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낚았던 잉어 다시 잡은 낚시꾼
영국 남부 켄트주의 조용한 마을 턴브리지 웰즈에 사는 건축업자 팀 코젠스(남)는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낚싯대를 챙겨 집을 나서는 평범한 낚시꾼이다.
자연 속에서 물을 바라보며 기다림을 즐기던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물고기 친구가 하나 있다. 인간과 물고기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존재가 14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마주한 놀라운 이야기다.
찌를 물고 올라온 뜻밖의 기억
코젠스와 물고기의 인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코젠스(40대)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스트로베리 필즈’라는 이름의 유명한 낚시터를 찾았다. 잔잔한 호수 위에 찌를 띄우고 기다리기를 얼마간, 낚싯대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묵직한 손맛이 전해졌다. 물속의 존재와 한참을 힘겨루기한 끝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잉어 한 마리였다.
당시 저울에 달아본 잉어의 무게는 11.8킬로그램으로, 혼자서 들어 올리기에도 꽤나 묵직한 크기였다. 그런데 코젠스의 눈길을 끈 것은 잉어의 덩치만이 아니었다. 잉어의 머리 한쪽 면을 살펴보니 비늘이 없이 둥글고 매끄러운, 아주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른 잉어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커다란 특징이었다.
코젠스는 이 신기하게 생긴 잉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둔 뒤, 다시 건강하게 살아가라며 호수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코젠스의 기억 속에서도 그 독특한 잉어의 존재는 차츰 희미해져 갔다. 그사이 계절이 수없이 바뀌었고 물속의 세상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두 배로 커진 몸집, 하지만 낯설지 않은 얼굴
그로부터 무려 14년이 지난 2013년 5월20일, 코젠스는 여느 때처럼 같은 호수를 찾았다. 그날따라 유독 강한 움직임이 낚싯대를 타고 전해졌다. 낚싯줄이 끊어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그는 무려 40여 분 동안 물고기와 숨 막히는 밀고 당기기를 이어갔다. 온 힘을 다해 겨우 물 밖으로 건져 올린 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의 초대형 잉어였다.
낚시터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몰려와 구경할 만큼 거대한 녀석이었다. 저울을 가져와 무게를 재어보니 무려 24.8킬로그램이 나갔다. 14년 전 잡았던 무게의 두 배가 훌쩍 넘는, 그야말로 호수의 지배자 같은 위용이었다.
그런데 코젠스는 잉어의 숨을 고르게 해 주며 상태를 살피다가 문득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잉어의 머리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그는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잉어의 머리 한쪽에는 14년 전 자신이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비늘 없이 매끄러운 그 독특한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세월이 흘러 덩치는 몰라보게 커졌지만, 잉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고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젠스는 자신이 과거에 놓아주었던 바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감동에 빠졌다.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거친 물속 환경을 이겨내고 이토록 건강하게 살아남아 준 것이 대견했고, 다른 사람의 낚싯바늘에 걸려 목숨을 잃지 않고 다시 자신에게 찾아와 준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유럽 등지에 사는 대형 잉어는 수명이 매우 길다. 야생이나 관리되는 호수에서는 보통 20년~40년 이상 살 수 있으며, 몸무게도 환경이 좋으면 30~40kg까지 계속 자라기 때문에 14년 만에 2배 이상 벌크업(?)해서 나타난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유럽의 낚시 문화에서는 물고기를 잡으면 상처를 치료(소독)해 주고 다시 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운 상식이다. 코젠스 역시 오랜만에 만난 오랜 친구를 가두거나 해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품에 안기기도 벅찬 대형 잉어와 함께 기념사진을 몇 장 남긴 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호숫가로 다가갔다.
코젠스의 두 손을 떠난 거대한 잉어는 커다란 꼬리지느러미로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깊은 호수 속으로 사라졌다. 14년 전에도, 그리고 그날도 잉어는 같은 자리에서 인간이 베푼 배려를 품고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갔다.
넓고 깊은 호수 어딘가에서 그 잉어는 지금도 여전히 숨을 쉬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호수의 잔물결을 바라보는 코젠스 씨의 시선 끝에는 깊은 생각과 정다운 온기가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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