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에 올랐던 최악의 한국인 살인마
국내 최악의 살인마는 우범곤(범행당시 27세)이다.
그는 1982년 4월26일부터 27일까지 8시간 동안 62명을 죽이고, 3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기네스북에는 ‘하루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로 등재됐다. 이 기록은 2011년 노르웨이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경신(77명 사망)할 때까지 29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첫 번째 살인 후 일정한 냉각기가 있는 ‘연쇄살인’과는 구분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죽인 ‘연속살인’ ‘대량살인’에 해당한다.
우범곤은 범행 당시 경찰관(순경) 신분이라는 것에 더욱 충격이 컸다. 그의 아버지도 경찰관이었다. 심지어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는 101경비단에서도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우범곤의 총구는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았다. 무자비한 난사에 20살 이하가 16명, 이중 10살 이하가 6명이나 죽었다. 심지어 1개월 된 아이도 있었다. 우범곤의 동거녀도 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대체 우범곤은 왜 이런 끔찍한 살인행각을 벌인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파리 한 마리’가 발단이 됐다. 부산 남구에서 태어난 우범곤은 어릴 적부터 문제아였다. 고등학교 때는 결석, 지각, 조퇴, 수업 불참 등이 잦은 불량 학생으로 찍혔다. 해병대 복무 할 때는 술 마시고 동네 청년들과 시비가 붙는 게 일이었다.
이런 망나니가 1980년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해 경찰관이 되면서 화근이 된다. 이곳저곳 근무지를 옮겨다니다가 그해 12월 경남 의령으로 전출돼 궁류지서에서 근무했다.
그는 초임 근무 때부터 피의자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윽박지르는 등 포악한 성격을 드러냈다. 궁류지서에서는 술만 마시면 행패가 심해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82년 2월 우 순경은 대구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있던 전말순(25)을 만났다. 우 순경이 하숙하는 이웃집에 전씨가 살았다. 우 순경은 집요하게 전씨를 쫓아다니며 교제를 요구했고, 두 사람은 교제하다가 한 달 반쯤 지난 3월부터 전씨의 집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전씨의 부모는 두 사람의 동거를 한사코 반대했지만 우순경이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하고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고집해 마지못해 허락했다. 우 순경은 매일 술을 마셨고 안하무인이 됐다.
4월26일 낮 12시쯤 우 순경은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의 몸에 파리가 한 마리 내려앉았다. 이 모습을 본 동거녀 전씨가 파리를 잡는다며 손바닥으로 우 순경의 가슴을 쳤다. 그러자 우범곤은 벌떡 일어나며 버럭 화를 냈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였다. 오후 4시쯤 우 순경은 지서로 간 뒤 저녁 7시30분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다.
그는 다짜고짜 전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폭행했다. 옆집에 사는 전씨의 친척 언니가 이 모습을 보고는 말리자 우 순경은 언니의 뺨을 때리며 폭행했다. 그리고는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부수며 난폭하게 굴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건의 전말을 들은 그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궁류지서, 이 시간에 대부분의 근무자들은 반상회에 나가고 무기고를 지키는 방위병 몇 사람만 있었다.


우 순경은 방위병들과 소주를 퍼마셨고, 이때 동거녀 전씨의 남동생이 와서 “경찰이면 다냐”고 소리를 지르자 만류하는 방위병들을 위협한 다음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돼 있던 M1 카빈 2정,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했다. 이때부터 우 순경의 살육이 시작된다.
우범곤은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6시간이 넘도록 산간 5개 마을을 휩쓸고 다니며 광란적인 총질을 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불이 켜진 집만 골라 시종 침착하고 냉혹하게 마을 주민들을 사살했다.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우 순경이 마구 쏘아댄 총에 맞아 죽었다.
우 순경의 살인극은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트려 자폭하면서 막을 내렸다.
합동수사본부는 우 순경의 범행이 너무 잔인해 뇌조직이 정상인과 어떻게 다른가를 가려내기 위해 시체부검을 통해 알아보려고 했으나 검사가 불가능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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