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악명 높은 식인 가족 ‘소니 빈 일가’
15세기~16세기 사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는 식인 가족으로 유명한 ‘소니 빈 일가’가 살았다. 이들은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고 알려졌다. 소니 빈 이야기는 런던의 악명 높은 뉴게이트 교도소 범죄목록인 뉴게이트 캘린더에 나온다.
소니 빈은 스코틀랜드인으로 에딘버러에서 동쪽으로 150킬로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수구 청소부인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며 여자 하나를 데리고 갤로웨이 해변에 정착했다.
그는 해변가의 한 동굴을 발견하고 그곳에 은신처를 마련한다. 이 동굴은 천연 요새나 다름없었다. 깊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수없이 뻗어있는 1마일이 넘는 거대한 동굴이었다.
입구로부터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완전한 어둠이었고. 이틀에 한 번꼴로 조수가 높아지면 동굴 입구로부터 수백 야드는 바닷물에 잠겨서 침입자를 거부했다. 숨어 살기에는 최적의 위치였다.
소니 빈은 생업으로 ‘강도 질’을 선택한다. 범행이 들통나지 않으려고 철칙을 세웠다. 그에게 걸린 사람들은 반드시 죽인다는 것이었다. 소니 빈은 강도행각으로 많은 재물을 모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식량 조달’의 어려움이었다.
강도질로 빼앗은 것 중 고가의 물건을 팔 경우 금방 범행이 탄로 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인육을 식용으로 먹기로 한 것이다. 그때부터 소니 빈 부부는 강도질을 한 후 피해자를 죽여 시신을 식량으로 조달했다.
장기간 신선도 유지를 위해 소금에 절여 보관했다. 소니 빈은 그의 아내와의 사이에 14명의 자녀(아들 8, 딸 6)를 낳았다. 이들은 세상과 단절하며 근친상간을 통해 남자 27명, 여자 21명이라는 대가족을 이뤘다. 이들 자손들도 소니 빈 부부와 같이 강도질을 한 후 피해자의 인육을 식량으로 먹었다.

에딘버러 지역에서 실종자나 행방불명자들이 속출하자 스코틀랜드 당국도 바짝 긴장했다.
조사에 나섰지만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종자들이 식량으로 먹혔을 것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소니빈 악당들이 무장한 한 상단을 털려다 오히려 이들에게 패배하면서 꼬리가 잡힌다.
스코틀랜드 당국은 400명의 군대와 훈련된 군견을 파견해 대대적인 수색작업에 돌입했다. 결국 군견들에 의해 동굴이 탄로 났고, 그곳에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시체와 백골, 약탈된 물품 등을 찾아냈다.


소니 빈 일가는 군대에 맞서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48명 전원 체포된다. 재판에 회부된 소니빈 일당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남자들은 산 채로 팔과 다리가 절단 됐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마녀처형과 같이 장작불로 태워졌다. 소니 빈 일가 중 누구도 자신들의 범행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니 빈 일가’의 이야기는 전설과 실화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역사학자들은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실화라고 주장하는 측은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대고 있다.

첫째, 1696년에 출판된 ‘Nathaniel Crouch’에 따르면 ‘그들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가 죽기 1년 전인 1459년에 붙잡혀 남자들은 능지처참을 당했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이후 화형에 처해졌다고 나와 있다.
둘째, ‘소니 빈 일가’의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필수 관광코스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실제 소니 빈 일가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등은 현재 유명 관광지가 돼 있다. 현지에서는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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