착으로 고통받고 불안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를 용서하라는 어머니의 말과 유씨의 장래를 생각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상당 기간 참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씨는 결혼계획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남성도 없었다.유씨는 살인 및 강간 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에 대해 법원은 2014년년 7월29일 법원은 유씨에게 35년 형을 선고했다. 위치 추적 장치 20년 부착, 성폭력 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도 명령했다. 유기징역으로 35년형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씨는 57세에 출소한다.
재판부는 “간호학도로 해부학 등을 배운 피고인이 범행을 계획적으로 준비해 잔혹하게 살해했다”며 선고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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