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왕궁중학교 교생


대학 4학년 때인 1994년 5월, 모교인 왕궁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다. 이때는 교사의 꿈을 접었을 때다. 여자교생 8명에 남자교생은 나 혼자였다. 교생들은 과학실을 교무실처럼 사용했다.

처음에는 빳빳한 양복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어느 날 과감하게 캐주얼 차림으로 학교에 나갔다. 교장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도 복장을 문제삼지는 않았다. 그뒤부터는 편하게 입었다.

나는 1학년 1반에 배속됐다. 아침에는 담임교사 대신 교생인 내가 자율학습 감독 겸 교실에 들어갔다. 우리 반의 아침자율학습시간은 전교에서 가장 소란스러웠다. 얼마나 떠들었는지 교장선생님이 교내 방송을 통해 “어떤 반이 떠드냐”며 방송을 할 정도였다. 나는 여기에 게의치 않았다.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우리 반 교실이 있는 복도를 왔다갔다 하셨다. 창문을 통해 힐끗힐끗 교실 안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와 아이들은 떠드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를 정해 놓고 토론(이야기)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있길 바랐고 또 그렇게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반 교실로 가서 아이들과 둘러앉아 재잘재잘 떠들면서 같이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는 운동장에서 서로 뒤엉켜 장기자랑도하며 어울렸다.

아이들도 그런 파격적인 교생의 모습을 신선하게 바라보고 열광했다. 3학년 교실에 자율학습 감독을 가면 아이들은 내 귀를 잡아 당기며 귓속말로 연애상담을 하기도 했다. “옆 반 남학생 누구를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내가 편지를 전해주는 ‘사랑의 전령사’가 돼 주기도 했다. 내게 설레이는 마음을 잔뜩 담아 편지를 건네주는 여학생들도 있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어떤 때는 우리 반 아이들, 2학년 아이들, 3학년 아이들도 찾아왔다. 우리는 왕궁저수지를 따라 걷고 저수지 둑에서 놀고, 사진을 찍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생 실습이 끝날 때는 3학년 여학생들이 한 마디씩 썼다며 낚서장을 코팅해서 내밀기도 했다. 역시 사춘기 소녀들이다.

2003년쯤에는 1학년1반이었던 아이들이 회사(중앙일보)로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모두 한 가정의 엄마 아빠가 돼 있으리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추억은 내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