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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김순남 할머니 실종사건

장항선 열차는 충남 천안에서 서해안을 따라 전북 군산과 익산을 연결한다.

천안역에서 출발해 대천, 서천을 지나 종착역인 장항역까지 154.4㎞를 달린다. 장항선에는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간이역’이 유독 많다.

이중 2006년에 문을 닫은 서천군 종천면 지석리에 있는 ‘기동(奇洞)역’은 한때는 장항선의 아름다운 간이역 중 하나였다. 기동역 근처에는 시골길 삼거리에 작은 슈퍼 하나가 있었다. 마을에서 약 300m 떨어진 ‘기동슈퍼’다.

김순남 할머니(75)는 다섯 아들 형제를 모두 키운 후 홀로 작은 슈퍼를 운영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2008년 1월24일 새벽 기동슈퍼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물류업에 종사하던 A씨(남)는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전방에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것을 봤다. 처음에는 해가 뜨는 줄 알았다. 불길에 점점 가까이 가보니 진원지는 기동슈퍼였다.

불은 삽시간에 슈퍼 건물을 한 입에 집어 삼키고 있었다. A씨는 비상 깜박이를 켜고 길목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119에 전화를 걸어 “슈퍼에 불이 났다”고 신고했다.

얼마 후 소방차 12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출동했다. 마을주민들은 새벽녘부터 ‘탕’ ‘탕’ ‘탕’ 하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마을이장은 “부탄가스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전쟁 난 것 같아서 밖을 내다보니까 슈퍼 쪽에서 불이 훨훨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하나 둘씩 가게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아이고, 할머니가 저 안에 있는데, 어떻게 해”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불길은 신고한 지 약 1시간 만인 7시쯤이 돼서야 잡혔다. 주택 2동과 가게 안에 있던 물건들은 완전 전소됐다. 피해규모는 부여소방서 추산 4000만 원 정도다. 주민들은 김순남 할머니가 화재로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소방관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의 시신을 찾았다.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 벌어진다. 소방관들이 전소된 슈퍼의 잔해를 수색했지만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시신도 없었다. 슈퍼 안채에서 생활하던 할머니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유일하게 발견된 할머니의 흔적은 안방 장판 조각에서 나온 혈흔이 전부였다. 대체 김순남 할머니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찰은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격자를 찾았다.

이틀 전인 22일 오전 9시30분쯤 마을 주민 정아무개 할머니는 기동슈퍼에 들렀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슈퍼에서 차표를 사야했기 때문이다. 정 할머니가 “나 시장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김 할머니는 “감기가 들어서 그러니 콩나물 좀 사 달라”며 천 원 짜리 한 장을 줬다.

김 할머니 가게에서는 택배도 취급했다. 택배를 발송하거나 배송할 물건을 슈퍼에 가져다 놓으면 택배기사가 픽업하거나 수취인이 가져가는 식이다. 22일 오후 12시30분쯤 택배기사가 주민에게 온 택배를 김 할머니 가게에 맡기러 들렀다. 그때 할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고 있었다.

오후 6시에는 마지막 손님인 동네 아주머니가 퇴근길에 들러 소주를 사갔다. 오후 7시30분에는 낮에 온 택배의 수취인인 김아무개씨(여)가 남편과 함께 물건을 가지러 가게에 들렀다.

그런데 평소 보다 일찍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가게 안에 불이 켜져 있어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김씨는 문을 두드리며 “급해서 그러니 오늘 온 택배 좀 달라”고 말했다.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집안에 켜져 있던 불이 갑자기 꺼졌다. 다음 날 슈퍼는 하루 종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김씨 부부는 저녁 때 다시 슈퍼에 들렀으나 문이 잠겨있는 것은 물론 불도 꺼져 있었다. 김씨는 “이 양반 어제 연탄가스로 어떻게 잘못 됐나. 왜 문도 안 열고 그러신데”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슈퍼에 불이 났던 것이다.

소방 당국과 전문가의 추정으로는 불은 할머니가 기거하고 있던 방안의 뒤쪽에서부터 시작됐고, 불길의 상태로 봐서 최초 목격자가 발견하기 약 20~30분 전에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김 할머니의 소재파악에 총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시골외곽에 있는 슈퍼다 보니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현장 인근에 한 대가 설치돼 있기는 했으나 별다른 것은 없었다.

할머니가 실종될 당시 목격자도 없어 수사는 초기부터 벽에 부딪쳤다. 실종 전단지를 배포하며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종’에 무게를 두고 인근 지역을 샅샅이 찾았다. 외지에 있던 김 할머니의 아들 형제들도 슈퍼 옆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매일 어머니를 찾아다녔다.

이런 와중에 종천면 일대에서 출처 불명의 이상한 낙서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순남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죽였다’는 내용이다. 실종 전단지가 붙어 있는 곳 아래에는 ‘아들이 죽였다’고 적혀 있었다. 낙서는 인적이 드문 곳의 담벼락이나 대문 등에서도 발견됐다.

