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동생을 성노리개 취급한 ‘의사 오빠’의 잔혹한 성폭행


전남 목포에 살던 A씨(여·46)는 3남1녀 중 막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5살 위 오빠 B씨(51·의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처음에는 몸을 만지다가 중학교 2학년 때는 실제 성기를 삽입하는 성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A씨는 “이후로 부부관계보다 더한 횟수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다.

A씨 집에서 큰 오빠인 B씨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교사인 어머니는 시외지역에서 근무하다보니 늘상 출퇴근하는데 바빴다. 막내 여동생을 챙기는 것은 큰 오빠인 B씨의 몫이었다.

유치원 데려다주기, 등하교 챙기기, 씻기기, 먹이기 등. 심지어 속옷을 입히는 것까지 오빠에게 맡겨졌다.

오빠 B씨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 A씨의 몸을 만지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처음에는 막내를 예뻐하고 챙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A씨.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중학생 때부터는 이상하게 생각됐다.

오빠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지만 대 놓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집안 분위기가 그랬다.

A씨는 “오빠는 집안에서 아빠 보다 더한 지위, 부모님 보다 더 무섭고 어려운 존재였다”고 말한다. 학교 성적도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다보니 부모님의 기대는 더욱 컸고, 집안에서의 위치도 절대적이었다. 부모의 신뢰와 기대도 남달랐다.


A씨는 “이런 분위기에서 오빠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했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B씨는 부모의 기대대로 전남대 의대에 진학했다.

몇 년 후 A씨도 대학에 들어갔다.

오빠의 잔혹한 성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대학 2학년 때에는 오빠의 아이를 임신했다. 어머니는 A씨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도록 했다. A씨에 따르면 “엄마는 내가 오빠에게 성폭행 당하고 있는 것을 알았고, 오빠의 아이를 임신한 것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A씨는 26세 때 중매를 통해 의사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어릴적 부터 당해온 성폭행과 임신 중절로 인해 쉽게 임신이 되지 않았다. 결국 시험관 아기 수술을 통해 결혼 6년 만에 쌍둥이를 출산했다.

B씨는 동생이 결혼한 뒤에는 집에 찾아와 조카들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 마구 때리고 성폭행했다. 그는 병원을 개업하면서 외과의사인 A씨 남편에게 참여를 강요했다. 이에 A씨 남편은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B씨는 동생을 때리고 성폭행하면서 “네 남편에게 참여하게 하라”고 위협했다.

마지못해 아내의 권유로 B씨의 병원 개업에 참여한 A씨 남편, 나중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분통을 터트린다.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했으나 월급만 줬고, 5억원에 이르는 보증까지 세웠다. A씨가 항의하기 위해 B씨의 병원으로 찾아갔더니 치마를 들추고 성추행했다. A씨는 남편과 결혼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하면서 파경에 이른다.

이후 재혼했으나 오빠의 성폭행은 여전했다. A씨는 오빠의 만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2012년 말 성폭행 등의 혐의로 오빠 B씨를 목포경찰서에 고소했다. 통화내용 등 증거자료도 제출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경찰은 수사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A씨는 “경찰에서 제대로 수사를 안 하다가 수사기한이 끝날 때 쯤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A씨는 이런 배경에는 또 다른 오빠들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했다. “둘째 오빠는 행정공무원, 셋째 오빠는 경찰대를 나온 경찰 간부인데 이런 것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안해진 A씨는 2013년 초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친오빠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꼭 좀 도와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오빠에게 당한 내용을 폭로하면서 수사도 흐지부지 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A씨의 글은 온라인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B씨가 목포의 유명 내과 원장 출신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그러자 전남지방경찰청이 재수사에 나서 2006~2007년 A씨의 집과 B씨의 병원에서 성폭행과 성추행이 있었다고 인정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A씨의 주장과 통화 내용, 녹취록 등을 볼 때 1984년부터 1993년까지도 성폭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은 어렵다고 밝혔다.

광주지검은 보강수사를 거쳐 B씨를 기소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소는 됐으나 법원은 A씨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 진술만으로 성폭행 범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다시 뒤집혔다.

2014년 11월20일 광주고법 형사 1부(서경환 부장판사)는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당한 추행 경위, 상황 등을 일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몸을 떠는 등 감정 반응도 진술내용과 일치하는 점 등으로 미뤄 피해 진술을 꾸며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 후 친구와 전화통화, 대학 시절 임신중절 수술 사실, 집 구조 등 정황도 간접 증거로 범행을 입증할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대검 과학수사담당관실의 진술분석관에 따르면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지만, B씨는 3차례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며 “남매 어머니의 성폭행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진술도 장남인 B씨를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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