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전주 롯데백화점 폭발물 테러 협박사건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는 지난 2004년 개점한 롯데백화점이 위치해 있다.

2013년 2월6일 전북 전주에도 매서운 겨울 한파가 몰아쳤다.

백화점과 마트, 재래시장에는 설날을 준비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오후 3시쯤 ‘테러 공포’가 밀려오기 전에는 설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테러 협박범의 전화 한 통화에 전주시가 발칵 뒤집혔다.

이날 낮 12시20분쯤 전북지방경찰청을 출입하는 한 방송사 기자 정아무개씨에게 수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신원불상의 남성이 “나는 자살사이트 운영자다. 회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 촬영 장비를 가지고 전주시 완산구 효자공원묘지로 나와라”고 말했다.

정기자는 갑작스런 이상한 전화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장난으로 넘기기에는 뭔가 꺼림칙했다. 그는 범인이 ‘효자공원묘지’로 나오라는 말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정기자는 경찰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그는 경찰과 동행해 남성이 말한 효자공원묘지로 갔다. 현장에 도착하자 전화가 또 걸려왔다. “주차장 파란색 모닝 승용차를 촬영하라”는 것이었다.

이 차량은 곧이어 ‘펑’하는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이때가 오후 3시쯤이다. 차량은 얼마 뒤 완전 전소했고, 폭파된 차량 옆에는 LPG가스통이 나뒹굴었다. 경찰이 번호판을 조회해 보니 이 차량은 2월4일 오전에 완산구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범인은 훔친 차량에 LPG통을 가져다 놓고 차량을 폭파시킨 것이다. 효자공원묘지에서 승용차를 폭파시킨 것은 자신의 협박이 단순 엄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시내가 아닌 외각에 승용차를 세우고 폭파한 것은 인명피해가 나는 것을 우려한 행동으로 생각됐다.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 반은 범인이 차량을 폭파한 방법 등을 볼 때 ‘폭파전문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범인은 훔친 승용차를 폭파한 후 다시 정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진짜 속셈을 드러냈다.

그는 “(서신동) 롯데백화점 곳곳에 폭발물을 설치했다. 백화점 안에 폭발물을 가진 자살사이트 회원들이 배치돼 있다. 만약 경찰에 신고하거나 시민이 대피하면 (폭발물을) 터트리겠다”라고 말했다. 협박범은 “백화점 최고 책임자를 만난 뒤 전화를 걸어 달라”고 요구했다.

효자공원묘지에서 승용차를 폭파시킨 것을 보면 그냥 엄포라고 볼 수도 없었다. 실제 백화점에 폭발물을 설치했거나 터트릴 수도 있었다. 이때부터 경찰도 바짝 긴장했다. 임실 6탄약창 폭발물 처리반과 경찰특공대에 출동을 요청했다. 전주 완산경찰서와 덕진경찰서 형사들을 긴급 소집, 현장에 투입했다.

동시에 백화점 측에 고객대피를 요청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고객들을 대피시키면 폭발물을 터트리겠다”고 위협함에 따라 대형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당시 백화점 안에는 쇼핑객과 영화 관람객 등 3천~4천여 명이 있었다.

경찰과 협의한 백화점 측은 1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5시쯤 “백화점 안에 비상상황이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또 자체 매뉴얼에 따라 암호를 사용해 직원들에게 긴급 상황을 전파했다. 7층 롯데시네마 영화관도 상영을 전면 중단하고 고객들을 대피시켰다. 경찰도 구급차와 소방차 등을 동원,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갑작스런 대피 방송에 백화점 안은 일순간 술렁이기 시작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온 고객들로 1층 4개의 출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영문도 모른 채 밖으로 몸을 피한 고객들은 그제야 폭발물 협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부 중년 여성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손님과 직원들은 백화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오후 5시15분쯤 대피를 완료했다. 백화점 측은 고객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출입구를 봉쇄했다. 이후 폭발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후 6시께 출입을 재개했다가 고객의 안전을 우려, 평소보다 1시간 빠른 오후 7시30분께 영업을 종료했다.

