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로또’ 용연향 주운 어부 인생역전
해변을 걷던 가난한 어부의 발끝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걸렸다. 겉모습은 볼품없고 희끄무레한 바위 같았다. 하지만 이 바위 모양의 덩어리는 어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일명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용연향 이야기다.
용연향은 바다 위를 오랜 시간 떠돌다 육지로 밀려오는 귀한 물질이다. 옛날부터 금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 대체 이 덩어리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이토록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일까.
오징어 부리가 만들어낸 뜻밖의 보물
용연향은 향유고래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다. 대중에게는 흔히 배설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용연향은 고래가 입 밖으로 토해내는 구토물에 가깝다.
향유고래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 커다란 오징어나 가오리를 잡아먹는다. 이 과정에서 오징어의 입에 해당하는 단단한 부리나 가시 같은 부위는 쉽게 소화되지 않는다. 이 소화되지 않는 부위들이 고래의 장 속에 남아 자극을 준다. 고래의 장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득한 분비물을 뿜어내 이 단단한 찌꺼기들을 감싼다.
이 덩어리가 장 속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점차 커진다. 시간이 지나 고래가 이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면 입 밖으로 토해낸다. 이렇게 바다로 나온 덩어리가 바로 용연향이다.

일부에서는 수컷 고래만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암수 구분 없이 향유고래 개체 전체에서 낮은 확률로 발생한다. 전체 향유고래 중 용연향을 품고 있는 고래는 백 마리 중 한 마리 꼴에 불과하다.
처음 고래의 몸에서 막 나온 용연향은 부드럽고 검은색에 가깝다. 이때는 코를 찌르는 강한 악취가 난다. 이 덩어리가 바다 위를 떠다니면서 진짜 보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용연향은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바다 위를 떠돌아다닌다. 뜨거운 햇빛을 받고 차가운 바닷물에 씻기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겉면의 부패한 성분이 날아가고 바닷물의 소금기와 산소가 반응을 일으킨다. 검은색이었던 표면은 점차 연한 옅은 갈색이나 흰색으로 변한다. 질감도 바위처럼 단단해진다.
이 과정이 오래 진행될수록 기묘하고 고급스러운 향이 피어오른다. 용연향은 향수 제조 과정에서 향을 오랫동안 유지해 주는 정착제 역할을 한다. 용연향에 들어있는 ‘암브레인’이라는 성분이 다른 향수 성분과 섞여 향이 공기 중으로 쉽게 날아가지 않도록 잡아준다. 자연적으로 숙성된 기간이 길수록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어부의 인생을 바꾼 100kg의 기적
2020년 12월, 태국 남부의 해변 마을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어부 나리스 수완나상(60)은 평소처럼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해안가에 밀려온 커다란 흰색 덩어리를 발견했다. 무게만 무려 100kg에 달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돌인 줄 알고 집으로 옮겨왔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가족들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용연향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리스와 가족들은 곧바로 확인에 나섰다.
덩어리 표면을 라이터 불로 살짝 그을려 보았다. 그러자 겉면이 살짝 녹으면서 금세 사향 향이 방 안 가득 퍼졌다. 나리스는 전문가에게 정밀 감정을 맡겼고, 진짜 용연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가 일하며 받던 한 달 벌이는 약 2만 바트(약 70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가 주운 용연향은 최고 등급 기준으로 1kg당 96만 바트(약 3천300만 원)에 달하는 가치로 평가받았다. 전체 무게로 계산하면 무려 33억 원이 넘는 큰 돈이었다. 하루아침에 평생 먹고살 걱정을 덜게 된 순간이었다.
이보다 앞선 2016년 11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오만 해안에서 배를 타던 어부 세 명이 바다 위에 떠 있는 80kg짜리 덩어리를 뜰채로 건져 올렸다. 이 덩어리 역시 약 300만 달러(약 34억 원)라는 금액에 거래되며 세상의 관심을 모았다.
인간의 탐욕과 바다의 잔물결
용연향의 높은 가격 때문에 과거에는 이를 얻으려고 향유고래를 무분별하게 포획하기도 했다. 배 속을 가르면 용연향을 직접 얻을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 속에서 바로 꺼낸 용연향은 바다에서 숙성되지 않아 향수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 결국 수많은 고래가 아무런 이유 없이 희생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오늘날 국제 협약에 따라 향유고래 포획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인공적으로 만든 합성 향료가 진짜 용연향의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파도를 타고 다듬어진 진짜 용연향이 내는 특유의 그윽한 향과 보존력은 현대 과학으로도 완전히 똑같이 따라 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깊은 바다를 헤엄치던 고래가 거친 덩어리를 뱉어내고 있을지 모른다. 그 덩어리는 수십 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거친 파도를 맞으며 은은한 향을 품어갈 것이다. 바다가 오랫동안 품어낸 시간에 비하면, 인생 역전을 꿈꾸며 해변을 서성이는 인간의 삶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짧은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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