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학자의 숨겨진 비밀
2012년 9월 어느 날, 사정기관에 있는 한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 기자, 그거 아느냐”며 “일본 극우학자 시모조 마사오(당시 61세)가 극비리에 한국을 다녀갔다”고 전했다.
시모조는 일본의 각종 교과서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표기하도록 물밑 작업을 한 대표적인 극우학자다.
2005년 일본 시마네 현이 설치한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좌장도 맡고 있었다. 2011년도 일본 자민당 의원 세 명의 울릉도 방문을 기획한 것도 시모조였다.
그는 일본 우익을 대변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당시는 일본이 독도를 이슈화해 우리를 자극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나는 선배에게 “왔다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선배는 “아니, 그놈이 왔다간 것 가지고 내가 전화했겠어”라고 했고, 나는 “또 뭐가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놈 마누라가 한국인이고 처가가 한국에 있다”고 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요”라고 말했다. 이걸 공론화하면 시모조의 반한 활동에 타격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여러 정보 루트를 동원해 시모조의 국내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가 8월29일 3박4일 일정으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9월1일 오후 비행기로 돌아간 것을 확인했다.
이번 방문에는 한국인 부인 김아무개씨(당시 50세)와 20대로 보이는 딸, 초등학생인 아들이 동행했다.
시모조는 한국 방문기간 동안 서울 시내 호텔에서 숙박하고, 부인과 아이들은 처갓집에 머물렀다.
우리 정부 당국은 시모조의 방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가 한국 방문을 ‘개인적인 가족 방문’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입국을 막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의 입국과 행적은 언론 등 외부에 일체 노출되지 않았다.
내가 취재해 보니 시모조가 순수하게 가족들만 만난 것이 아니었다. 출국 하루 전날에는 서울 시내 모처에서 구로타 카쓰히로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을 만났다. 산케이는 일본의 대표적 극우 언론이며, 구로다는 30년 넘게 서울 특파원을 맡고 있었다.

시모조는 한국과는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1980년 국내에 들어와 1990년까지 10년간 머무르면서 삼성종합연수원 주임강사와 인천대 객원교수를 지냈다. 이때 현재의 부인을 만났다고 한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에는 우익 계열인 다쿠쇼쿠 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이때부터 일본 우익을 대변해 ‘독도는 일본 땅’을 주장하며 한국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나는 시모조의 처가 식구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의 처갓집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었다. 근처 음식점에 물어보니 시모조의 처갓집에 대해 “일본인 사위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는모르고 있었다. 그의 장모는 무속인이라고 했다.
처갓집에 가서 인터폰을 눌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동안 대문 앞에서 지켜봤지만 집안에 아무도 없는 듯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집 근처에서 잠복하기 시작했다. 계속 대문을 주시하며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시간만 흘러갔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끝내 처갓집 식구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시사저널에는 시모조의 극비 입국 사실과 한국인 부인을 두고 한국에 처갓집이 있다는 기사가 처음으로 보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