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화재

욕정이 부른 참극 ‘종로 여관 방화’ 유해명 사건


서울 종로구 종로5가에는 ‘서울장여관’이 있었다. 2018년 1월20일 새벽 3시8분쯤, 이곳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불은 삽시간에 3층짜리 여관 전체로 번져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소방차 50여 대와 소방관 180여 명을 투입해 진화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소방관들이 3분 만에 화재 현장에 도착했으나, 여관으로 가는 길은 1.5t 트럭도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게 되자 펌프차를 이용해 진화에 나섰으나 이마저도 70m 떨어진 거리까지만 접근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소방관들은 종로5가 대로변에서 여관을 향해 물을 뿌릴 수밖에 없었다.

소방관들은 불이 인근의 다른 건물로 번지지 않게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불과 사투를 벌인 끝에 1시간 만에 간신히 진화할 수 있었다. 화재가 난 건물은 처참했다. 벽면은 시꺼멓게 그을렸고 건물 안쪽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타고 말았다.

이번 화재로 여관 1층과 2층이 전소하면서 소방서 추산 2천325만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

해당 여관은 연면적 103.34㎡의 지상 2층짜리 건물로 1964년에 사용승인이 났다. 지은 지 54년이 지난 상태였다. 건물 용도와 연면적 중 어떤 기준으로도 의무 설치 기준에 못 미쳐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투숙객들의 화재 대피도 어려운 구조였다. 후문은 투숙객이 찾기 어려운 곳에 있어 평소 거의 쓰이지 않았고, 옥상도 대피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비상구는 문밖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열쇠 없이는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객실 내부의 창문은 방범용으로 설치한 쇠창살 4개가 있고, 건물 주변이 10cm 간격으로 붙어 있어 일부 객실은 설사 창문을 깬다 해도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불이 날 당시 여관에는 1층 7명, 2층 3명 등 모두 10명의 투숙객이 머물고 있었다. 사건 당일에는 사망자 5명, 부상자 5명 등 총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중상자 두 명이 추가로 숨지면서 사망자는 7명으로 늘어났다. 새벽 시간 깊은 잠에 빠진 투숙객들은 미쳐 피할 틈도 없이 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일부 사망자 중에는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숨진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사망자 중 3명은 세 모녀였다. 전남 장흥에 사는 박윤정씨(여·36)는 겨울 방학을 맞아 초등학생 딸 승윤(12)과 중학생 딸 아름(15)을 데리고 서울 나들이를 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가장이자 딸들의 아빠인 이영민씨(40)는 일하느라 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다.

세 모녀는 처음으로 1월15일부터 전국 각지를 여행했고, 5일째인 19일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평소 아이들의 소원은 서울에 있는 롯데월드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 모녀는 하룻밤을 여관에서 지내고 다음 날 롯데월드에 가려고 계획했었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 탓에 저렴한 숙소를 알아보던 중 하루 숙박료 2만 원 짜리 서울장여관을 발견했다. 1층 105호에 투숙한 이들은 다음 날 여행 일정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가 불길과 유독가스가 삽시간에 들이닥쳐 피할 새도 없이 화를 당했다.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이씨는 병원에 안치된 아내와 딸들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장흥이 고향인 이씨는 고교 졸업 뒤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서 일했다고 한다. 4년 전 외지 일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장흥읍에서 목공 일을 하며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수입도 변변치 않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근처에는 이씨의 80대 부모가 살고 있었다. 이씨 부부는 혼인 신고만 하고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가족에게 이번 나들이는 엄마와 모녀가 떠난 첫 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이 됐다.

세 모녀는 경찰 조사를 통해 인적 사항이 파악되기는 했으나,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신 훼손이 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검사를 통해 정확한 신원이 확인됐다. 이로 인해 세 모녀의 장례는 사건 9일 만에 치러졌다. 이렇게 한날한시에 희생된 엄마와 두 딸은 가족·친지·이웃 등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사망자 중에는 비보이 김기주씨(22)의 아버지(55)도 있었다. 김씨는 ‘포켓(Pocket·주머니)’이란 예명으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비보이다. 각종 국제 비보이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서울 구로구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아버지는 사고 전날 지인들을 만나러 종로구에 왔다가 시간이 늦어 문제의 여관에 투숙했다. 이튿날 일찍 강원도 춘천에 가기 위해 역이 가까운 곳을 찾아 하룻밤을 묵으려다 참변을 당했다.

유족들은 “원래 사고 이틀 전 어머니를 모시고 3박 4일 제주도를 다녀오려고 했다. 어머니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아야 해서 여행이 미뤄졌는데 원래대로 갔으면 사고도 안 났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나머지 희생자들도 아등바등 살던 서민들이었다. 이들은 일용직 등을 하며 약 2년 전부터 여관에 묵었던 장기투숙자들이었다.

