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박준호씨 폭행 치사사건
길 가던 사람을 “쳐다본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피해자는 가까스로 치안센터까지 도착했지만 경찰은 ‘주취자’로 판단해 방치했고, 결국 사망했다. 그런데 법원은 술에 취했다며 피의자들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런 거짓말 같은 판결이 실제로 있었다.
2015년 5월23일 토요일. 박준호씨(32)는 부산시 사하구 하단2동의 한 노래방에서 새벽까지 후배 2명과 술을 마셨다. 준호씨는 아르바이트로 보험영업을 했는데, 후배가 아들의 보험을 들어줬고 “술 한 잔 사라”는 말에 만남이 이뤄졌다.
준호씨 일행은 오전 4시40분쯤 노래방에서 나온 후 길을 지나가다 5명의 다른 일행과 마주쳤다. 바로 그때 김아무개씨(23) 등 2명이 “쳐다 본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 무릎 등으로 준호씨의 머리를 무차별 폭행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에서도 계속 머리를 찼다.
당시 현장에 있던 CCTV를 보면 김씨가 먼저 무릎으로 폭행했고, 준호씨가 바닥에 쓰러지자 얼굴과 머리를 또 다른 일행이 사정없이 발로 차 버린다. 담당 형사가 “무자비하게 찼다”고 표현 할 정도였다. 가해자들이 술을 마셨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사람을 폭행한 것은 죽이려고 작정했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머리를 폭행당한 준호씨의 두개골은 함몰됐다.
얼마 후 가까스로 일어난 준호씨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100여m 정도 떨어진 사하경찰서 하단2치안센터로 걸어갔다. 준호씨의 손과 바지 여기저기에는 코에서 흘린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몸을 추스르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치안센터 소파에 엎드리더니 갑자기 발버둥하며 몸부림 쳤고,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CCTV를 보면 준호씨는 치안센터에 있는 동안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했고, 바닥에 쓰러진 뒤에는 손을 바닥에 내려치면서 살려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런 준호씨를 그냥 놔뒀다. 가만히 보고만 있었고,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주취자로 판단해 그냥 방치했다. 경찰은 준호씨가 바닥에 흘린 코피를 밀대 걸레로 닦기만 했다. 이런 상태로 무려 1시간 6분 동안이나 준호씨를 방치했다. 뒤늦게 치안센터에 도착한 준호씨의 후배들 조차 그를 살피지 않았다.
경찰은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해 가해자 김씨 등을 임의 동행해 치안센터로 데리고 왔다. 김씨는 준호씨를 보자 다리를 절둑거리며 자신도 폭행당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경찰은 이걸 믿고 쌍방폭행으로 보고 준호씨 일행이 오자 합의를 통해 사건을 정리하려고 했다.
당시 치안센터 근무 경찰관은 “술 먹고 가다가 시비가 붙어서 주먹질하고 코피 좀 나고 그 정도라고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우리가 봤을 때는 술이 만취된 상태로 취해서 하는 행동으로 그렇게 판단했다”고 말했다.
준호씨는 정말 술에 만취해 있었던 것일까. 당시 준호씨 일행이 술을 마신 노래방 사장의 말은 달랐다. 그는 한 방송에 나와 “준호가 동생들하고 와서 술을 마셨는데, 술은 일절 안 취했다. 저하고 나가기 전 30분, 40분 동안 카운터에 앉아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술이 전혀 안 취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대처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주취자’로 판단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왜냐면 준호씨가 치안센터에 간 것은 자신이 집단폭행 당했다는 것을 신고하기 위해서였고, 가해자가 아니라 폭행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당연히 준호씨를 병원으로 후송조치해서 몸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코피를 흘리고 몸을 가누지 못해 바닥에 쓰러졌는데도 주취자로 보고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았다. 누가봐도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찰은 언론에 “박씨가 직접 걸어서 치안센터로 들어왔고, 피를 흘리는 등 특별한 외상이 없었으며, 일행이 ‘박씨가 술에 취해서 그러니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통상적인 주취자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오전 5시55분쯤. 준호씨는 멀쩡하게 걸어 들어간 치안센터에서 후배에게 들려나온다. 집에 돌아올 때 준호씨는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는 “한숨 자면 안 깨려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은 아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입을 열어보니까 혓바닥이 많이 꼬여있고, 입술 색깔도 파랗게 변해있었고, 평소 코를 골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이날은 유난히 코를 많이 골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싶어 119를 불렀는데, 당시 출동했던 119 구급대원은 준호씨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당시 구급대원은 “외상은 옷 전체적으로 피가 많이 흩어져 있듯이 묻어 있었다. 우측 눈에넨 시퍼렇게 멍이 든 상태로 관찰됐다. 거칠게 호흡도 들리고 비정상적으로 코를 고니까 아무래도 뇌 손상 같았다. 의식도 혼수상태였다”고 말했다.
