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광주 초등학생 공기총 살인사건


음주운전이 참혹하고 엽기적인 범행을 불렀다.

2009년 6월4일 오후 인테리어 업자인 이아무개씨(48)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내연녀 B씨를 만나기 위해 봉고 승합차를 몰았다.

저녁 8시30분쯤 상가가 빼곡한 광주 북구 일곡동의 한 아파트 앞을 지날 때였다. 이씨는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다 태권도장을 나와 횡단보도를 지나던 A군(11)을 들이 받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A군이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후 다시 일어선 A군은 머리 오른쪽 부위를 오른손으로 만지며 아파트 상가 방향으로 울면서 뛰어갔다. 이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도로 갓길에 차량을 정차하고, 차에서 내려 A군의 뒤를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

이윽고 따라잡은 이씨는 A군의 어깨를 잡았다. 이씨는 A군을 자신의 승합차에 태운 뒤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10분 뒤인 8시40분쯤 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A군을 데려갔다.

이씨는 A군이 이상이 없는지 정밀검사를 받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진료시간이 마감돼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를 하려면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순간 이군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당시 무면허 운전이었던 이씨는 2005년 3월 제주시에서 만취상태로 운전하다 적발돼 면허가 취소됐다. 2007년 7월에는 전남 장흥에서 무면허 운전이 적발돼 2년간 응시가 금지됐다.


2008년 6월 음주‧무면허 운전으로 인한 운전면허 취소가 사면 복권됐다. 이씨는 같은 해 9월 운전면허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생업을 위해 운전이 필수였던 이씨는 면허 취소상태에서도 계속해서 무면허 운전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다 또 다시 술을 마시고 교통사고를 냈고, 이번에 적발되면 영영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씨는 어떻게든 처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잔혹한 범행을 결심한다.

2분 뒤 병원에서 나온 이씨는 A군을 조수석에 앉히고, 담양군으로 차를 몰았다. 평소 친구와 함께 간적이 있는 고서면 금현리의 한 저수지를 목적지로 잡았다. 외진 산길로 들어가자 A군은 위험을 직감한 듯 극심한 공포에 떨며 “아저씨, 한 번만 살려 주세요”라며 애원했다.

이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적지 저수지옆 도로변에 도착하자 뒷좌석 상자에 들어있던 사냥용 공기총을 꺼내들었다. 6연발 헌팅 마스터 공기총(5mm)이었다. 그는 조수석에 앉아 공포에 질려 있는 A군에게 6발을 발사해 살해했다. 이씨는 시신을 차에 싣고 20여km 떨어진 담양군 남면 만월리로 향했다.

최종 목적지인 계곡까지는 인적이 거의 없는 가파르고 한적한 산길이었다. 이씨는 중간에 잠시 내려 유기 장소를 물색하다 다시 승합차에 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마지막 장소. 이곳은 도로와 인가에서 약 1km 떨어져 있어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다. 이씨는 약 20m 아래로 A군의 시신을 던져 유기했다.


이씨는 이날 밤 11시30분쯤 교통사고를 낸 광주 북구 일곡동으로 돌아와 내연녀 B씨를 만났다.

그는 내연녀에게 태연하게 범행을 들먹거렸다. “내가 교통사고를 내서 초등학생을 친 후 살해했다”고 말했다. B씨는 “허풍이 심하다”며 처음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씨가 술에 취해 꾸며낸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며칠 후 A군의 가족이 배포한 실종 전단지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이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해 B씨가 신고한 내용이 사실인지를 캐물었다. 이씨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적이 없다”며 범행을 부인하다 뒤늦게 범행을 털어놨다. 이씨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운전면허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경찰조사 내내 “A군이 심하게 다쳐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상태로 계속 신음하기에 살해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사고 당시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이씨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사고지점은 아파트 단지 내 4차선 도로에다 상점 등이 밀집한 번화가였다. 최초 사고를 목격한 여고생 C양(17)은 “사고 후 A군이 바닥에 쓰러졌다 일어나 상가 쪽으로 뛰어갔다”고 말했고, 인근 상점 주인들도 “사고 당시 아이가 머리에 피를 조금 흘렸지만 멀쩡하게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이씨의 거짓말은 병원 폐쇄회로(CC)TV에서 드러났다. 경찰이 확보해 6월14일 공개한 병원CCTV를 보면 A군은 이씨와 함께 병원에 왔을 때만해도 걸어들어왔다. 다쳤다고 볼 수 없을 만큼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부상 정도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도 차에 뚜렷한 사고 흔적이 없고, 도심 골목길에서 낼 수 있는 차 속도를 감안할 때 A군이 경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경찰은 11일 담양군 남면 만월리의 한 계곡에서 이군의 시신을 발견했다.

부검결과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공기총에 의한 총상’이었다. 이씨가 쏜 납탄 총알 6발 중 4발은 A군의 시신에서 발견됐고, 나머지 2발은 X레이 촬영을 통해 시신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총상은 몸 7군데에서 발견됐는데, 가슴과 다리, 귀, 옆구리 등에 나 있었다.

이씨는 담양으로 가는 차 안에서 “A군을 어떻게 제압했느냐”고 묻자 묵비권을 행사했다.

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A군의 부모는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태산이었다. 태권도 도장에 전화해 보니 “운동을 마치고 나갔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사고지점에서 A군의 집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불안해진 부모는 사고 다음날인 5일 새벽 “아들이 북구 일곡동 한 태권도 도장에서 나온 뒤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태권도 도장과 집 주변을 탐문했지만 A군을 봤다는 목격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부모의 꾸지람에 단순 가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나 범죄 피해 가능성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다면 목격자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사이 A군의 부모는 아들의 행방을 찾으려고 실종전단지를 수 천 장을 만들어 사고 장소는 물론 광주 일대에서 배포했다. 전단지를 본 이씨의 내연녀 B씨는 그때서야 그가 말한 ‘사고’가 사실인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만약 B씨의 신고가 없었다면 경찰의 엉뚱한 수사 속에 자칫 미궁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A군의 장례는 사건 발생 9일 만인 13일 부모와 학교 친구들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부모는 아들이 세상과 작별하기 전 마지막으로 학교에 들렀다. A군의 마지막 등굣길은 유족과 교직원 등 30여명이 지켜봤다.

이씨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09년 8월27일 광주지법 형사2부(구길선 부장판사)는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후 초동수사까지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하며 진정으로 반성하는지 의문스럽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를 때리고 공기총을 쏴 살해하는 등 범행수법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뒤늦게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해 수형기간 피해자와 유족에게 참회하고 반성할 시간을 갖도록 했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아이를 살릴 수가 있었다. 이씨는 ‘운전면허’와 ‘아이의 목숨’을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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