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가 살인범이라고 선고한 판사
2010년 4월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A씨(여・22)가 산낙지를 먹다 사망한다.
처음에는 사고사로 알았던 부모는 딸의 시신을 화장해 인천 앞바다에 뿌렸다. 그런데 49재를 앞두고 집으로 배달된 ‘보험 증서’를 보고 의문을 품게 된다. A씨가 죽은 후 2억원의 보험금이 나왔고, 수령자는 다름 아닌 남자친구인 B씨(32)였다.
A씨 유족은 재수사를 요청했고, 경찰은 B씨를 살인혐의로 체포한다. 검찰도 같은 의견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라며 사형을 구형한다. 1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B씨가 법(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B씨는 여기에 불복해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면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즉 1심은 B씨가 낙지를 이용해 A씨를 살해했다고 봤으나 항소심은 B씨의 의도성을 배제한 채 낙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2012년 9월12일 대법원은 원심을 인용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B씨는 법적으로 완전 자유가 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재판부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나는 검찰의 공소장, 1심 판결문, 항소심 판결문 등을 토대로 사건 현장과 피해자 유족, 주변 인물 등을 탐문해 이 사건을 역 추적해 나갔다. 그랬더니 모든 정황이 한 사람, 바로 B씨를 범인으로 더욱 확실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2010년 4월18일 오후 11시20분쯤 B씨는 인천 미추홀구 미추홀대로(주안동)에 있는 한 모텔 객실을 예약한다. A씨와 B씨는 모텔 근처에 있는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이때 B씨가 “지는 사람이 술 마시는 게임을 하자”며 A씨를 만취하도록 유도한다. A씨는 평소 주량이 소주 반 병인데 이날 3병을 마시면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주점에서 나왔다. B씨는 “모텔에 가서 산낙지 안주삼아 술을 더 마시자”며 모텔 맞은편에 있는 횟집에 들렀다. B씨는 산낙지 가격을 물었고 주인이 “두 마리에 2만원”이라고 하자 “3만원어치를 주되 두 마리는 썰어서 달라”고 했다. 여기에 횟집 주인이 1마리를 덤으로 주자 낙지는 4마리가 됐다.

B씨는 “두 마리는 썰어서 포장용기에 넣어 주고, 두 마리는 산 채로 비닐봉지에 넣어 해수에 담아달라”고 주문했다. 이때 A씨는 술에 취해 카운터에 기대어 서 있었다.
이 대목에서 의아하다. B씨는 술 안주로 산낙지를 사면서 세발낙지가 아닌 연포탕이나 해물탕에 들어가는 통낙지를 샀다. 그것도 4마리 중 2마리는 자르지도 않았다. 특히 모텔 객실에는 낙지를 자를 만한 도구(칼이나 가위)가 없었다. 술 안주로 사가면서 통낙지를 자르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4월19일 오전 3시쯤, 횟집에서 산낙지를 산 B씨는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1병과 맥주 1병을 구입한 후 모텔 객실(702호)로 들어갔다. 1시간20분이 지난 오전 4시20분쯤, 프론트에 있는 전화벨이 울렸다.
B씨는 객실 내 전화로 종업원에게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종업원은 4시24분쯤 119에 신고했고, B씨가 프론트에 내려오자 함께 객실로 올라갔다.
B씨는 A씨가 숨을 못 쉬고 의식을 잃은 급박한 상황인데도 휴대전화를 이용해 직접 119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7층에서 1층까지 오르락 내리락했다. 이로인해 1초가 다급한 순간에 14분이나 지체됐고, A씨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내가 현장에 가서 보니 B씨의 행동이 더욱 의심스러웠다. B씨는 모텔 인근에서 A씨와 자주 데이트를 했기 때문에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모텔 바로 앞에는 종합병원인 인천 사랑병원이 있었다. 직접 거리를 재보니 모텔 입구에서 병원 입구까지 보통 걸음으로 48초가 걸렸다. A씨는 키 157cm 몸무게 50kg 정도였고, B씨는 173cm 정도 키에 통통한 편이다.
B씨가 처음부터 A씨를 안거나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2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런데도 B씨는 프론트에 전화해 119에 신고를 부탁했고, 7층에서 1층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면서 시간을 지체했다.
모텔 종업원이 “근처에 병원이 있으니 그곳으로 옮기자”고 한 후에야 A씨를 업고 나왔으며, 모텔과 병원 중간에서 119 대원들을 만났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한 후에 A씨가 사랑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시간은 4시34분이다. 이때는 이미 회생불능이었다. 주치의는 “A씨의 뇌가 반 이상이 이미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질식 시간이 15분 정도는 지난 것 같다”는 소견을 냈다. 그러면서 A씨가 살 수 있는 확률은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A씨는 사고 발생 15일 만에 사망한다.
모든 계획 범행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A씨는 2010년 3월25일 B씨의 요구로 생명보험에 가입한다. 수익자는 법정상속인이었다. 그런데 약 일주일 후 B씨는 A씨를 속여 사망상해시 수익자를 자신으로 변경한다.
A씨는 4월19일 사고를 당했고, B씨는 그녀가 사경을 헤맬 때인 4월21일 은행에 자신 명의의 계좌를 개설한다. B씨는 A씨가 사망한 후 보험금 2억51만원을 송금받았다.
B씨는 보험금으로 받은 100만원과 10만원권 수표를 침대 시트위에 펼쳐놓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자랑삼아 올려놓기도 했다.

나는 B씨의 주변을 탐문해 나가다가 그의 충격적인 사생활을 듣게 된다. B씨는 A씨와 사귀면서도 동시에 두 명의 여자를 더 만나고 있었다.
심지어 A씨가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또 다른 애인 C씨와 만나 그 가족들과 등산을 갔고, 보험금을 수령한 후에는 A씨 가족과 연락을 끊고 C씨와 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또한 보험금으로 채무를 변제하고 전세금을 지급했고, 애인 C씨와 또 다른 애인 D씨에게 승용차를 사주거나 돈을 주기도 했다.
B씨의 전과도 화려했다. 그는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경찰서를 들락거렸는데, 전과만 9범이었다. 21살 때인 2002년에 절도, 강도상해, 특수강도 등을 저질렀고, 같은 해 7월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낙지 사건이 일어나기 약 2년 전인 2008년 10월1일에는 수원지방법원에서 강도예비, 사기죄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같은 해 10월20일까지 수원구치소에서 복역했다.
2010년 1월부터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신용정보사에 등재됐다. 그 후 일정한 직업이나 소득 없이 가끔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면서 지냈다. 그는 여자들을 만나면서 돈을 빌려 생활했고, 여성들을 울리고 사기치고 범죄행각을 벌이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범죄 정황이 뚜렷한데도 항소심 판사는 낙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나는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법’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줬다기 보다 오히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취재를 끝내고 나자 구천을 떠돌고 있을 A씨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녀의 영전에 흰 국화 한송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부모에게 물어 고인의 유해를 뿌린 위치를 확인한 후 꽃집을 찾았다. 어찌된 것이 가는 동안 꽃집을 모두 들렀지만 흰 국화를 파는 곳이 없었다. 결국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가서야 흰 국화 한 송이를 살 수 있었다.
나는 국화를 바다에 던지며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릴테니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으라”고 말했다. 회사에 돌아온 후 편집장에게 당초 3면으로 잡혀있던 지면을 2면 더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시사저널에 ‘누가 000을 죽였나’라는 제목의 심층기사가 보도됐다.
이 기사를 본 A씨의 어머니가 “조금은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다”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