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에 집착하다 몰락한 ‘경찰대 출신’ 고시 3관왕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태어난 오아무개씨(40대)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0년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났다. 학교 다닐 때 ‘수재’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오씨는 경찰대 법학과에 무난히 합격했다.
학교 졸업 후에는 경위로 임용돼 해안경비단과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했다.
오씨는 2008년 6월 촛불시위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고시’였다. 오씨는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죽으라고 고시 공부에 매달렸다.
그렇게 2년이 흐른 2010년, 오씨는 52회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입법고시 법제직에는 수석으로 합격했다. 또 54회 행정고시 법무행정직을 차석으로, 사법시험에도 합격하면서 일약 ‘고시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등극한다.
남들은 하나도 어렵다는 입법‧사법‧행정고시를 모두 한꺼번에 합격한 3관왕이 됐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출세 길이 보장된 ‘공부의 달인’이었다.
오씨는 전국 고시생들의 롤모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고시에 합격 후 한 법률관련 전문매체의 기고를 통해 “수험생활 내내 고마웠던 이름들을 떠올려 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행여 손자에게 짐이 될까 시험 끝날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합격을 보지 못하고 떠나신 할아버지의 영전에 합격증을 바칩니다. 그리고 철없는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셨던 어머니와 수험 생활에 여념이 없는 동생에게도 이젠 좀 더 성숙해진 아들, 부끄럽지 않은 형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오씨는 자신의 꿈을 펼칠 분야로 ‘입법’을 선택했다. 그는 국회입법조사관(5급 행정사무관)으로 발령 받았다. 새로운 성공신화를 써 내려갈 것 같았던 오씨. 그러나 그는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2013년 5월30일 국회에서 퇴근한 오씨는 여의도에서 술을 마셨다. 오후 9시31분쯤 술에 취한 그는 국회의사당에서 500m 떨어진 한 오피스텔 1층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들어간 곳은 남자화장실이 아닌 ‘여자화장실’이었다. 그는 첫째 칸으로 들어갔다.
휴대전화를 동영상 모드로 작동하고 천장과 칸막이 틈으로 쑥 밀어넣었다.
둘째 칸에는 A씨(여‧19)가 소변을 보고 있었다. 오씨가 약 30초 정도 촬영을 하고 있을 때 A씨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화장실 천장을 바라봤더니 오씨가 휴대전화로 자신을 촬영하고 있었다.
A씨는 곧바로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112에 신고한 후 오씨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이어 소리를 질러 주변의 도움을 요청했다. A씨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은 오씨를 밖으로 끌어냈다. 약 10분 후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경찰관 두 명이 출동하자 오씨를 넘겼다.
오씨는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하며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상해를 입혔다. “술에 취해 여자화장실에 잘못 들어간 것 뿐”이라고 항변했다.

경찰이 휴대전화를 압수하려고 하자 경찰관의 오른쪽 어깨를 깨물었다. 옆에서 말리던 또 다른 경찰관의 팔을 할퀴고 종아리도 물었다. 오씨는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행동했다. 경찰관이 인적사항을 묻자 다른 사람의 것을 허위로 말했다.
경찰은 오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일단 귀가시켰다. 오씨는 인터넷 원격 조종으로 압수 휴대전화의 내용을 ‘초기화’하며 증거 인멸에도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오씨의 휴대전화에서 증거를 확보하고 불구속 입건했다.
재판에 넘겨진 오씨에게 1심과 2심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40시간의 성폭력범죄의 재범예방 교육 이수를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오씨의 범행 내용이 구체적이고 수사과정에서 허위 인적사항을 제시하거나 소란을 피운 점, 다만 초범인데다 피해자들과 합의가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과 검사 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또 “오씨가 이번 사건으로 공무원직을 수행하는 데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게 됐고 신분상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오씨는 여기서 받아들이지 않고 상고했다. 2015년 대법원은 원심의 형량을 확정됐다. 국회사무처는 1심에서 유죄가 나온 후 오씨에 대해 직위해제했고,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이 나면서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당연 퇴직 조치됐다.
오씨는 자신의 촬영은 ‘예술행위’였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내기도 했다. 현행법이 예술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관 6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오씨의 범행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된 후 또 다시 몰카를 찍다가 구속됐다.

2019년 7월 오씨는 지하철 9호선에서 휴대전화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던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지하철 경찰대에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오씨는 경찰관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으나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불법 촬영한 사진 100여장이 발견됐다.
경찰 수사결과 오씨는 같은해 6~7월 여성 19명의 치마 속 다리 등을 101회 몰래 촬영한 것이 드러났다.
재판에 넘겨진 오씨에게 1심은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에서는 형량을 높여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아울러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3년의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오씨는 공직을 잃었지만 누범기간(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난 뒤 3년 이내에 또다시 재범하는 것) 중 재차 범행을 저질러 실형을 면치 못했다.
‘제 버릇 남 못준다’는 속담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경찰대 출신 ‘고시3관왕’은 이렇게 성범죄자로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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