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살인마 유영철이 여기자에게 보낸 편지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여성 등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다.

월간조선 객원기자 이은영씨는 2004년 <월간조선> 9월호에 ‘연쇄 살인범 유영철의 어린시절’을 실었다. 이걸 계기로 이 기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2004년 8월부터 12월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2005년에는 ‘살인중독’이라는 책으로 묶어 발간했다.

책의 제목은 이수정 경기대 심리학과 교수가 붙여준 것이며, 여기에는 이 교수가 분석한 유영철의 내면 심리에 대한 보고서와 유영철 사건의 전모에 대한 자료도 함께 수록됐다.

이은영 기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유영철에게 “흉악범의 어린 시절이 너무나 순수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 사람의 인생이 환경에 얼마나 지배를 받는지에 대해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고, 이 편지를 받은 유영철은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유영철이 이 기자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는 2004년 8월27일, 두 번째 편지는 9월6일에 오는 등 유영철이 이 기자에게 보낸 편지는 50통이 넘는다. 유영철은 편지마다 자신의 자화상, 피해자 유족들에게 사죄의 절을 올리는 모습, 직접 제작한 크리스마스 카드 등을 그려 보냈다.

책에는 유영철이 수사진과 범죄심리학자, 재판부와 언론에 털어놓지 않은 내면의 심리와 갈등, 변화, 후회, 유가족들에 대한 참회 등이 편지라는 형식으로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중 아들과 관련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11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 낼 때보다 이때 정적을 깨고 걸려온 휴대전화.

저 너머에서, “아빠, 뭐해? 감기 안 나았어”라고 자신의 건강을 묻는 천진난만한 아들의 전화 목소리가 가장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악마로 변신한 그는 잠시의 죄책감을 접어두고 인체 구조까지 치밀하게 연구해가며 잔인한 살인극을 저질렀다. 시신을 자를 때는 용기를 얻으려 영화 ‘양들의 침묵’처럼 반젤리스의 ‘콜럼버스 1492’라는 노래를 틀어놓기도 했다.

2011년 4월 시인 권성훈씨는 ‘한국범죄심리연구’에 ‘유영철 글쓰기에 나타난 사이코패스 성격 연구’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은영 기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유영철의 내면을 분석한 글이다.

유영철은 유년시절 자신의 외할머니가 “생활고에 못 이겨 옹알이를 하고 있는 유영철을 죽여버릴 생각을 했으며, 평생 딸(유영철의 어머니)에게 짐이었다”고 회고한 것을 편지에 옮겼다. 권 시인은 유영철 어머니의 이 같은 무의식이 유영철의 무의식에 투영되면서 고통과 좌절을 경험하는 등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악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유영철은 자신의 살인에 대해 “학창시절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 한 제가 희대의 살인마가 될 수 있을까요?” 라고 되묻기도 한다.

하지만 유영철의 중학교 동창생들은 그가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깡패조직과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발견하면 선배라도 무릎을 꿇렸다는 증언을 한다.


유영철은 청소년시절 자신의 첫 범죄로 기록된 절도사실을 부인하는 등, 스스로 망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또 혁명가 체 게바라의 혁명여행을 본떠 제주도 일대를 여행하는 등 영웅에 대한 동경을 품기도 한다. 권 시인은 이로 미뤄볼 때 “유영철의 행동발달 심리를 보면 ‘피상적 매력’과 ‘과도한 자존감’이 충만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유영철에게 파탄의 조짐이 인 것은 아내와의 이혼이었다. 강간 등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영철은 이렇게 토로한다.

“2000년 10월 강제이혼을 당하면서 ‘신은 죽었다’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저도 죽었다고 마음먹었고 만물을 창조했다는 유일신을 부정하며…(중략)… 하나님에게 저의 희망을 구걸하지 않았고 진리를 찾아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중략)…이런 아픔을 겪으면서 점점 분노로 가득차면서 저는 부자들에게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유영철은 동시에 예술고 진학을 희망했으나 색맹테스트에서 탈락하면서 학업의 꿈을 접기도 했다. 유영철은 “색맹 면접에서 굴욕을 경험한 후 화려한 물감이 아닌 데생연필만 만지작거리는 시간들을 보내며 스스로 외골수 성격을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권 시인은 이 같은 유영철의 말을 종합할 때 “억압으로 인해 생긴 증오와 분노와 같은 비의식이 자신의 억압을 적절히 통화하지 못하고 극복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해 시작된 유영철의 살인행각에서 권 시인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발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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