준호씨가 대학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겉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게 병원에 왔다. 담당의사는 준호씨의 상태를 보고 놀랐다. “단순하게 주먹으로 맞은 게 아니라 망치나 몽둥이, 쇠뭉치 이런 걸로 때리면 모르겠지만, 머리에 금이 저렇게 갈 정도로 심한 충격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의 폭행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의사는 또 “뇌가 많이 부어올랐다. 뇌는 시간이 가면서 상태가 나빠지면 많이 부어오른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출혈이 심해져 뇌가 밀려나 있는 심각한 상태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오후 5시쯤에 수술을 받았지만 이때는 준호씨가 폭행을 당한 후 약 12시간이 경과한 뒤였다. 준호씨를 살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최초 치안센터에서 방치된 66분이 준호씨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는데 이를 놓친 것이다.
준호씨는 뇌의 주요 부위가 괴사(생체 세포·조직의 일부가 죽거나 죽어가는 상태) 돼 뇌사상태가 됐다. 그리고 8일 간의 소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5월31일 밤 가족들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떠났다. 향년 32세.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꿈도 펼치지 못한 나이였다.
준호씨는 마지막 순간 가족들과의 이별을 눈물로 대신했다.
유족들은 경찰의 방치가 준호씨를 죽게 했다고 억울해 했다. “조금만 빨랐더라면…내 자식 살렸을 텐데, 내 동생은 살았을 텐데…” 가족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한이 됐다.
준호씨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것 같다. 치안센터에서 한 시간 이상을 방치했는데,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런 건 시간을 다투는 건데 자기들 발뺌하기 바쁘다.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의 쓰레기들하고 똑 같은 말을 한다”며 경찰의 방치가 아들이 죽은 원인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부산 사하경찰서 청문감사실은 해당 경찰관들을 조사했지만 직무 소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분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치안센터 경찰관들의 조치에 문제가 없다며 면죄부를 준 것이다.
준호씨의 억울한 죽음은 현장에 남은 선명한 핏자국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유족들은 예고 없는 슬픔에 망연자실했다. 6월3일 준호씨의 장례식이 치러졌는데, 화장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아들의 시신이 담긴 관이 화장장으로 옮겨지자 어머니는 “준호야, 준호야”를 외쳤다. 마지막 가는 아들의 관을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오열했다.

준호씨의 유해는 송도 앞 바다가 잘 보이는 암남공원 산책로에 뿌려졌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매일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길거리에서 맞아 죽었는데, 어느 부모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도 준호씨 부모는 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이 처벌받는 것을 똑똑히 봐야했다. 이런 일념 하나로 재판 때까지 피눈물을 쏟았다.

사건 이후 가해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부산 사하경찰서는 폭행 하루만인 5월24일 새벽 가해자 2명을 긴급체포했고,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나머지 일행 3명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폭행 가해자 2명을 중상해 혐의로 구속수사한 뒤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는데, 준호씨가 사망함에 따라 검찰은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사건발생 6개월만인 11월27일 준호씨를 죽인 살인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열렸다. 이날 오전 부산지방법원 301호 대법정.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00(23)‧김00(21)에 대한 1심 선고에서 재판장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고함소리가 터졌다. 준호씨의 어머니였다. “이 사람들아, 빵을 훔쳐도 3년은 더 살더라. 사람이 죽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며 재판부에 항의했다.
