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 ‘휴대폰 폭발’ 사망사건의 반전
2007년 11월28일 오전 7시쯤, 충북 청원군 부용면 W산업 채석장에 굴착기 기사 서씨(33)가 쓰러져 있었다.
서씨를 처음 발견한 굴착기 동료 기사인 권씨(58)는 119구조대와 경찰에 신고했다. 서씨가 구급차에 실려 충북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40분쯤. 그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권씨는 경찰에서 “오전 작업을 위해 현장에 갔는데 서씨가 굴착기 옆에 쓰러져 있어 119 구조대와 경찰에 신고했다”며 “발견 당시 코에서 피를 흘렸고, 휴대폰 크기로 검게 그을려진 셔츠의 왼쪽 주머니 안에는 배터리가 녹아 달라붙은 휴대폰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체 검안을 담당했던 충북대병원 응급실 김훈 교수는 직접 사인을 ‘폐부종, 폐좌상, 전기화상’이며 간접사인을 ‘다발성 늑골 골절, 화상’과 ‘휴대폰 폭발’로 결론지었다.
사건을 담당한 충북 흥덕경찰서도 서씨 왼쪽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에서 연기가 나고 배터리가 녹아 달라붙은 점으로 미뤄 배터리 폭발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서씨의 구멍난 작업복과 배터리가 녹아내린 휴대폰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때부터 언론에는 서씨의 사망원인이 ‘휴대폰 폭발’로 대서특필 됐다. 인터넷에서는 휴대전화의 안전성 논란이 급속히 퍼지면서 ‘휴대폰 불안 증후군’까지 생겨났다.
미국의 AP통신은 한국의 충북 청원에서 휴대폰 배터리 폭발로 30대 남자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AP는 경찰 수사결과 사용자의 사망 원인이 휴대폰 배터리의 폭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다급해진 것은 서씨가 갖고 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LG전자였다.
유명 탤런트가 CF모델로 나오는 당시 최신형 컬러폰이었다. 사망한 서씨가 이 전화기를 개통한 것은 같은 해 10월1일, 청주시의 한 휴대폰 대리점에서다.
LG 측은 이번 사고와 관련됐음을 인정했다. 다만 “배터리 폭발로 사용자가 사망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휴대폰 배터리가 폭발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인해 사람이 사망할 수는 없다는 게 LG전자 측의 입장이었다.

세계 언론에서 이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LG전자로서는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필자는 사고 하루 뒤인 11월29일 취재를 위해 충북 청주로 급히 내려갔다.
충북대학교 병원 영안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40분쯤, 유족들이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다.
고인이 된 서씨는 5남4녀 중 일곱째였다. 부인과는 이혼하고 슬하에 네 살짜리 딸이 있었다. 빈소에는 서씨의 부모와 형, 누나 등 가족들이 고인의 짧은 생을 비통해하고 있었다. 서씨의 어린 딸도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필자는 서씨의 큰형 A씨(58)를 만나면서 휴대폰 폭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A씨는 “휴대폰은 작업복 왼쪽 앞주머니에 있었는데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시신의 상태는 내장이 파열됐으며 양쪽 갈비뼈와 뒤쪽 척추가 나간 상태였다. 가슴팍에는 시퍼런 휴대폰 멍 자국이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심하게 긁힌 상처가 크게 나 있었다”고 말했다.
휴대폰 폭발사고로 단정 짓기에는 기기와 시신의 상태가 석연치 않았던 것이다.
사고현장에 단서가 있을 듯 했다. 필자는 고인의 형과 동생 등 가족들을 재촉해 사고 현장인 충북 청원군 부용면 문곡리로 향했다. W산업 채석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30분쯤. 채석장은 산 절반을 수직으로 깎아내린 절벽이었다.
이상한 것은 사망 사고가 일어난 지 하루가 넘게 지났는데도 사건 현장이 전혀 보존돼 있지 않았다. 채석장 입구를 불도저로 막아 놓은 것이 전부였다. 경찰의 폴리스라인도 없었다.

사고 현장도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서씨가 운전했던 굴착기는 채석장 입구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유족들은 서씨가 안전지대인 이곳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씨가 사망한 곳은 굴착기가 세워져 있던 공사현장 입구가 아니라, 300m 정도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발파 현장이었다. 사고 현장에 있어야 할 굴착기가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W산업 채석장 현장 소장인 안아무개 상무는 “내가 옮기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최초 신고자는 권씨지만 서씨를 공사현장 입구까지 업고 내려온 것은 다른 동료 굴착기 기사인 유씨였다.
유씨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사고 현장에 가서 서씨를 업고 입구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 유씨에게 전화한 것은 채석장의 화약주임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이 사건현장을 훼손한 것은 ‘공사장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기본적으로 안전모, 안전조끼, 안전벨트 등을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기간 단축이나 귀찮다는 이유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공사장이 태반이었다.
관할 감독기관의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형식적이다. W산업도 작업 인부들과 작업 현장에 대한 안전대책이 소홀했다. 이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현장을 훼손했던 것이다.
경찰의 초동수사도 허점 투성이었다.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후 신고자인 권씨의 말과, 서씨의 작업복과 휴대폰 상태만 가지고 사건을 쉽게 ‘휴대폰 폭발 사고’로 결론냈다.
또 사고가 발생한 후 바로 현장을 보존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이로인해 W산업 측에서 사고 현장을 훼손하도록 사실상 방치했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 경찰이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조사가 끝난 다음에야 폴리스라인을 쳤다. 또 훼손된 사고 현장을 복원하기 위해 서씨가 운전했던 굴착기를 원래 장소로 이동시키는 중이었다.
이런 사고의 경우 현장보존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데 경찰은 초동수사 미비로 현장을 훼손하게 했고, 그런 다음 복원하면서 이미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던 것이다.
필자가 취재를 거듭할수록 사건은 의문이 해소되기 보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갔다.
그리고 ‘휴대폰 폭발사고’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취재를 통해 더욱 명확해졌다. 필자는 데스크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공식 감정결과가 나왔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국과수는 “시신 정밀 부검결과 폐, 심장 등 장기가 심하게 손상되고 갈비뼈, 척추, 왼팔, 오른쪽 넷째 손가락 등의 상처가 있다”며 “서씨가 중장비에 치인 뒤 중장비와 암석 사이에서 압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권씨를 재소환해 조사를 벌였고,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권씨는 경찰에서 “채석장에서 유압드릴 중장비를 후진시키다 뒤에 있는 서씨를 사고로 치었다”고 진술했다. 권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고, 경찰은 “휴대폰 폭발은 없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권씨가 휴대폰에 직접 불을 붙여 녹인 것은 아니고 서씨를 중장비로 치었을 때 가슴 부위에 강한 압력을 받아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리튬폴리머 배터리에 불이 붙은 것으로 추정했다.
기존 ‘휴대폰 폭발사고’로 알려졌던 이 사건의 최대 반전이었다.
만약, 휴대폰 폭발사고로 판명이 났을 경우 LG전자는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경영상 큰 타격이 불가피했다. 다행히 휴대폰 폭발사고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LG가 입은 유‧무형 피해는 엄청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결국 거짓말에 의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