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포르투칼의 악명 높은 ‘다리 위 연쇄살인마’


‘디오고 알베스’는 포르투갈의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다.

그는 1810년 스페인의 갈리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알베스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방탕한 생활로 돈을 모두 탕진했다. 돈이 떨어지자 평범하게 살아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길은 ‘강도’. 역사학자들은 그가 문맹이었고, 여자친구 게르트루데스 마리아가 범죄를 부추겼다고 말하기도 한다.

알베스는 26세 때인 1836년 알칸타라 계곡에 있는 ‘수도교’에서 범행을 시작한다. 18세기에 건설된 이 다리는 길이가 1km, 가장 높은 곳은 65m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알베스는 이곳을 지나는 농민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시골 농부들이 수확한 작물을 내다 팔기 위해 리스본에 올 때 이 다리를 지나야 한다. 그는 이걸 이용해 다리 근처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작물을 팔고 고향으로 향하는 농부들을 흉기로 위협해 돈을 강탈했다.

돈을 빼앗은 뒤에는 피해자들을 다리 난간 너머로 던져 자살로 위장했다.

알베스는 이런 방식으로 1937년 한 해 동안 무려 70명 이상을 살해했다. 뼈빠지게 농사져서 그걸 팔아 목돈을 만졌지만 강도에게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었던 것이다.


희생자 중에는 여행자, 상인, 학생들도 끼어 있었다. 경찰은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자살로 치부하고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수도교에서 죽는 사람이 늘어나자 리스본시는 자살로 판단하고 다리를 폐쇄했다.

디오고 알베스가 70명 이상을 살해한 수도교.

그러자 알베스는 갱단을 결성해 사유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 의사의 집을 습격해 일가족을 몰살시키면서 꼬리가 잡혔다.

알베스 일당은 의사의 아내와 두 명의 자녀를 묶어놓고 고문하고 질식시켜 죽였다. 이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경찰의 집중 추적을 받았고, 결국 체포됐다.

알베스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끝까지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체포된 후 경찰관이 “살인에 대해 후회한적 있느냐”고 묻자 그는 “한 번 있었다. 시끄러울까봐 아기를 죽였을 때였다. 죽이기 직전 날 보며 방긋 웃었는데, 그땐 좀 후회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뻔뻔했다.

알베스는 1841년 사형을 선고 받고 같은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그의 나이 31세였다.

당시에는 골상학(phrenology)연구가 유행처럼 번졌다.

골상학은 인간의 정신이 뇌의 특정 부분과 닿아 있으며, 두뇌 및 두개골의 생김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학문이다. 골상학자들은 희대의 살인마인 알베스의 머리가 골상학적으로 연구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리스본대학의 호세 루레노 다 루즈 고메스 교수(박사)는 알베스의 머리를 연구하도록 당국에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 그의 머리는 지금까지 포르말린 용액 속에 담겨 리스본 대학 의학부에 보관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제강점기 악명을 떨쳤던 사이비종교 백백교가 있었다. 교주 전용해가 경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다 죽었는데 일제는 머리를 잘라 포르말린 용액속에 넣어 보관했다. 해방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지하부검실에 보관해오다 2011년 화장해 포천 흥룡사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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