화재 원인은 ‘방화’로 드러났다. 범인은 중식당 배달원으로 일하던 유해명(53)이었다.

그는 여관 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술에 만취한 채 범행 당일 새벽 2시쯤 여관에 가서 “여기에 투숙할테니 성매매 여성(속칭 여관바리)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여관 주인 김아무개씨(여·71)는 “여기는 그런 퇴폐적인 곳이 아니다”라고 거절했다. 그러자 유씨는 “여자 못 부르는 여관이 어딨냐”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한 여관 주인은 유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유씨를 관할 파출소로 연행한 후 “성매매 및 업무방해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만 하고 훈방한다.

분이 풀리지 않았던 유씨는 여관 주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택시를 불러 기사에게 “이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는 주유소가 있으면 데려다 달라”고 요청하고 1.7km 떨어진 24시간 영업 주유소로 가서 휘발유 10ℓ를 구입했다. 그는 다시 택시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온다.

오전 3시, 유씨는 여관 1층 복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불은 1층과 2층 복도로 빠르게 번졌다. 이후 방화를 목격한 여관 주인의 신고로 경찰과 소방대가 출동했고 유씨는 여관 건물 근처에 앉아 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유씨는 범행 후 112에 전화해 “여관에서 날 안 들여보내줘서 불을 질렀다. 날 잡아가라”며 자수했다.

유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성매매 생각이 났고, 그쪽 골목에 여관이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아 무작정 그곳으로 가 처음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매매를 요구했으나 거절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유씨는 범행 전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갔다가 성매매를 위해 여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가장이었다. 경찰은 유씨가 전과가 있기는 했으나 폭행이나 방화 등 유사 전과는 없다고 밝혔다. 정신병력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는 ‘현존건조물방화치사’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1심에서 사형을 구형하며 “유씨는 성매매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발기부전 치료제까지 투약했지만 알선이 거절당하자 욕정으로 인한 보복감에 방화를 저질렀다”면서 “여관 출입구 바닥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다음 발화가 성공한 사실을 확인한 후에 현장을 떠났다”며 살인 고의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또 “유씨는 범행 당시 상황, 자신의 행동과 느낌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다”며 “‘술에 취해 사물 변별 능력이 미약했다’며 필요적 감경을 주장하나 어떤 피해 회복 노력도 하지 않는 유씨에게 선처를 해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양형조사 결과에 따르더라도 유씨는 계획범에 해당한다”며 “피해 유족 및 피해자들은 유씨에게 무거운 형을 선고해달라고 강력히 탄원하는 실정”이라고도 밝혔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법이 허용하는 한 가장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검찰이 구형한 사형은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며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수사 초기부터 현재까지 전체적으로 범행을 자백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범행 직후 스스로 신고해 수사에 협조하기도 했다”며 “이런 사정 등을 모두 참작해 보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의문의 여지없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심공판 당시 유씨는 최후진술에서 “나로 인해 가족을 잃은 상심과 고통 속에서 지내실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나 또한 아들 결혼식 날까지 받아놓은 아버지나 부모를 모시고 있는 아들로서 말할 수 없는 큰 죄를 졌다”면서 “많이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말 잘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검찰은 형량이 적정하지 못하다며 항소했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 두 딸을 잃은 이영민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종로여관방화 화재사건 세 모녀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씨는 “방화범을 재판장에서 볼 때면 아버지이자 남편인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발 사형이란 판결이 나길 바라며 재판을 방청할 뿐이다”라며 “방화범을 사형에 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방화범 유씨의 반성문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유씨가 반성문에서 아들 결혼식을 언급한 것에 대해 “살인자가 어디 뚫린 입이라고 아들 결혼식 이야기를 하느냐”며 “제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답답하고 성질난다.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에 ‘나까지 죽으면 세상이 알아줄까?’ 하는 나쁜 생각을 갖곤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한 남자의 비뚤어진 욕정에 7명이 희생당했다. 이런 가해자에게 무기징역이란 선고가 내려졌다. 어이가 없다”며 “7명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정중한 사과, 그리고 사형으로서 죗값을 치르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항소심에서 검찰은 원심과 같이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같은 해 8월9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별 내용이 아닌 사안을 이유로 다수가 모여 있는 여관에 불을 질러 여러 명을 사망하게 했다”며 “피해자와 유족에 위로를 할 수 없는 정도의 죄질이 나쁜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개별적인 가해 행위로 피해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고 유사한 내용의 범행 전력이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라며 “법원 판례를 봤을 때 사형에 처할만한 사안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 판단에는 사형제에 대한 고민도 들어있었다. 재판부는 “사형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이냐는 점도 고민했다”며 “사형에 처하는 것이 반드시 피해자와 유족에게 완전히 위로가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남성의 욕정이 부른 참극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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