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성폭력

제주 초등학생 성추행 살인사건


어른들의 탐욕스런 욕구에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2007년 3월16일 오후 5시쯤 제주도 서귀포시 서흥동의 한 빌라앞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양지승양(9)이 실종됐다. 양양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학원차량을 통해 집 앞에 하차한 후 사라졌다.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가는 데도 딸이 귀가하지 않자 부모는 오후 8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중앙치안센터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단순 실종’과 ‘납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양양이 이동했을 만한 장소를 집중 수색하는 한편 동종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도 벌였다. 하지만 양양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경찰은 실종 이틀째인 18일부터 부모의 동의를 얻어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양양의 신원을 공개했다.

또한 실종 전단지 약 5000부를 제작해 시내 일원을 중심으로 배포하며 목격자를 찾았다. 하지만 신빙성 있는 제보와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금품을 노린 납치였다면 부모에게 연락이 왔어야 하지만 그런 전화도 없었다. 경찰은 일단 금품 요구가 없는 것으로 봐서 납치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봤다.


양양을 찾기 위해 전 제주도민이 움직였다. 경찰병력은 물론이고, 군부대, 공무원, 일선 마을 주민들까지 나서서 지승양 집 주변과 인근 감귤 밭, 주택가 등에서 수색 작업을 계속했다. 수색 범위도 집근처에서 해안가와 산간지역의 하천까지 확대됐다.

여기에는 경찰헬기까지 동원됐다. 터미널 등 도심 곳곳에서도 양양의 전단지가 배포됐다. 일선 학교와 마을에는 양양을 찾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뿌려진 전단지만 해도 4만여 장에 육박했다.

그러나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있었다. 실종 20일, 30일이 지났는데도 양양의 행방은 물론 뾰족한 단서조차 찾지 못했다. 실종이 장기화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지승양을 조속히 찾으라고 특별 지시까지 내렸다.

경찰은 지승양을 유괴된 어린이를 신속하게 구조하기 위한 ‘앰버(Amber)경고 시스템’의 첫 대상자로 선정했다. 4월9일부터는 앰버경고가 발령됐고,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양양의 앰버경고를 메인화면에 배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양의 가족은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부모는 “평소 조금만 늦어도 집에 연락을 하는데다 집과 학교, 학원밖에 모르는 아이”라며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실종 40일째인 4월24일 경찰은 성폭력 전과자인 송씨가 혼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다.

오후 5시30분쯤 경찰특공대와 수색견이 해당 과수원에 들이닥쳐 감귤원 관리사(창고형 건물) 옆에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검은색 비닐과 마대에 싸여있던 부패된 시신을 발견한다. 시신은 폐가전제품 등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안경과 신발, 옷가지 등은 지승양의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과수원 내 관리사에서 살고 있던 송영칠(49)을 특정한다. 그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기거해오고 있었다. 경찰은 송씨의 행적을 추적해 남원읍의 한 골프장 공사현장에서 긴급체포됐다.

그는 경찰의 추궁에 지승양을 납치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것은 인정했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송씨는 사건 당일 오후 서귀포시 중앙로터리 소주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나왔다. 집으로 가던 중 홀로 걸어가는 지승양을 발견하자 순간적으로 성적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지승양에게 접근해 “글을 모르니 대신 글을 써 달라”며 자신이 살고 있는 과수원 관리사로 유인했다. 오후 7시쯤 송씨는 양양을 강제추행한 뒤 “너 혹시 여기가 어딘 줄 아니?”라고 물었고, 이에 지승양이 “알아요”라고 답변하자 범행이 탄로 날 것이 두려워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범행 후 시신을 자신이 기거하는 방에 놔둔 채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오전 5시쯤 시신을 마대에 싼 뒤 비닐로 2중 포장해 쓰레기 더미에 숨겨둔 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생활했다. 송씨가 기거하던 곳은 감귤나무로 뒤덮여 매우 음습하고 인적이 드나들기에는 허름한 곳이었다.

경찰은 양양의 속내의가 뒤집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성추행 뒤 강제로 옷을 입힌 것으로 봤다. 송씨의 방 침대에서는 양양의 머리끈 1점이 추가로 발견됐다.

경찰은 수색에서도, 우범자 조사에서도 실패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지승양의 집에서 북서쪽으로 불과 150m 지점이다. 이미 수색견까지 동원해 이 잡듯 수색했던 곳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지척에 있는 양양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연인원 3만 명을 동원하고도 바로 코앞에 있는 시신을 찾지 못해 헛걸음질만 친 것이다. 수색이 대강대강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종 초기 수색대원들이 제대로만 했다면 얼마든지 시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시신을 마대로 포장한 뒤 2차, 3차 포장해 냄새가 나지 않도록 화장실 앞 쪽에 유기해 발견하기 힘들었고, 재래식 화장실이 있어 수색견이 냄새를 맡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실종이나 성범죄가 발생하면 주변 동종 전과자나 우범자 파악은 기본이다. 송씨의 경우 1992년 서울에서 2세 남자 어린이를 납치하려다 부모에게 발각돼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여기에다 성폭행과 사기 등 전과 23범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송씨가 지승양 이웃에 산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인력과 예산만 낭비하고 말았다.

양지승양의 장례는 눈물속에 치러졌다. 사건발생 43일 만인 4월27일 모교인 서귀북초등학교를 찾아 친구들, 선생님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화장절차를 거쳐 서귀포시 외돌개 앞 바다에 뿌려졌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날 ‘애도의 날’로 정하고 각급 학교에 묵념과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 제주 도민들은 양양이 범죄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했다.

양지승양을 납치, 성추행하고 살해한 송영칠에게는 1심·2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본인의 성적 욕구를 위해 나이 어린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점과 피해자를 성추행한 뒤 범행을 감추기 위해 사체를 유기하고 태연하게 생활한 점 등을 볼 때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 같이 선고했다.


성폭력 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중독성이 강하고 재범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재범자들은 횟수를 반복할수록 범행이 잔인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아동과 같은 약자의 경우 신고를 염려해 성폭행 후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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