법정 경위들이 쏜살 같이 달려와 준호씨 어머니를 제지했지만, 차마 법정 밖으로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사이 재판부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어머니는 오열하다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유족들은 법정 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도 안 된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이날 재판장이 선고한 ‘징역 3년’은 ‘상해치사죄’의 최저 형량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술에 취했었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고, 죽을 줄 모르고 때렸기 때문”이라며 판결이유를 밝혔다. 한 마디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죽일 의도로 때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앞길을 염려해 ‘3년 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검사 구형(각각 징역 9년, 8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감경의 사유가 될까? 이에 대해 임방글 변호사는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술 마시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법정에서는 절대 안 통한다. 형법 10조에서는 어떤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면 형을 감경한다고 되어 있지만 심신미약은 술 마신 상태에서는 거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정신병이 있거나 이런 정도를 의미한다”며 “술을 마신 경우에 정말 명백하게 실수를 했구나 하는 경우엔 형을 약간 감형해주는 이 정도만 있지 술을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감형은 절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가해자들에게 선고된 형량은 나올 수가 없다. 이들의 폭행을 보면 “무자비 하다”고 할 정도였고, 여기에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가담했다. 이것을 술 마시고 실수했다고 볼 수도 없을뿐더러, 심신미약으로 감경할 사유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판사는 왜 이들에게 ‘징역 3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일까. 유족들은 여기에 분개했다. 빵을 훔쳐도 3년은 사는데, 하물며 사람이 죽었는데 3년이라니….
실제 조아무개씨는 2010년 전남 보성군의 한 배추밭에서 배추 2포기를 뽑다 마을주민에게 들켰다. 이후 도망치는 과정에서 주변에 나뭇가지로 자신을 붙잡고 있는 마을주민을 수회 때린 혐의(강도상해)로 기소돼 징역 3년6월의 실형에 처해졌다.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한 이른바 ‘인분교수’에게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이런 것에 비하면 박준호씨를 죽인 가해자들의 형량은 대다수 국민들의 법 감정을 배신한 것이다.
그런데도 가해자 측은 ‘징역 3년이 무겁다’며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기각됐다. 살인자들에게 ‘앞길이 창창하다’며 솜방망이 처벌하면, 그들이 죽인 32세의 젊은 청년과 유족들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또 한 명의 ‘공범’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1심 재판을 앞두고 준호씨의 유족들에게 가해자 김아무개씨가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한 통이 전달됐다. 여기에는 놀랄 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가해자 2명 외에 추가 공범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폭행 현장에는 5명의 일행이 있었고, 경찰은 CCTV에 폭행 장면이 찍힌 2명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3명은 여러 차례 불러 조사했지만 범행 가담에 대한 진술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아 풀어줬었다.
그런데 구치소에 있던 가해자 한 명이 유족들의 끈질긴 요구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김씨는 면회 온 아버지를 통해 준호씨 유족에게 편지를 전달하게 했고, 여기에는 당시 일행인 23살 이 아무개씨도 폭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들어있었다.
준호씨 유족은 경찰에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 추가 수사를 요구했다. 담당 형사에게도 김씨가 전해준 내용을 토대로 사실 확인을 요구했지만 ‘증거불충분’이란 얘기만 하고 수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 사이 1심 재판이 열렸고, 가해자 2명에게 솜방망이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자 준호씨 유족들은 사건 담당 경찰의 교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유족들의 요구에 해당 경찰서는 김아무개 형사에게 전담시켰다. 가해자 김씨는 경찰 추가조사에서 “이씨가 CCTV가 없는 곳에 준호씨를 데리고 가 두 팔로 다리를 잡아 넘어뜨리는 레슬링 기술을 1차례 보이며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유족에 따르면 “수사가 원만하게 진행된다 싶으면 중간에 알 수 없는 힘이 사건을 원점으로 무마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수사 잘 하는 담당 형사를 수사 막바지에 수사에서 배제하고 새로운 형사로 교체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그러나 준호씨 유족이 경찰서로 찾아가 난동 수준의 항의를 하면서 수사관 교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담당 형사의 소신을 가진 뚝심수사로 모든 사실을 밝혀졌고, 이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이씨의 범죄 전력도 드러났다. 그는 2013년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준강간죄등)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등을 선고받고 집행유예 기간에 있었다.
고인의 유족들은 이씨가 사법적인 단죄를 받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유족들은 사법부에 대해 또 한 번 절망했다. 고인의 동생은 “믿을 수도 있을 수도 없는 판결”이라며 “이제 끝난 줄 알았던 싸움이 더 힘든 싸움이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분개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