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음성 동거녀 살인 콘크리트 암매장 사건


2015년 2월 청주 상당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변재관 경위(46)는 ‘살인사건’ 첩보를 입수한다.

다른 실종 사건을 수사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람한테 “음성에서 한 여성이 몇 년 전 동거 중인 남성에 의해 살해돼 암매장됐다고 하더라”는 얘기였다.

변 경위는 첩보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곧 탐문을 시작한다. 암매장 피해자가 누구인지, 언제, 어디서 사건이 발생했는지 파악하는데 급선무였다. 우선 음성 일대 유흥가를 집중해서 탐문을 벌였다.

그러다 2012년 대소면의 한 호프집에서 일하던 A씨(당시 36·여)가 갑자기 사라진 뒤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드디어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한 것이다.

변 경위는 A씨가 살아 있는지 ‘생활 반응’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A씨가 살아 있다면 카드로 물건을 사고, 버스를 타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인터넷 등을 이용했을 것이다. 변 경위는 A씨의 신용카드 사용 내용 내역, 병원 진료 기록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는 2012년 9월 이후로는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A씨가 살아 있을 확률이 낮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A씨를 살해한 것일까.

변 경위는 여기에 초점을 두고 A씨 주변을 집요하게 조사했다. 이런 과정에서 A씨 동거남의 존재가 드러났다. A씨가 술집에서 이아무개씨(38)와 수년간 동거하면서 일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씨는 음성군의 한 용역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변 경위는 이씨를 불러 동거녀인 A씨의 소재에 대해 추궁했다. 이씨는 범행을 부인하다 끈질긴 추궁 끝에 자신의 어머니가 일했던 밭에 암매장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해당 밭(160㎡ 규모)은 농사를 짓지 않아 방치된 상태였다.

경찰은 밭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밭 가장자리 1m 깊이 땅속에서 A씨의 백골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뼈만 남은 채 묻혀 있었으며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었다. 옷가지나 소지품은 없었지만, 시신을 결박할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노끈이 발견됐다.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8개월 만의 결실이었다.

경찰은 이씨를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시신 유기를 도운 이씨의 동생(36)도 함께 체포해 범행동기 등을 조사했다. 완전범죄가 될 뻔 했던 사건은 한 경찰관의 끈질긴 추적 끝에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이씨는 우연히 알게 된 A씨와 사건 발생 2개월 전에 동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에서 “2012년 9월쯤 A씨의 원룸에서 ‘헤어지자’는 말에 화가나 주먹을 휘둘러 숨지게 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A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원룸에 3일간 방치했다.

그는 시신 처리 방안에 골몰했다.

그러다 시신을 암매장하기로 하고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생은 처음에는 자수를 권유했으나 형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시신를 암매장하는데 돕기로 한다. 형제는 A씨의 시신을 집 안에 있던 큰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넣어 이불로 덮은 뒤 승용차에 실었다.

범행 장소에서 2.2km 떨어진 밭으로 간 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A씨의 시신을 넣었다. 그런 다음 미리 준비해 간 시멘트를 반죽해 부었다. 이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동거녀가 갑자기 사라졌다”며 행방을 묻고 다니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은폐했다.

피해자인 A씨는 불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부모가 이혼한 뒤 할머니 밑에서 생활하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가출했다. 이후 보육원을 전전한 A씨는 16살 이후에는 아버지와 1년에 한 두 번 연락하는 게 다일 정도로 가족과 사실상 연락을 끊고 지냈다.

강원도에 살던 A씨의 아버지는 딸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딸이 숨진 2012년부터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2016년 10월 경찰이 딸이 숨졌다고 알리면서 비로소 딸이 죽은 것을 알았다. A씨의 아버지는 경찰에서 “딸이 혼자 잘 사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딸과 20년간 남남처럼 지내온 것이었다.

검찰은 동거남 이씨와 동생을 구속기소했다.

1심에서는 이씨에게 징역 5년, 동생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판결 후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비난 여론이 일었다. 이씨는 여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2017년 6월1일 열린 항소심에서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이승한 부장판사)는 원심을 파기하고, 이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동생에게는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범행 결과가 중하고 비난 가능성이 크지만 범행을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범행이 우발적으로 이뤄진 점 등을 살피면 원심의 형량이 무거워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씨가 감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A씨의 아버지가 돈을 받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A씨의 아버지는 동거남이 내민 합의금을 받고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항소심에서 이씨의 감형이 결정되자 검찰은 “생전 피해자와 절연 관계에 있던 아버지의 합의로 감형돼 유감스럽다”며 “이런 경우를 유대 관계에 있는 유족의 일반적인 합의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1심도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난받았으나 항소심에서 2년이나 감형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하루 뒤인 6월2일 청주지법 형사합의11부(이현우 부장판사)는 “노래방에서 성추행 당했다”는 고3 딸의 말에 격분, 커피숍에서 만난 고교 취업지원관(산학겸임 교사)을 흉기로 살해한 김모(46·여)씨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한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30대에게는 징역 3년을, 고3 딸을 성추행한 상담교사를 살해한 40대 여성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국민 법 감정을 거스리는 판결이라는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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