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뱀굴’ 나르시스 스네이크 덴스
캐나’다 중부 매니토바주의 광활한 초원 지대. 이곳에는 봄과 가을마다 땅속에서 수만 마리의 생명이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신비로운 장소가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터뱀 서식지이자 야생동물 관리지역인 ‘나르시스 스네이크 덴스'(Narcisse Snake Dens)다. 매년 이곳에서는 자연의 거대한 섭리와 생존을 향한 뱀들의 치열한 몸짓이 펼쳐진다.
석회석 틈새가 만들어낸 자연의 겨울 대피소
캐나다의 겨울은 혹독하다. 매니토바주는 영하 40℃까지 기온이 떨어진다. 이 매서운 추위 속에서,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변온동물인 뱀이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에게 나르시스 지역은 완벽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비밀은 땅속에 있다. 나르시스 주변은 물에 잘 녹는 성질을 가진 석회석 지대다. 오랜 세월 동안 비와 지하수가 석회석을 깎아내면서 땅속 곳곳에 수많은 틈새와 무너진 싱크홀, 즉 석회암 동굴이 생겨났다.


가터뱀들은 이 깊은 석회석 틈새를 따라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지표면은 얼어붙어도, 지하 깊은 곳은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약 7만 마리에서 많게는 10만 마리에 이르는 붉은측면가터뱀들이 서로의 몸을 엉킨 채 긴 겨울잠을 잔다.
가터뱀은 북미 대륙 전역에 넓게 분포하는 종이다. 몸길이는 보통 50cm에서 100cm 정도까지 자란다. 머리에서 꼬리 방향으로 세로 줄무늬가 1개에서 3개 길게 나 있으며, 그 줄무늬 사이로 체크무늬 옷을 입은 듯한 얼룩무늬가 촘촘하게 박혀 있다. 독은 없지만 천적을 만나면 항문 근처에 있는 선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뿜어 자신을 지킨다. 머리를 숨기고 꼬리를 뒤틀며 저항하지만, 일부 개체는 상대를 향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지하 굴에서 긴 겨울잠을 마친 가터뱀들은 4월 말에서 5월 초가 되면 일제히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들이 밖으로 나오는 단 하나의 목적은 바로 번식이다. 수많은 뱀이 좁은 계곡과 바위 틈에서 한꺼번에 기어 나오면서 지상에서는 치열한 짝짓기 경쟁이 시작된다. 수컷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뒤 굴 근처에 머물며 숲속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는 암컷을 기다린다.

암컷 한 마리가 나타나면 주변에 있던 수컷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100마리까지 순식간에 암컷을 에워싼다. 서로 암컷과 접촉하기 위해 몸을 꼬고 뒤엉키는 과정에서 축구공만 한 크기의 거대한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학자들은 이를 ‘교미 공’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수컷이 얽히고설켜 뒹구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린다.

가짜 암컷이 펼치는 고도의 심리전
이 치열한 경쟁 속에는 흥미로운 생존 전략이 숨어 있다. 모든 수컷이 강하고 빠른 것은 아니다. 겨울잠에서 갓 깨어난 일부 수컷은 몸이 차갑게 식어 있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때 이들은 놀라운 속임수를 쓴다.
일부 수컷은 자신의 몸에서 암컷 특유의 페로몬 향기를 뿜어낸다. 향기에 속아 넘어간 다른 수컷들이 이 ‘가짜 암컷’을 향해 구름처럼 몰려든다. 진짜 암컷 주위에서 경쟁해야 할 수컷들을 엉뚱한 곳으로 유인해 기싸움을 붙이는 것이다.
이 속임수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수많은 수컷이 가짜 암컷을 둘러싸고 엉키는 동안, 냄새를 풍긴 수컷은 다른 수컷들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를 나누어 받는다. 다른 경쟁자들의 체온으로 자신의 몸을 빠르게 녹이는 전략이다. 몸이 따뜻해진 수컷은 활력을 되찾고, 이후 진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훨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나르시스의 뱀굴은 매년 봄마다 이 장관을 보려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매니토바주 정부는 뱀들을 보호하면서도 사람들이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약 3km에 달하는 산책로와 전망대를 조성했다.

과거에는 이 풍경 뒤에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번식기가 끝나면 가터뱀들은 먹이를 찾아 주변의 습지와 들판으로 흩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인근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야만 했다. 매년 여름과 가을마다 수만 마리의 뱀이 달리는 차 바퀴에 깔려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환경 단체, 정부가 힘을 모았다. 도로 밑으로 뱀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터널을 수십 개 뚫었다. 뱀들이 도로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도로변을 따라 나지막한 울타리도 설치했다. 자발적인 자원봉사자들은 뱀들이 이동하는 시기마다 도로 통행을 통제하거나 뱀을 직접 바구니로 옮겨주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오늘날 나르시스의 가터뱀들은 무사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가을이 찾아오면 뱀들은 다시 3km가 넘는 길을 거슬러 석회암 굴로 돌아온다.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서다. 봄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차가운 바람을 피해 바위 틈으로 스며드는 수만 마리의 움직임은 고요하고 엄숙하다.
어두운 지하 굴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긴 겨울을 버텨낼 뱀들. 그리고 이들이 다시 지상으로 나와 만들어낼 봄날의 꿈틀거림은, 자연이 멈추지 않고 순환하고 있음을 소리 없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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