범인이 백화점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은 설날 대목과도 연관이 있었다. 명절 대목은 유통업체에게는 최대의 성수기다. 범인은 백화점에 폭파 협박을 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본 것이다. 백화점이 이미지를 생각해 신고보다는 돈을 주고 조용히 끝낼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롯데백화점 점장과 연결되자 범인은 “우리는 죽으려고 맘먹었다. 90분을 주겠다. 5만원 권 현금 10㎏(약 5억원 상당)을 준비하라”며 재차 “경찰에 신고하거나 손님을 대피시키면 폭발시키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행동지침도 알렸다. “선물상자에 현금을 넣어 백화점 여직원 한 명에게 들게 하고, 백화점 옆 도로에 서 있는 흰색 마티즈 승용차에 실으라”고 전했다.

경찰은 범인이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하자, 백화점 측과 상의해 현금 대신 A4 용지 10kg을 상자에 담았다. 지금까지 돈을 액수로 요구한 적은 있지만 ‘kg’으로 요구한 적은 없었다.

이것은 범인이 일일이 돈을 셀 수 없으니 정확히 5만원 권으로 10kg을 채워서 보내라는 뜻이었다. 달리 말하면 범인은 5만원 권으로 5억 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게가 10kg이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범인은 아마 돈을 받을 때 무게를 재기 위해 전자저울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찰과 백화점 측은 범인의 요구사항을 듣는 것처럼 꾸미고 약속 시간을 기다렸다. 오후 5시45분 쯤 되자 약속된 차량에 돈을 전달하는 척하며 운전자를 검거했다. 이 운전자는 범인의 전화를 받고 나온 퀵서비스 기사였다.

범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다시 걸려 온 전화에서 “왜 경찰을 데리고 나왔느냐”며 “너희랑은 이야기 못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범인은 약속 장소 근처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범인은 그 뒤로도 협상금을 건네받을 약속 장소를 전주세무서 인근 한 병원, 전주역 등으로 변경해 경찰을 따돌렸다. 범인의 요구에 따라 처음 제보 전화를 받은 정기자가 가짜 협상금을 든 채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그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범인은 정기자가 택시로 이동 중에 전화를 걸어와 “경찰이 따라붙은 것 같은데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겠느냐”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7시40분쯤 마지막 통화에서 “경찰이 붙어 포기하겠다. 돈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라”고 말한 뒤 종적을 감췄다. 경찰의 섣부른 검거 작전이 범인을 더 깊숙이 숨게 한 원인이었다.

경찰은 긴급 수사본부를 차리고 범인을 뒤쫓기 시작했다.

우선 정기자에게 온 전화번호와 발신지를 추적했다. 휴대전화 명의자를 조회한 결과 60대 남성이었다. 협박전화를 건 남자의 음성이 40대쯤인 것으로 볼 때 대포폰일 가능성이 컸다. 사건 현장에서 확보된 목격자도 협박 용의자를 40대쯤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쓰는 휴대전화와 전화 목소리, 사건 현장에서 확보된 목격자 진술 등도 40대에 가까웠다. 롯데백화점 뿐 아니라 협상금을 받을 장소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에서 전주 지리에 밝을 것으로 판단했다. 즉 범인은 전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범인이 전주에 사는 40대 남성으로 추정했다.

범행수법으로 보아 범인은 상당한 지능범인 것으로 보여졌다. 치밀하게 준비했고, 철저하게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경찰에 신고할 것을 알면서도 장소를 옮겨가며 돈을 받으려고 했다.

퀵서비스를 심부름 시켜 돈을 받게 하는 등 자신의 모습은 철저하게 뒤로 숨겼다. 그렇다고 범행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주변을 빙빙 맴돈 것으로 파악된다. 범인은 영화를 많이 봤거나 아니면 특정 전문분야에서 일했을 수도 있었다.

범인은 처음 방송사 기자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자살사이트 운영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살사이트 운영자가 아니라 자살사이트 회원일 가능성이 컸다.

