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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여고생 살인사건


충북 영동군 영동읍의 한 고등학교 2학년인 정소윤양(18)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정양은 영동읍 계산리 영동로타리 인근의 한 펜시점에서 아르바이트(오후 5~9시)를 하며 용돈을 벌던 착한 효녀였다.

정양은 2001년 3월6일 학교를 마친 후 펜시점에서 일하다가 오후 8시20분쯤 인근 식당 아주머니에게 일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또 8시40분쯤에는 친구와 마지막 통화를 한 후 사라졌다.

하루 뒤인 3월7일 오전 7시30분쯤, 정양은 펜시점 바로 옆에 있는 내과 병원 신축공사장 지하 공구 창고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교복을 입은 채 누운 상태에서 시멘트 포대에 덮여 있었다.

최초 발견자인 공사장 인부는 “연장을 가지러 밑으로 내려갔고 (시멘트) 겉 포대가 있었는데 발로 차보니 한 쪽 발이 나와 있더라”고 말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정양 시신의 양 손목이 잘린 상태로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정양의 손목을 자를 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피 묻은 곡괭이가 발견됐다.


경찰은 정양의 없어진 손목을 찾는데 집중했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3월8일 현장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하천에서 정양의 양 손목이 발견됐다.

당시 하천은 졸졸 흐르는 정도의 물살이었기 때문에 상류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는 볼 수 없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처럼 가지런하게 손바닥이 하늘을 향한 채 물에 잠겨 있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경부압박질식사(목 졸림)였다. 절단된 손목에 대해서도 유전자 분석 검사를 했는데 물에 잠겨 있던 탓인지 손톱 부위라든지 손에서 타인의 유전자는 검출되지 않았다.

정양의 손목은 숨이 끊어진 후 절단됐을 확률이 높았다. 만약 정양이 살아있을 때 손목을 절단했다면 피가 솟구쳤을 테고 주변에는 피로 낭자했을 것이다. 또 정양이 고통에 몸부림친 흔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누가, 왜 정양을 죽인 것일까.

금품이 목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 정양이 학생인데다가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았고, 현금을 비롯한 정양의 소지품도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정양의 시신에서 성폭행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정액 반응도 음성이었고, 옷을 벗긴 흔적도 없었다. 정양의 교우관계도 원만했기 때문에 누구한테 원한을 살 가능성도 낮았다.


정양이 심하게 반항했거나 강제로 끌고 내려 간 흔적도 없었다. 이로 미뤄보면 범인은 정양과 알고 있거나 친분이 있는 면식범일 수 있다. 반면, 당시 밤 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범인이 정양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위협하면서 공사장 지하로 끌고 갔을 수도 있다.

정양의 사인이 목 졸림이었는데, 국과수 부검 결과 범인이 뒤에서 팔로 목을 졸랐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감안하면 범인이 흉기를 이용해 정양을 지하로 끌고 내려온 후 뒤에서 목을 졸라 살해했을 수도 있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 정양은 퇴근시간이 아니었다. 정양은 밖으로 나갈 때 가게 불을 켜둔 상태에서 문만 잠갔다. 셔터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가게로 돌아오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뒤편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거나 누군가 ‘잠깐 나와 보라’며 불러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범인은 왜 정양의 양 손목을 잘랐을까. 이 사건의 최대 의문점 중의 하나다.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됐다. 우선 범인이 정양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정양의 손톱 등에 유전자가 남았을 수 있다. 범인이 목을 조르자 정양은 본능적으로 목을 조르고 있는 범인의 팔이나 손을 붙잡았을 것인데 이때 범인의 손과 팔에 상처가 남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범인은 자신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정양의 손목을 잘랐을 수 있다.

피해자인 정양의 신원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손목을 훼손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당시 사건 현장은 정양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펜시점 바로 옆에 있었다.


만약 정양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하려면 먼저 얼굴을 훼손해야 하는데 그런 시도는 없었다. 손목을 자른다고 해도 정양의 얼굴이 멀쩡했기 때문에 신원이 확인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손목을 눈에 쉽게 띄는 하천에 유기한 것은 의아하다. 정신이상자나 미신에 의한 엽기 행동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정양의 손목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범인을 특정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용의 선상에 있던 용의자들을 압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공사장 인부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정양이 살해된 장소가 공사장 지하라는 것과 곡괭이로 손목이 절단된 점에 주목했다. 더욱이 손목의 절단면이 비교적 깨끗한 것으로 볼 때 범인이 곡괭이를 잘 다루는 숙련자로 판단됐다.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 사람이 정양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공사장 작업반장 이아무개씨(51)였다. 그는 폭력‧절도 등 전과 14범으로 교도소에서 3회 복역한 전력도 있었다.

사건 현장에서는 시멘트 포대 위에서 볼펜 한 자루가 발견됐다. 한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이 판촉용으로 나눠준 것인데 이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정양 시신의 최초 발견자인 이씨는 직접 신고하지도 않았다. 그는 현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부인에게 가서 “여보, 사람이 죽었어. 신고해 줘”라고 대신 신고를 부탁했다. 정양의 목에서는 남성 신발자국이 발견됐는데, 이씨가 신고 있던 신발과 무늬가 일치했다.

이씨에 대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그의 손등에 무언가에 긁힌 상처가 있었다는 점이다. 경찰은 이씨를 상대로 7차례에 걸쳐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지만 끝내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심증은 범인에 가까웠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불충분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CCTV나 차량 블랙박스가 일반화된 때가 아니었다. “내가 범인이다”는 자백도 받지 못했다.


이씨 외에 소윤양의 친구 3~4명도 용의선상에 올랐다. 사건 발생 후 이틀 동안 결석했던 어린 시절 친구 박아무개군, 마지막 통화자 황아무개군, 시신 발견 당일부터 행방이 묘연하며 그 날 학교에 오지 않았던 김아무개군 등이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의 알리바이가 모두 성립돼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2019년 6월22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새로운 제보자가 등장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당시 현장부근에서 마주쳤던 한 남성을 떠올렸다.

제보자는 “당시 공사장 옆 가게에서 일하던 한 여성에게 말을 걸었고, 가게에서 나온 여성이 그 남자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또 최면수사를 통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고 등산 가방을 메고 있었다”고 기억을 되살려 냈다. 여기서 ‘가게에서 일한 여성’은 정소윤양이다.

제작진은 당시 수사기록을 입수해 현장 인부들 가운데 조사를 받지 않고 사라진 인부 한 명을 찾아냈다. 그는 사건 당일 “눈을 다쳐 고향으로 간다”며 동료들에게 인사하고 사라진 목수 김아무개씨였다.

김씨는 제보자의 말처럼 당시 등산가방을 메고 있었다고 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의심할 만한 내용이 상당했고, 프로파일러들도 “의심가는 인물”이라고 지목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사건 현장 인근에서 피해자나 용의자를 목격했거나 새로운 제보 내용이 있는 경우 충북 영동경찰서(043-744-0112)로 제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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