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죽음의 신고식

1월3일 시무식이 끝나자 편집장이 회의실로 기자들을 소집했다. 그는 내게 업무지침을 설명하고는 “오늘 점심 때 정락인 기자 신고식을 하겠다”며 전체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선배 기자한테 식당을 예약하도록 지시했다. 언론사의 ‘신고식’에 대해서는 이미 귀동냥으로 들었던 터였다. ‘엄청난 술판’으로 정평이 난 신고식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그런데 점심 때의 신고식이라니 ‘가볍게 넘어갈 모양이네’라며 내심 안도했다. 오전 11시50분쯤 되자 편집장과 기자들이 근처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국집이었다. 편집장이 중국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분이셔서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고 했다.

미리 예약해 둔 방에 10여 명이 삥 둘러 앉았다. 음식과 술이 들어왔다. 술 종류는 소주였다.

전체가 술잔을 채우고 “정락인 기자 환영합니다”라는 편집장의 건배사와 함께 첫잔을 모두 비웠다. 내가 답례의 뜻으로 편집장의 잔에 술을 채워줬다.

내 자리로 돌아온 순간 편집장이 술잔을 비우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잔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높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술잔이 내 옆에 ‘툭’ 하고 떨어졌다.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다.

이게 신고식의 시작이었다. 그냥 신고식이 아니라 ‘죽음의 신고식’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던진 술잔을 내가 받지 못하면, 받을 때까지 계속 술잔을 비워야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잔을 받으면 그때서야 옆 사람에게 술병이 넘어갔다.

근데 술잔을 바로 앞에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던질 듯 하다가 옆으로 던지고, 또 위로 던질 듯하다 아래로 던지는 등 온갖 트랙을 쓰며 짖궂게 했다. 나는 요리조리 몸을 날리며 우스꽝 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96년 4월26일 회사 워크샵 때.(왼쪽부터 박기봉 기자, 필자, 김우일 기자)

이런게 재밌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그날 점심 때 내가 마신 술잔 수를 세면 30잔은 족히 넘을 것이다. 소주 한 병에 보통 7잔이 나오니까, 소주 4병을 마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버텼다. 신고식 내내 몸을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실 억지로 참고 또 참았다. 기자 생활 첫 날부터 트집잡히지 않으려고 했다. 실수를 해서도 안 되었다. 그랬더니 편집장은 선배 기자를 시켜 나를 근처의 사우나로 데리고 갔다. 정말이지 죽다 살아남았다. 이러다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신고식에 대한 룰이 따로 있는게 아니었지만 재미로 관행처럼 이어져왔던 것이다. 그 뒤에 선배들을 설득해서 ‘죽음의 신고식’을 없애도록 했다.

신고식은 간소하게 했지만 술잔을 던지거나 해서 신입 기자에게 죽을 정도로 술을 마시게 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