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떨친 히틀러 친위대 여성대원 ‘일제 코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독일과 점령지에 ‘강제수용소’를 설치했다.
주로 유대인과 소련군 전쟁 포로들이 수용됐다. 이곳에서는 성폭행, 생체실험, 학살이 일상적으로 이어졌고, 가스실을 운영해 수백 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1937년 나치는 독일 바이마르 교외에 강제 수용소를 세우고 ‘부헨발트'(너도밤나무 숲)라고 명명했다. 여기에는 정치범, 유대인, 집시는 물론 노르웨이 대학생 등 약 25만 명이 수용됐다. 이중 최소 5만6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헨발트 수용소의 소장인 카를 오토 코흐와 그의 아내 일제 코흐는 악명을 떨쳤다. 이들은 수용자들을 잔혹하게 다뤘고, 기분에 따라 죽이기를 반복했다.
특히 히틀러 친위대 여성대원인 일제 코흐는 희생자들의 머리 가죽이나 피부를 벗기는 엽기적인 취미가 있었다. 그것으로 앨범, 책 커버나 전등갓, 장갑 등의 가정용품을 만들었다.
심지어 전등 스위치를 만들기 위해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사용하기도 했다. 가족이 사용하는 식탁을 두개골로 장식할 정도였다. 만약 문신을 한 수용자가 발견되면 독극물 주사로 독살한 후 피부를 벗겨내 수집했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인간 피부 액세서리를 만들어 ‘램프 셰이드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문은 물론 남녀 가릴 것 없이 성적학대를 일삼았다. 면도날을 박은 채찍으로 임신한 수감자를 때려 유산시켰고, 여자 수용자들의 옷을 벗긴 후 남자 수용자들이 있는 방에 가둬서 강간당하게 하는 걸 즐겨보기도 했다.
그녀의 악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수용자들은 ‘부헨발트의 마녀’라고 불렀다.
부헨발트는 또 의학 실험이 자행되던 장소로, 다양한 백신을 실험해 보기 위해 소련군 포로들에게 발진티푸스균을 주입했다. 수많은 죄수들은 굶어 죽거나 죽을 때까지 근처 채석장에서 노동을 하거나, 동쪽의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져 몰살당했다.

일제 코흐와 남편 카를 오토 코흐는 1943년 횡령 등의 죄목으로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1945년 4월 남편은 나치 친위대 법정에서 사형이 선고된 후 처형됐지만 일제는 풀려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인 1945년 6월30일 일제 코흐는 미군에 체포돼 1947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4년 만인 1951년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

이후 수많은 피해자들의 탄원으로 독일 법정에 섰으나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발악했다. 법원은 종신형을 선고했고, 1967년 9월 수감 중인 형무소에서 침대 시트에 목을 매 최후를 맞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 60세였다.
1974년 돈 에드먼즈 감독 <일사~ 나치 친위대의 색녀>를 시작으로 일제 코흐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줄줄이 개봉됐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