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사연기자생활

가난한 여대생과 연극배우 윤석화


2010년 4월초 한 여대생이 시사저널 편집국으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시사저널 지면에는 세상 속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People’ 면이 있었다. 그는 이 지면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지면 중 하나다.

나는 회의실로 그를 안내한 후 커피 한 잔을 대접하며 “어떻게 찾아오셨냐”고 물었다. 그는 순박한 모습의 절박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김미지씨(당시 24세)였다. 전년도에 건국대를 졸업한 김씨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urich)의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이곳은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인슈타인 뿐 아니라 21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 당대 최고 인물들을 배출했다.

특히 컴퓨터공학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씨는 이 대학에 입학하면 컴퓨터 공학(석·박사 과정)을 전공한다. 김씨는 내게 합격증도 펼쳐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집은 너무 가난했다. 가족들에게 닥친 현실은 처절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혹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사업하다 부도가 났고, 그 영향으로 위암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 중이었다.

김씨 어머니 또한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아주대 병원에서 투병 중에 있었다. 김씨의 여동생은 아주대 병원 사무 보조로 들어가 어머니의 치료비를 벌면서 병간호를 했다. 그는 이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부모님 병원비와 생활비를 하고 나면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받은 김씨의 ‘합격증’은 그의 가족에게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김씨의 가족은 합격증을 받고 함께 ‘엉엉’ 울었다고 했다. 특히 부모님은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딸이 좋은 학교에 합격했지만 학비를 댈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연간 수 천만원이 드는 학비와 기숙사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국내 유수의 장학재단에 도움을 청했으나 스위스는 지원대상이 아니라며 거절당했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는 장학재단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김씨는 또 다시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사저널을 찾아왔던 것이다. 혹시 언론에 자신의 사연이 보도되면 도움 줄 천사가 나타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세계적인 컴퓨터공학 전문가가 되어서 나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전경.

일단 시사저널 4월13일자 ‘People’ 면에 그의 사연을 소개하고 도와줄 곳을 찾았다. 당시 나는 수천명에게 ‘이메일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이곳에 김씨의 사연을 전하며 ‘이 가난한 여대생에게 희망을 달라’고 호소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연극배우 윤석화씨가 이메일로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2007년 7월 윤석화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서 이때 인연을 맺었다.

윤씨는 홍콩에 체류하던 중 내가 보낸 메일을 보고 “어릴 적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 한국의 빌게이츠를 꿈꾸는 여성을 후원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윤석화씨에게 김미지씨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리고 4월30일 김미지씨와 윤석화씨가 첫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김씨는 당시의 만남을 이렇게 전해왔다.

안녕하세요?
1068호 People 인터뷰에 실린 김미지 입니다.
저의 기사를 잘 써 주신 덕분에, 좋은 일이 생겨 알리는 바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학교에 붙고 장학재단에 문의 하였는데 가는 장학 재단마다 미국이 아닌 스위스는 지원대상 국가가 아니여서 지원을 해 줄 수 없다고 하여 좌절 하였었습니다.
그때 정락인 기자님 께서 잘 기사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 기사를 읽고, 연극배우 윤석화씨께서 친히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스위스 학교에 다니는 학비와 기숙사비 일부 생활비까지 힘닿는데까지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막 윤석화씨를 뵙고 오는 길이예요!!!
아시다 시피 4월 29일날 윤석화씨 께서~ 혜화동에서 자선 공연을 하셨거든요 🙂 그곳에 가서 공연도 보고 윤석화씨 손을 꼭 붙잡고 대화도 나누고, 돕겠다는 얘기까지 듣고 오는 길입니다.
1년에 약 3000만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기숙사비와 생활비 2500 만원과…
석박사를 하는 동안의 대학 학자금 대출 이자를 위해 500만원까지도.. 말입니다…
그리고 친히 저를 보러 스위스로 들려주실 것이며, 훗날 윤석화씨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하며, 윤석화씨 아들 수민이도 보여주고 싶으시다면서.. 너무나 친절하셨습니다.
몇 마디 못 한체, 전 만나뵙는 내내 감사의 눈물만이 흘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사저널 주간지 사람들과, 시사저널 정락인 기자님께 가슴깊히 감사드리며, 더욱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자칫하면, 좌절속으로 빠질 수 있었던 저의 꿈이… 시사저널 여러분 덕분에, 빛을 얻었습니다. 더 열심히 살고, 그만큼 베풀겠습니다.
존경합니다. 언론사 시사저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난한 여대생은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윤석화씨 참으로 존경할 만한 분이다. 수 백억 수천 억을 가진 자산가들도 자기 주머니에서 만원 한 장 꺼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돈을 아무런 조건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지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후 김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아무쪼록 그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던 일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사연이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니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울러 이 글이 읽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행복 바이러스로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