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 작전동 여아 살인사건
억울하게 죽은 두 아이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000년 8월5일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 ㅅ아파트 뒤편 공터에서 초등학교 2학년인 안아무개양(7)이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때 20대 남성이 아이들에게 다가와 “백화점이 어디냐?”고 물었다.
안양은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하면서 이 남성과 함께 길을 걸어갔다. 한 10m쯤 갔을 때다. 갑자기 몸속에 지니고 있던 흉기를 꺼낸 남성이 안양의 복부를 찔렀다.
안양은 그 자리에 쓰러졌고, 범인은 백화점 방면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주민 정아무개씨(37)가 안양을 발견해 곧바로 병원에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길을 묻는 남성에게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려 했던 안양. 범인은 살인마로 돌변해 안양의 목숨을 빼앗았다. 범행의 목적도 불분명했다. 성추행이나 금품을 노린 정황은 없었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묻지마 살인’에 가까웠다.
경찰은 즉각 수사본부를 꾸렸다. 3개 반 34명으로 수사반을 편성, 주변의 우범자와 정신이상자, 피해자 가족 원한 관계 등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폈다. 그 숫자가 1200명에 달했다. 그러나 대부분 알리바이가 확실해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그런데 이전에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다. 안양이 살해되기 약 두 달 전인 5월31일 오후 6시25분쯤 불과 500m 떨어진 곳에서다. 작전동의 다른 아파트 화단에서 박아무개양(4)과 어머니가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어머니가 잠시 5층 집에 올라가면서 아이 혼자 남게 됐다.
그때 한 남성이 나타나 아이의 옆구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10분 사이에 범행이 일어났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던 아이는 어머니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사건 현장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목격자도 없었다. 이 날은 야속하게도 비가 내려 경찰이 증거물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범인의 수법은 안양 사건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범행 목적이 불분명한 묻지마 범죄에 가까웠고, 흉기로 단 한 차례만 찔렀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두 어린이의 피살사건’이 동일인의 소행일 수 있다며 연관 조사를 벌였다. 범행시기와 장소‧수법이 비슷해 두 사건의 연관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했다. 하지만 목격자, 현장 증거가 거의 없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박양 피살사건의 경우 목격자가 없는 게 문제였다. 여러모로 수법 등이 비슷했지만 동일범의 소행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정신이상자 A씨(27)를 용의자로 봤으나 범인으로 특정하지는 못했다. A씨는 안양이 살해된 날 오후 인근 교회의 예배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돼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그나마 안양 피살사건의 경우 목격자가 있었다. 당시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이었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아이들을 상대로 목격자 진술을 받았다.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인의 용모를 파악하고, 몽타주도 만들었다.
키는 165~168cm, 마른 체형의 20대로 파악됐다. 옷은 흰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고 있었다. 경찰은 범인의 몽타주 수 천 장을 만들어 배포했다. 아이들이 기억한 ‘그 놈 목소리’는 가늘지만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사건 이후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을 칼로 찔러 죽인 범인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또 한 지역에서 어린이의 피살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여기에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면서 불안은 공포로 바뀌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동행하거나 집밖에서 놀지 못하게 했다. 주민들은 “아이들이 밖에 있으면 불안하다”며 범인을 빨리 잡아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건은 미궁에 빠지기 시작했다. 범행 목격자가 있고 몽타주까지 만들었으나 거기까지였다. 제보도 쏟아졌지만 대부분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매일 저녁 경찰력을 동원해 검문검색을 벌였으나 사건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다.
안양 피살사건은 영구미제가 될 뻔했다. 하지만 ‘태완이법’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2000년 8월1일 이후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는데, 시효 만료를 불과 4일 앞두고 있었다.

반면 박양 사건은 2015년 5월31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미제로 남았다.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가 없게 됐다. 약 2개월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이렇게 엇갈린 운명이 됐다. 현재 안양 피살사건 수사는 인천지방경찰청 장기미제전담팀(032-455-2854)에서 맡고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두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박양과 안양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에 무게가 실린다.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특히 범인은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이 그것도 여아를 노렸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가 단 한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다른 게 있다면 안양 사건은 여러 아이들이 있는데 대담하게 나타나 곧바로 범행에 나섰다는 점이고, 박양 사건은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뜨자 곧바로 다가가 살해한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두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할 수 있다.
2.범인은 마을주민일 가능성 높다
두 사건이 일어난 곳은 거리상으로는 불과 500m에 불과하다. 범인은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어린이들이 있는 놀이터에 나타나 범행에 나선 것을 보면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은둔생활자일 수가 있다. 게임에 푹 빠져있던 은둔형 외톨이 이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정신이상자가 벌인 범행일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신속하게 현장에서 도피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직후 매일 저녁 검문검색을 벌였지만 수상한 사람이 검문에 걸려든 적은 없었다. 범인이 사건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살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3.약한 어린이들을 노린 지능범이다
범행의 형태를 보면 ‘묻지마 살인’에 가깝다. 범인은 또 약한 어린이, 그것도 여아만을 노렸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적고 제압하기 쉬운 상대로 아이들을 골랐다고 봐야 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현장이나 인근에 CCTV가 없었다는 것이다. 범인은 사건현장에 CCTV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범행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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