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전주 언론학교


어릴적 꿈이었던 교사의 길을 대학 3학년 때 접고 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내 삶에 있어서 큰 변수가 될 것임은 분명했다.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으니 큰물에서 일하고 싶었다. 일단 목표를 ‘종합일간지’로 정했다. 이곳에서 일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서울에 있는 누나 집으로 올라왔다. 독서실을 끊고 노량진에 있는 학원을 다니며 일명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그렇게 해를 넘겨 4학년이 됐다. 개강 후 학교에 나와보니 전주시민회에서 ‘참언론 실천의 한마당’을 주제로 언론학교를 개설해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한참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할 때였지만 미래 언론인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또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그 길을 묻고 싶었다.

1994년 3월22일 전주에는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렸다. 저녁에 언론학교가 열리는 원불교회관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앳띤 여대생(1학년)과 마주했다. 나중에 운명적인 슬픈 만남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계단을 올라가니 수강등록을 하려는 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학생,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등 많은 사람들 줄지어 있었다.등록이 끝난후에 보니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약 100여명이 참여했다.

반 편성을 했는데 대학생들은 숫자가 많다보니 두개 반으로 나뉘었다. 4학년은 나 혼자 뿐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떠밀려서 반장이 됐다. 반 명칭을 ‘크레파스반’으로 정했고, 나를 포함해서 14명이나 됐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다녔고, 강좌 하나하나를 기록하고 들으며 12개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언론학교 졸업에 맞춰 각반의 모음집도 만들었다.

우리 반에서는 ‘크레파스’라는 제목의 34쪽에 달하는 모음집을 펴냈는데, 컴퓨터 타자기를 이용하지 않고, 내가 일일이 손글씨로 써서 사실상 혼자 만들었다. 이것이 ‘제1회 전주 언론학교’ 전체의 모음집이 됐다.


전주 언론학교는 한 달 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언론의 현실을 꿰뚫어보고 언론과 정치의 문제 등을 깊이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때 만난 한 사람(앞에 언급했던 앳된 여대생)은 향후 내 기자의 삷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참교사의 길 대신 참기자의 길을 가게 해준 이정표가 됐다. 이날 그가 줬던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은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는 성경 말씀은 내 신념의 나침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