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호주 성매매 조직
2007년 3월부터 5월까지 MBC에서 고현정 주연의 범죄드라마 <히트>가 방송됐다. 실제 주인공은 여성 조폭팀장으로 유명한 A경위였다. 나는 A경위와 친분이 있어서 가끔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 받던 사이였다.
그러던 2011년 어느 날 A경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전직 고위직 공무원의 아들 B씨가 호주에서 한국인들을 돕고 있는데, 교민들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메일 하나 보낼테니 살펴봐 달라”고 했다.
B씨가 A경위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내용을 보니 한국의 성매매 조직이 호주에 원정가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워킹 홀리데이로 들어간 유학생까지 끌어들이고, 중국 갱들과의 암투 등 교민사회가 이들로 인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직의 총책(두목)인 C씨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폭들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A경위가 이 내용을 나한테 준 것은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이라 자신이 처리하기 어려우니 내게 보낸 것 같았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국정원 시사저널 담당 연락관(정보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점심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며칠 후 시사저널 본사가 있는 용산의 한 식당 밀실에서 둘이 만났다.
내가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더니 그는 “뭔일 있냐”고 물었고, 그때서야 이메일 받은 내용을 알려주며 “현지 상황이 심각한 것 같고 자칫 외교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는데, 너네가 좀 도와줄 수 있냐”고 했더니, 일단 메일 내용을 보내달라고 해서 프린트 한 것을 건네줬다.
나는 나 대로 본격 취재에 들어갔다. 호주의 제보자에게 연락해서 현지 상황을 자세하게 물어본 후 궁금한 것들은 따로 메일을 보냈다. 그를 통해 현지 교민들과도 핫라인을 구축했다.
이때부터 호주 원정 성매매 배후 조직의 실체 추적에 나섰다. 국내 조직들의 실태와 특히 C씨와 여성들의 이동경로를 집중 파헤쳤다. 호주와 한국으로 이원화해서 저인망식으로 좁혀가는 모자이크식 취재기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시사저널 지면 5쪽에 걸쳐 ‘호주 원성 성매매 배후 조직의 실체’를 추적한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대기업 홍보담당 상무(현 부사장)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아니 언제 호주를 갔다온 거야”라고 했고, 나는 “안 갔다”고 했다.
그랬더니 “현지에 가지 않고 어떻게 기사를 그렇게 자세히 쓸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취재 노하우를 알려고 하지 말라”며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시사저널 편집국으로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나를 찾았다. 발음이 여느 성우 못지 않게 정확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호주에서 C씨 조직이 운영하는 업소의 마담을 맡고 있었던 D씨라고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기자님, 그거 아시느냐? 국정원이 C씨 조직을 쳐서 와해시켰다”고 했다. 이때 난 순간적으로 ‘국정원이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여성은 C씨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었고, 호주 경찰에 붙잡혀 한 달 동안 감방에 있다가 추방당했다고 했다. 빈털털이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자신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기사 검색을 하다 내가 썼던 기사를 보고는 이 사건에 내가 어떤 역할을 했으리라고 짐작하고 전화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묻는 말에는 자신의 이름 나이부터 또박또박 자세히 답변해 줬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됐던 국정원이 국익과 교민들을 위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중에 국정원 연락관에게 이런 사실을 물었더니 “보고는 했는데 그뒤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사건을 최초 이메일로 제보했던 B씨는 수년 전 한국에 들어왔다. 그와는 이 취재를 계기로 가까워졌고, 그가 한국에 입국해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가끔 소식 전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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