그는 방송사 정기자와 통화할 때 “돈이 절실하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당장 큰돈이 필요했을 것 같았다. 범인은 분명 돈과 관련해 회복할 수 없는 상황, 즉 막바지에 몰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자살사이트에 들어갔을 것이고, 그러다 이판사판으로 마지막 한탕을 노린 것일 수도 있었다.

경찰은 사건발생 이틀 후인 2월8일 ‘전주 백화점 폭발물 테러’ 협박범을 공개 수배했다. 관할 완산경찰서는 협박범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사진이 담긴 수배 전단을 배포했다.

수배전단에 공개된 이 남성은 아래위 모두 검은색의 등산복을 입고 있으며, 갈색 또는 남색 계열의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다. 경찰은 전북 15개 경찰서 관내 주요 지점과 전주 지역의 간선도로와 버스 터미널, 역 등을 중심으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경찰은 공개수배와 함께 범인의 동선을 추적하며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했다. 그러다 범인의 동선과 겹쳐지는 산타페 승용차 한 대가 포착됐다.

이 차량은 범인이 모닝 승용차를 폭파시킨 효자공원묘지와 협박 전화를 건 덕진동의 한 공중전화 박스 주변에서도 잇따라 발견됐다. 소유주를 추적해 보니 백아무개씨(45)의 매형(52)이 소유주였다.

백씨의 전과조회를 통해 강도와 특수절도 등 전과 19범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경찰은 백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리고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백씨의 집에 산타페 승용차가 주차된 것을 확인하고 잠복해서 그를 검거했다.

백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도주하기 위해 짐을 싸 자신의 집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경찰이 백씨 차량을 가로막자 급히 후진하다가 원룸 기둥과 충돌했다. 이렇게 해서 백씨의 백화점 테러 협박사건은 1주일 만에 종결됐다.

경찰은 백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와 방화,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백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으나 전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은택)는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실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고, 불태운 차량의 금액이 그다지 크지 않은 점, 공갈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등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이용하는 백화점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점, 백화점 측에 상당한 재산적 손해를 발생시킨 점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에게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전과 19범의 이혼남… 폭파 전과는 없다

범인 백씨는 여러 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2008년에는 특수절도·절도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2012년 6월에 출소했다. 교도소를 나온 후에는 전주시내 한 골프장에서 일했다.
백씨는 결혼해서 두 아들이 있었으나 10여년 전에 이혼했다. 이혼한 부인과 아들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백씨가 밝힌 범행동기는 아들의 대학 편입 등록금 때문. 그는 “이혼한 뒤 수감생활이 잦아 아버지로서 아들들에게 해준 게 없었다. 이번에 큰아들이 대학에 편입하는데 등록금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어 목돈이 필요했다”고 진술했다.
협박 대상으로 백화점을 택한 것은 현금이 많고, 유동인구가 많아 쉽게 협박에 응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씨는 이혼한 부인과 교류가 없었고, 5억 원에 달하는 돈을 요구한 것으로 볼 때 등록금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계산일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백씨는 같은 해 1월20일부터 범행을 철저하게 계획했다. 대포폰 업자와 접촉해 휴대전화 3개를 준비했다. 또 인터넷으로 전주 롯데백화점과 전주 이마트를 검색했고 점장들의 이름까지도 일일이 파악해 놓았다. 전주 심부름업체, 청부살인, 전자회로 등도 검색하는 등 범행을 준비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범행 후에는 매형 명의의 휴대전화로 ‘롯데 협박범’, ‘축제라이브'(모닝 승용차를 훔친 술집) 등을 수차례 검색했으며, 자신의 컴퓨터로 ‘무선송수신기'(차량 폭파에 사용 추정), ‘중국밀항’, ‘백만원 무게’ 등의 단어도 검색했다.

백씨는 2003년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총기와 실탄을 제작해 2005년부터 검거되기 전까지 전주시 누나의 집 화단 앞마당에 보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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