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소녀 36명’ 성폭행 후 처형된 백만장자


중국 허난성 전핑현 출신의 우톈시(61)는 기업인·정치인·공무원이었다.

그는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돈이 없어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러다 1984년 친지들에게 돈을 빌려 벽돌 공장을 세웠는데 여기서 큰돈을 벌었다. 이것을 밑천으로 밀가루 공장과 냉동 공장 등을 연이어 인수해 운영했다.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이 나면서 가난한 농부였던 그는 전핑현 최고의 부자가 됐다. 그가 세운 자송식품은 중국의 유명업체로 성장했다. 백만장자 대열에 오른 우톈시는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이 나온’ 전형적인 사례가 됐다.

그의 성공스토리는 언론과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일약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성공 이면은 추악하고 악랄했다. 1992년부터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강제로 재물을 뜯고 토지사용권에 투기를 일삼는가 하면 일반 예금을 불법으로 챙겼다.

겉으로는 ‘성공한 농민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도 뒤에서는 악랄한 범죄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두 얼굴은 화려한 모습만 비춰지고 알려졌다. ‘돈의 힘’ 때문이다.

우톈시는 유명세와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도 진출했다.


1998년에는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의원)가 되면서 막강한 영향력까지 갖게 됐다. 5년 후에는 중부 허난성 전핑현의 정책자문기구인 정치협상회의 부주석까지 맡았다.

경제력, 정치력 여기에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갖게 되면서 우톈시는 달콤한 권력의 향연을 즐겼다. 그는 조직폭력배들을 거느리며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만사가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2005년 말 환갑이 넘어 신체가 허약해지고 사업이 쇠락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도사(道士)’의 말에 솔깃해졌다. 도사는 그에게 “관운을 형통하게 하고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채음보양(採陰補陽)을 하라고 권했다.

쉽게 말해 미성년자들과 성관계를 맺으면 관운도 트이고 장수한다는 얘기다.

무협소설에나 나올법한 허무맹랑한 말을 들은 우톈시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처녀 100명과 성관계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섭양(攝養)’에 들어갔다.

그는 가출 소녀 3명을 중개인으로 앞장세워 학교 부근에서 여학생들을 꼬득인 다음 호텔에서 음욕을 채웠다. 중개인 소녀들에게는 학생 1명을 데려올 때마다 2000(약 24만 원)~3000위안(36만 원)의 수고비를 건넸다.


그의 엽기 행각이 꼬리가 잡힌 것은 피해 학생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다. 천핑현 제3중학에 다니던 한 여학생은 하굣길에 3명의 여학생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호텔로 끌려간 이 여학생은 호텔 직원에게 몰래 아버지 휴대전화 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넸다. 연락을 받은 아버지는 경찰과 함께 호텔로 찾아가 딸을 구했다.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지 3일 만에 납치를 주도한 소녀 3명을 붙잡았다.

수사 결과 이들은 우톈시 회장을 위해 처녀를 조달하는 일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우톈시를 성폭행 혐의 등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우톈시가 12∼16세의 소녀 36명을 성폭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톈시는 “매번 2천∼3천위안의 비용을 치렀다”며 성폭행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중국 경찰은 우톈시에 대해 미성년자 성폭행 외에도 불법 토지양도, 자금모집 사기 등 혐의에 집중 조사를 벌여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범죄행위를 밝혀냈다. 우톈시가 체포되자 월급을 받지 못하는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운영이 어려워진 공장은 공중 분해됐다.


2008년 1월18일, 허난성 난양시 중급인민법원은 우톈시에 대해 강간 혐의 외에도 지도층 기강을 어지럽히고 조직형 범죄에 가담하는 등 5가지 혐의를 적용, 사형을 선고하면서 벌금 50만위안(약 6천500만원)을 내라고 명령했다. 아울러 그의 모든 정치적 권리도 박탈했다. 2009년 8월14일 우톈시는 약물주사로 사형이 집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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