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역발상 취업


한동안 술로 지내다 폐인이 될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났다.

우선 내 현실부터 따져봤다. 나이는 28살 끝무렵. 지방 사립대 출신, 아무 배경도 없고 밀어주고 끌어줄 사람도 없는 혈혈단신. 가진 돈도 없는 빈털털이. 다시 언론고시를 준비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또다시 여의도에 있는 그런 회사를 갈 수도 없었고, 그런 곳에서 시간 낭비할 여유도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내 꿈은 유력 종합일간지 기자였지만 당장은 갈 수 없으니 다른 길로 돌아서 가자. 대신 매체는 내가 선택해서 간다.

당시 서울 구로구 대림동에 중학교 동창생이 살고 있었다. 당시 그 친구도 취업을 앞두고 있어서 자주 만나게 됐다. 그 친구 따라 한동안 구로도서관에 다녔다. 이때 정기간행물실에서 전문지들을 살펴봤다. 이중 운명의 잡지와 만나게 된다.

월간지인 ‘물류정보’였다. ‘물류’라는 단어가 생소했지만 분명 매력있는 분야였다. 제조업체에서 물건이 생산되면 그것이 소비자한테 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다뤘다. 전문지였지만 경제지에 가까웠다.

회사 규모도 적지 않았다. 회사가 창립된 지 20년이 넘었고 3개의 잡지를 발간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회사였다.

내 눈길을 끌었던 ‘물류정보’는 창간된 지 4년 정도되는 잡지였다. 무엇보다 이 매체에서 미래 비전이 보였고, 여기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문제는 이 회사에 어떻게 입사하고 내가 원하는 매체의 기자가 되느냐였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몰리니까 용기가 생겼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매체를 정한 후 다음날 영등포역 지하도에 있는 ‘영등포서점’에 가서 물류정보 한 권을 샀다. 집 근처에 있는 목동 도서관에 가서 이 잡지의 경쟁매체들을 가져다 놓고 비교 분석해 자료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집으로 와서 그 회사 편집장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내가 귀사의 기자가 되면 이렇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분석자료, 기자에 대한 포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서류 봉투에 넣고 이 회사 편집장에게 등기 속달로 보냈다.

그 회사에서 인원 채용공고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역발상으로 무조건 들이밀었다.

95년도 크리스마스를 이틀 정도 앞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백수 외삼촌’이 조카들과 어울리는 것이 좀 어색했다. 그래서 경희대 앞에서 자취하고 있던 중학교 동창생 소나영을 찾아갔다.

그 친구는 이미 취업을 했으나, 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며칠 신세져도 부담이 없는 친구였다. 그곳에 구로도서관을 함께 다녔던 친구 녀석까지 불렀다. 며칠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술로 시간을 보냈다.

12월26일 오전에 ‘삐삐’가 울렸다. 잡지사 전화번호였다. 그 회사 번호를 적어놓았던 터라 ‘3272’로 시작되는 그 번호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내심 기다리던 번호였다. 곧바로 친구 자취방 근처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이가 지긋한 목소리였다. ‘혹시, 호출하셨습니까. ’정락인‘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상대편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약간은 거칠게 바뀌었다.

“아, 정락인씨 인가요. 내가 물류정보 편집장이요. 정락인씨가 보낸 것은 잘 받아봤어요. 그런데 이력서를 보니 뭐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던데, 우리 매체에 대해 혹평을 해놓으셨네요. 일단 한 번 봅시다. 내일 회사로 나올 수 있나요?”

마치 따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별것도 없는 것이 내가 만든 잡지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해’하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말투였다.

다음날 오전 10시에 그 회사로 갔다. 그랬더니 편집장 방에 딸린 회의실에 8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편집장과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류정보 기자를 포함해 그 회사에서 발행하는 다른 매체의 선임기자들까지 참석했다.

나를 중앙에 놓고 공격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 내용이 거칠기는 했지만 그다지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이미 내가 편지에 썼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또 연락을 받고는 경쟁 매체의 편집이나 레이아웃 등까지 파악하고 갔었다. 약 한 시간 정도 질문공세가 이어졌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그 매체에 호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목매달’ 한 것은 아니었다. 눈치 보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내 답변도 거침이 없었다. 어느 정도 질문을 다 했는지 편집장은 “잘 들었습니다. 또 연락하지요”라며 질문공세를 멈췄다. 그렇게 그 회사를 나왔다.

애초에 채용공고가 난 것도 아니어서 취업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불렀다는 것은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었다. 그렇게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편집장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목소리가 달랐다. 아주 부드러웠다. “내일 오전 10시쯤에 회사로 나올 수 있나요. 사장님이 정락인씨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전해왔다. 그때 알게 되었다. 오전에 회사에 가서 편집장과 기자들과의 만남이 ‘집단 면접’이었다는 것을.

다음 날 오전 세미 정장차림으로 사장실로 찾아갔다. 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여는 순간 사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수더분한 인상의 여성 사장이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정락인씨 세요?”라고 물어서 ‘네 그렇습니다’ 했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출구 쪽으로 다가오더니 양손으로 내 손을 잡는 것이었다.

“정락인씨가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우리 회사에 잘 오셨습니다”라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사장은 이것저것 호감어린 질문을 이어갔다. “우리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관심 가져주고 고맙습니다. 내가 20년 넘게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락인씨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라며 연신 호감을 표시했다.

그런 다음 “다른데 가지 말고 우리 회사에서 일합시다. 언제쯤부터 출근이 가능합니까. 내일부터 어때요?”

나는 ‘새해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발휘해 역발상으로 취업을 했다. 아니 ‘기자’가 됐다. 1996년 1월3일 첫 출근을 했다. 양복도 챙겨 입었다.

회사에 나와 편집장에게 인사했더니 손수 내 자리로 안내해 줬다. 내 자리는 창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나무와 꽃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여름에는 비를, 겨울에는 눈 내리는 모습이 훤히 내다 보였다.

또 하나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위에 미리 찍어둔 명함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내 이름 적힌 ‘기자 명함’을 받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슴도 뭉클해졌다. 명함이 금방 달아버릴 정도로 보고 또 봤다. 오전 10시에 회사 시무식이 있었고, 사장한테 ‘발령장’도 받았다. 이제 진짜 기자가 된 것이다.

월간 물류정보는 서울 용산 원효로 1가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주)기술정보에서 발행하는 잡지였다. 이곳에서는 월간 기계기술, 월간 프레스기술 등이 발간됐으며, 물류정보는 1992년에 창간됐다.기술정보 사옥은 좀 독특했다. 지상2층에 지하1층이었는데, 외부에서 보면 참 아름다웠다. 작은 정원도 있었다. 직원은 약 40명쯤 됐다.

나는 이렇게 내 의지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해 취업했다. ‘용기’와 ‘자신감’이 만든 결과였고, 향후 내 기자인생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