이후 종천면 주민들은 “아들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했다”거나 “할머니의 재산을 노리고 둘째 아들이 살해했다”는 등의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 주민들은 범인이 잡힌 것으로 알고 있었다. 김 할머니의 둘째 아들은 졸지에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렸다.

정말 둘째 아들이 범인일까. 경찰은 그를 불러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했다. 김씨의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그는 범행 당일 서천이 아닌 서울에 있었고, 넷째 동생과 함께 사업 관계 일을 보고 있었다. 통화기록과 CCTV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낙서에는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었다. 낙서가 발견된 시점은 할머니가 ‘실종’ 상태였다. 그런데 낙서에는 할머니 신변에 대해 ‘죽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이것은 낙서를 쓴 당사자가 할머니의 실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범인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낙서에는 ‘순남 할머니는 둘째가 죽였다’ ‘순남 할머니는 둘째아들이 죽였다’며 할머니를 ‘성’도 붙이지 않고 ‘순남 할머니’로 부르고 있다. 이것은 할머니와 평소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둘째 아들’은 형제들 중 할머니와 가장 오래 살았다. 즉 둘째 아들과 재산 문제를 연결시켜 거론했다는 것은 집안 사정까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머니의 실종 이후 새로운 증언들이 나왔다. 택배를 찾으러 슈퍼에 갔던 부부는 당시 가게 앞에 낯선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최초 화재 신고자인 A씨도 불이 나기 2시간 전인 24일 새벽 4시쯤 슈퍼 앞에 흰색 소형차가 주차돼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당시 차가 정면을 향해서 후진으로 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면 수사에서는 자세하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경찰 수사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실종 전단지까지 제작해 배포했지만 유력한 목격자나 제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순남 할머니의 장남은 원로 코미디언 김성남씨다. 그에 따르면 화재가 일어나기 이틀 후에는 할머니 생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들 모두 어머니를 찾아뵈려고 준비하고 있었단다.

할머니의 실종 후 다섯 형제들은 인근지역인 서천, 군산 등에 있는 병원을 샅샅이 찾았다. 또 할머니가 갈만한 곳도 모두 찾아봤지만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할머니는 살해된 후 시신이 유기됐을 가능성이 높다. 김순남 할머니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범인이 남긴 단서들

1.사건 발생 시각은
김 할머니는 1월22일 오후 6시 소주를 사러 간 마을주민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오후 7시30분에는 낮에 온 택배의 수취인인 김아무개씨 부부가 물건을 가지러 가게에 들렀다. 이때 가게 문이 닫혀 있었는데, 집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이 없는 가운데 10분 후 불이 꺼졌다.
할머니에게 아무 일이 없었다면 당연히 인기척을 했을 것이다. 김씨의 전화도 받지 않은 것을 보면 이때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범인이 슈퍼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하루 종일 슈퍼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22일 오후 6시에서 7시30분 사이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2.할머니는 살해된 후 옮겨졌다
할머니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은 22일 저녁이다. 그런데 슈퍼에 화재가 난 것은 이틀 뒤인 24일 새벽이다. 범인은 왜 이틀이 지난 다음에 슈퍼에 불을 질렀을까. 살인 후 불을 지른 경우 범행 과정에서 생긴 흔적을 지우기 위한 목적, 즉 증거인멸을 위해서다. 또 현장에는 살인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기동슈퍼 화재 현장에는 피해자인 김 할머니가 사라졌다. 이것은 할머니를 살해한 범인이 시신을 현장에 방치했다가 방화 직전 어디론가 옮긴 후 불을 질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22일 저녁 택배를 찾으러 간 김씨 부부가 가게 앞에서 자전거 한 대를 봤다고 했다. 최초 화재신고자는 화재가 나기 2시간 전인 24일 새벽 4시에 가게 앞에 흰색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범인은 범행 당시에는 자전거를 타고와 시신을 운반할 수 없어 방치했다. 이틀 뒤 새벽에 승용차를 가져와 시신을 옮긴 후 슈퍼에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3.범인은 면식범이다
범인은 슈퍼에 불을 지르고 할머니의 시신까지 옮겼다. 그는 왜 악착같이 증거를 없애려고 했던 것일까. 이 뿐만이 아니다. 할머니의 실종 전단지가 배포되자 여기저기서 ‘순남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죽였다’는 낙서가 발견된다. 경찰 수사망을 교란시켜 빠져나가려는 노림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범인이 김 할머니를 잘 알고 있는 면식범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또 마을 주변 지리에도 익숙하고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범행의 목적은
기동슈퍼의 손님 대부분은 막걸리 한 병, 담배 한 갑 사가는 주민이었다. 말 그대로 ‘구멍가게’ 수준이었고, 장사로 버는 돈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의 재산은 다른 사람이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 등이었다.
김 할머니가 거주하던 주택 2동이 도로로 편입될 예정이어서 1억2000만 원 정도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이때는 보상금 지급이 안 된 때였다. 범행의 목적이 금품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김 할머니는 마을 주민과도 원활하게 잘 지냈다. 경찰수사에서도 누구에게 원한을 사거나 살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범인이 할머니와 사소한 말다툼을 했거나 성폭행을 하려다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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