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원 청부 내발산동 살인사건
범행은 잔인했다.
2014년 3월3일 오전 3시20분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있는 4층짜리 ㅅ상가 3층 관리사무실에서 건물주인 송아무개씨(67)가 피를 흘린 채 숨져있었다.
송씨를 발견한 것은 그의 아내였다. 남편이 휴대전화를 받지 않자 관리사무소에 찾아갔고,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송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송씨가 숨진 관리 사무실은 폐업한 헬스클럽이었다. 경찰은 원한이나 채무관계에 의한 살인에 무게를 뒀다. 수천억대 자산가인 송씨가 재산 분쟁에 얽혀있고, 10여 곳을 둔기에 맞는 등 살해 방식이 잔인한 점을 들어 단순 살인은 아니라고 봤다.
경찰의 추적이 시작됐다. 건물인근 폐쇄회로(CC)TV 부터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송씨가 살해되기 전인 3일 오전 0시50분쯤 ㅅ상가 건물에 한 남성이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까만 모자와 하얀 마스크에 장갑을 낀 사람이 당시 송씨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송씨 부인이 신고한 시간과 괴한이 CCTV에 찍힌 시간을 보면 송씨가 살해된 시간은 0시50분~오전 3시20분까지 약 2시간30분 사이로 추정됐다. 경찰은 이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뒤쫓기 시작했다.
살해범의 단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송씨가 경매 등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송사 등에 얽힌 상대가 여러 명이고 주변인들도 서로 연관돼 있어 진술받기도 어려웠다.
CCTV에 찍힌 남성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그를 ‘누구’라고 특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유족들도 송씨의 죽음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범행당시 CCTV를 보면 용의자는 범행과정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다수 목격됐다.
경찰은 담배꽁초를 찾아내 DNA 검사를 하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담배꽁초를 찾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용의자가 추적을 피해 의도적으로 지문 등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배꽁초가 아닌 담뱃재로는 DNA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얼마만큼 철저하게 범행을 준비됐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일단 금품을 노린 단순 살인사건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증거 확보에 주력했다. 범행 후 용의자는 사건 현장 건물 뒤에 있는 골목을 통해 큰길로 달아났다.
경찰은 용의자의 범행 당시 진입로와 도주로, 타고 다닌 차량 등을 파악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범행이 심야시간대에 발생해 CCTV가 있어도 별 도움이 안 됐고, 서울시내 택시 중 GPS가 장착된 택시도 많지 않아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범인 추적에 더욱 고삐를 당겼다. 일일이 택시 회사를 찾아다니며 기사들을 만나 용의자가 맨 처음 탄 택시를 찾아냈다. 그가 향한 곳은 사건 현장에서 8㎞쯤 떨어진 서울 영등포시장이었다.
택시기사는 그가 현금 1만 원을 주고, 1000원의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택시에서 내렸다고 진술했다.
용의자는 여러 번 택시를 갈아탔다. 옷도 여러 번 갈아입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다. 이러다보니 용의자가 탄 택시 한 대 한 대를 확인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택시 기사들도 손님을 내려준 지점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경찰은 더 집요하게 접근하고 끈질기게 추적했다.
그리고 용의자가 범행 후 사우나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고, 그가 팽아무개씨(44)라는 것을 알아냈다. 팽씨는 이 사우나를 10여 년 간 다닌 단골 손님이었다. 경찰은 사우나 종업원에게서 팽씨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는데 성공한다. 이제 팽씨를 체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 15일째인 3월18일, 경찰은 팽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팽씨의 소재파악을 위해 통신‧금융수사를 벌였다. 그런데 송씨의 살해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또 한 명이 용의선상에 올라왔다. 문제는 팽씨가 중국으로 도피한 뒤였다.
팽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은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경찰은 인터폴에 팽씨를 적색 수배했다. 그로부터 64일 후인 5월22일 팽씨는 선양에서 중국 공안들에게 체포됐고, 약 한 달 만인 6월24일 국내로 압송됐다. 이때까지 경찰은 공범의 동향을 파악하며 때를 노렸다. 팽씨가 압송되던 당일 오전 8시43분 경찰은 서울시의원인 김아무개씨를 주거지 앞에서 긴급 체포했다.
유력 용의자인 팽씨와 김씨가 체포되면서 사건 전모도 드러났다.
살해된 송씨가 서울시의원인 김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씨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맡고 있었고, 지인의 소개로 수천억대 재력가인 송씨를 처음 만난다. 김씨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송씨 거주지인 강서구에서 야당 후보로 출마했다.
2011년까지 약 1년 동안 김씨는 송씨에게 총 5억여 원을 빌렸다. 차용증도 썼다. 경찰은 김씨가 송씨에게 일반 토지를 상업지구로 바꿔 땅값을 올려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봤다.
그러나 김씨는 송씨의 돈을 갚지 않았다. 이때부터 둘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2012년 말부터 “돈을 빨리 갚으라”는 송씨의 빚 독촉이 시작된다. 6·4지방선거 재선을 준비하던 김씨는 송씨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자 불안감이 커졌다. 결국 그는 송씨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10년지기 친구인 팽씨를 끌어들였다.
