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이웃사는 악마’ 통영 초등학생 살인사건


지금까지 발생한 성폭력 사건 범인들 대다수는 내 주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전체 성폭력 가해자 중 83%는 아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이웃’을 빙자해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는 호시탐탐 범행 기회를 노리며 피해자의 주위를 기웃거렸다.

‘이웃 사촌’이 아니라 ‘이웃 악마’들이었다.

2012년 7월16일 오전 7시30분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중촌마을에 사는 한아름양(10·초교 4년)이 학교를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흰색 반소매 티셔츠와 분홍색 치마, 분홍색 운동화를 신은 화사한 차림이었다.

한양은 평소 약 2.6km인 산양초등학교까지 버스나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 등교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양은 이날 학교에 가지 않았고, 밤늦게까지 집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양의 아버지(53)는 오후 10시쯤 인근 산양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다음날인 오전 8시부터 신전리를 중심으로 경찰의 수색이 시작됐다. 경찰은 주거지 인근 도로에 설치된 방범용 폐쇄회로(CC)TV와 시내버스 블랙박스 등을 확인했지만 한양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실종 이틀 뒤인 18일 오후 집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도로변 하수구 맨홀 아래에서 한양의 휴대전화를 찾아냈다. 실종 당일 오전 7시56분에 전원이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통영경찰서는 ‘실종아동경보’(앰버 경보)를 발령하고 공개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한양이 사는 동네와 인근 야산, 찜질방, PC방 등을 집중 수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양의 가족은 사건 초기부터 집 인근에서 고물 수집을 하던 김점덕(45)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성폭력 등 전과 12범인데다가 2005년 1월에도 마을 근처 냇가에서 62세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강간상해죄로 4년간 복역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씨는 피해자가 반항하자 돌멩이로 내리치는 등 잔인한 행태를 보였다. 경찰도 김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았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어 체포하지 못했다.

그러다 경찰이 탐문수사에 꼬리가 잡혔다. 한양이 실종된 날 오전 김씨가 버스정류장 주변을 서성거렸다는 마을 주민의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경찰은 18일 임의동행 형식으로 그를 불러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했다.

김씨는 “버스 정류장에 간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경찰은 다음날인 21일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으라고 김씨에게 통보했다. 그 뒤 김씨는 종적을 감췄다. 이때부터 경찰은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섰다.

22일 오전 9시40분쯤 집에서 2km쯤 떨어진 산양읍 남평리 주변을 서성거리던 김씨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됐다. 김씨는 범행을 부인하다 경찰의 추궁에 못 이겨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집 근처 밭에서 1t 트럭을 세워놓고 일하고 있는 도중 한양이 학교까지 태워달라고 해 집으로 데리고 갔다. 성폭행 하려는데 반항을 해 목 졸라 숨지게 했다”며 “우발적 범행”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많은 범죄자들이 수사 과정 중에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로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김씨의 진술도 이런 패턴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는 한양과도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 한양의 집에서 250m쯤 떨어진 곳에서 고물 수집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왕래가 있었다. 김씨의 아내는 “한양이 집에 놀러와 물도 마시고, 냉장고에 있는 옥수수도 먹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이웃집 아저씨’였던 것이다.

김씨의 이상한 행동이 마을주민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을 서성이며 등교하는 아이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버스를 놓치는 아이들이 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태워주곤 했다”고 전했다. 김씨가 한양을 계획적으로 납치했다고 보여지는 정황인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사건당일 아침 한양이 버스정류장에 나오자 “학교까지 태워주겠다”며 자신의 화물차 조수석에 태웠다. 한양이 트럭에 타자 위협해 손을 뒤로 묶고 입에 테이프로 붙였다. 이어 한양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끈 뒤 인근 맨홀에 버렸다.

김씨는 100m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이동해 안에 가족이 있는지 살피며 마을 주변을 배회했다. 김씨가 마을을 돌아다니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그러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양을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김씨가 방 안에서 성폭행하려고 하자 한양은 고함을 지르며 반항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한양의 입을 틀어막고 재차 성폭행을 시도했다. 그래도 계속 고함을 지르려하자 거실에 있는 노끈으로 목 졸라 살해했다. 한양의 시신을 마대자루에 넣어 트럭 짐칸에 실었다. 이어 창고에 가서 삽을 챙긴 뒤 10㎞ 떨어진 통영시 인평동 야산으로 이동했다.

김씨는 땅을 파고 한양의 시신을 암매장한 후 흙과 나뭇가지로 덮었다. 경찰에 따르면 시신은 알몸 상태로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마대자루에 담겨 덤불 아래에 매장돼 있었다.

한양은 이렇게 사건발생 1주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한양은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도 밝게 자랐다. 이혼한 아버지가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외지로 나가서 일을 했기 때문에 주로 오빠(20)와 생활했다. 딸의 시신을 마주한 한양의 아버지는 “학교 간다고 집에서 나간 지 오늘이 일주일째다. 열심히 찾았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범행이후 김씨의 행동은 인면수심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범행 다음날인 17일부터 경찰이 수색에 나서자 그는 주변을 서성이며 조사 장면을 구경했다. 또 평소와 다름없이 고물을 수거하고, 여유롭게 낚시도 다녔다.

여기에다 목격자로 태연하게 방송 인터뷰까지 했다.


MBC 기자와 만나 “오전 7시30분쯤 사이에 집을 나왔어요. 아름이가 정류장에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밭으로 갔습니다.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라며 목격자 행세를 했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김씨는 음란 영상에 심취해 있었다. 경찰이 김씨 집에서 압수한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그 안에서 음란물 218편이 발견됐다. 이중 70여 편이 아동 포르노 등 음란 동영상이었다. 김씨는 “파일공유사이트(P2P)에서 다운로드 받았다”고 진술했다.

김씨에게는 어린 아내와 딸도 있었다. 2002년 나이차가 23년이나 되는 베트남인 아내(22)와 결혼해 세 살 배기 딸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김씨가 성폭력 전과자인 줄 모르고 결혼했다고 한다.

그만큼 남편에 대한 배신감도 컸다.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부인 있어, 왜 그렇게 했어?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체포된 뒤 한동안 대면접촉을 꺼리는 등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그러다 7월26일 현장검증 전 딸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김점덕은 마을주민에게도 배은망덕했다.

2009년 5월 교도소에서 출소하자 주민들은 그가 사회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집이 없던 김씨에게 베트남 출신 부인과 살 수 있도록 마을회관 1층을 월세 10만 원에 내주기도 했다. 그만큼 마을주민들의 분노도 컸던 것이다.


김점덕은 나중에 “죽을죄를 졌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무기징역이 선고돼 현재 복역 중이다. 욕정에 눈먼 악마한테 또 한 명의 아이가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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