팽씨는 김씨에게 7000만 원을 빚진 상태였다. 김씨는 빚 탕감 조건으로 송씨 살해를 사주했다. “송씨를 죽이고 차용증을 가져오면 그동안 (네가 나에게) 빌렸던 돈을 변제해주고, 중국에서 가족들과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팽씨는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고, 범행비용 1300만 원과 범행에 쓰일 손도끼와 전기충격기를 김씨에게서 직접 제공받았다.
김씨와 팽씨는 완전범죄를 노렸다.
팽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씨와 범행을 약 1년6개월 전부터 모의했다고 진술했다. 송씨와 가깝게 지내던 김씨는 사전에 송씨의 일정과 출·퇴근 시간, 동선 등을 시간대별로 자세히 파악한 뒤 팽씨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범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지시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팽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망설였다. 사주 받은 2012년 말부터 1년여 간 범행 장소를 수십 차례 드나들었으면서도 정작 범행을 시도하지 못했다. 김씨가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죽이지 못하면 더는 못 기다린다”며 압박하자 결국 3월3일 송씨를 살해했다.
그 뒤에는 미리 짠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팽씨는 사건 장소에 범행에 사용한 도구나 옷가지, 지문 등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범행 당일 인천에서 강서구 내발산동의 범행 장소로 오면서 택시를 수차례 갈아탔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려 범행 장소까지 걸어가고 불필요하게 길을 여러 번 건너는 등 수법으로 추적을 어렵게 했다.
팽씨는 범행 이후에도 택시를 4차례나 갈아타면서 인천의 사우나로 도주했으며, 그곳에서 혈흔이 묻은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택시를 갈아타고 인근 야산으로 이동해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옷가지 등을 불태워 증거를 없앴다.
김씨와 팽씨는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도 대포폰과 공중전화만을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팽씨가 중국으로 도주 한 후 2개월 만에 검거되자 김씨는 자신의 범행이 탄로날까봐 초조했다. 팽씨가 국내로 압송되면 모든 게 탄로날까봐 불안했다.
팽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전모를 순순히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김00이) 한국으로 오지 말고 그곳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배신감을 느껴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팽씨는 구치소에서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팽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김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은 국민 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2014년 10월27일 1심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김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 일체를 유죄로 인정했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김씨는 거액의 돈을 받은 것도 비난받아 마땅한데 살해하라고 지시한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며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 지시한 점,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중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에 김씨는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도 “원심의 형이 적절하다”며 무기징역을 유지했다.
김씨의 사주로 송씨를 살해한 팽씨는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팽씨는 이에 대해 상고하지 않았다.
김00 전 서울시의원은 한신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대학 졸업 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된다.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재선되며 정치적 기반을 다져갔지만 결국 돈 앞에서 무너졌다.
청부살해 피해자 송씨는 누구
청부살해 당한 송씨는 오래 전부터 뉴스에 오르내리던 인물이다.
오랫동안 재산분쟁과 법적 소송 등에 휘말려왔다. 그는 원래 화물차 운전기사였다. 어느 날 재일교포 사업가 이아무개씨가 나타나면서 송씨의 인생이 바뀐다. 이씨는 17세 때인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돈을 벌었다. 1967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과 종로구 장사동에 약 9917㎡(3000평)의 땅과 건물을 샀다. 일본에 주로 거주하던 이씨는 재산관리인을 고용해 부동산을 관리했다.
그런데 별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가 일본에 있다는 것을 이용해 재산을 빼돌리는 등 관리에 문제가 생겼다. 재산관리인도 자주 바꿨다. 1996년 새 재산관리인을 고용했는데, 그게 바로 송씨 부부다. 이씨와 송씨의 아내는 8촌지간이다. 쌩판 모르는 남 보다는 먼 친척이 더 믿을 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국내 사업을 더욱 키우고 확장했다. 곳곳에 부동산을 사들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부동산 임대업에 나섰다. 화물차를 운전하던 송씨는 하던 일을 접고, 이씨의 손과 발이 됐다. 노령의 이씨는 2002년부터 투병생활을 하며 일본에 머물렀다. 한국에 있는 부동산 등 재산은 송씨에게 재산관리의 전권을 줬다.
이씨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안 송씨는 ㅇ산업 법인 도장이 찍힌 매매계약서를 만들었다. 서류상으로 ㅇ산업은 폐업 처리한 것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업체를 ㅅ기업으로 이름만 바꿔 운영했다. 2년 뒤인 2004년 이씨가 사망하자 송씨 부부는 이씨 돈을 가로챘다.
일본에 있던 이씨의 딸은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2005년 송씨를 사문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재산을 가로챘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씨를 사기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09년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송씨에게 위조 및 사기 혐의를 인정해 징역 8년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됐다. 아내 이씨도 3년형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서류를 위조해 이씨 재산을 가로챈 혐의를 인정한 판결이다.
송씨는 항소했다. 그는 재력을 이용해 변호인단을 구성했고, 2심에서 ‘돈의 힘’을 실감한다. 서류 위조에 대한 확정적인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검찰은 상고했다. 2013년 12월 지루한 법정공방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송씨가 제출한 매매에 관한 이행각서가 위조된 것으로 판단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루한 법정공방이 끝난 3개월 후 송씨는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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