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인형 탈 쓰고 도로에서 구걸하는 원숭이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 주의 한 도로를 지나다 보면 특이한 풍경이 목격된다. 금발 머리의 한 소녀가 길가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벌린다.
한 손에는 파란색 플라스틱 물통을 쥐고, 얼굴에는 커다란 안경을 썼다. 분홍색 운동복을 입은 채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얼핏 보면 어린아이 같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몸짓이 어딘가 어색하고 얼굴 모양도 다르다. 이 ‘가짜 소녀’의 정체는 옷을 입고 변장한 긴꼬리원숭이다.
원숭이의 목에는 얇고 긴 쇠사슬이 묶여 있다. 사슬의 반대쪽 끝은 몇 미터(m)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주인의 손에 쥐여 있다. 원숭이는 도망치지 못한 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차 안의 운전자와 눈을 맞춘다.
한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지폐를 내밀자, 원숭이는 재빨리 다가가 능숙하게 돈을 받아 물통에 넣는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음 차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 모습은 한 운전자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영상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명백한 동물 학대로 규정하며, 동물을 이용한 구걸 행위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통문화라는 이름의 그늘, ‘또펭 몬yet’
이 도로 위 구걸은 인도네시아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또펭 몬yet’이라는 거리 공연의 일종이다. 현지어로 ‘또펭'(Topeng)은 가면을, ‘몬yet'(Monyet)은 원숭이를 뜻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원숭이 탈놀이’라는 의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옛날부터 시골 장터나 도심 골목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경거리였다. 자전거를 타거나 가면을 쓰고 사람 흉내를 내는 원숭이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놀이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원숭이의 고통이 숨어 있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물건을 받으려면 혹톡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새끼 원숭이를 잡아 오면 먼저 두 발로 서는 연습부터 시킨다. 앞발을 뒤로 묶은 채 목을 벽에 매달아 놓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원숭이도 많다. 사람을 물지 못하도록 송곳니를 강제로 뽑아내기도 한다.
밥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말을 들을 때만 아주 작은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길들인다. 전통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훈련 과정은 동물의 본성을 철저히 누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지난 2013년에 이 공연을 법으로 완전히 금지했다. 당시 주지사였던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이 동물 보호와 도시 미관, 그리고 전염병 예방을 위해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결핵이나 광견병 같은 병을 사람에게 옮길 수 있어서 도심 길거리에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정부는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원숭이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이 원숭이들이 어디서 오는지 추적했다. 그 결과 자카르타 동부의 한 빈민가로 시선이 모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원숭이 마을’이라고 불렀다.
이 마을은 거리 공연용 원숭이를 전문적으로 키우고 훈련시켜 판매하는 중심지였다. 시골에서 잡아 온 새끼 긴꼬리원숭이가 이곳에서 가혹한 훈련을 거쳐 일종의 ‘상품’으로 재탄생했다.

당시 원숭이 한 마리는 인도네시아 돈으로 100만 루피아에서 150만 루피아 사이에 거래되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약 10만 원에서 15만 원 선이다.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 오고 간 셈이다.
법과 생계 사이, 끊이지 않는 숨바꼭질
당시 정부는 압수한 원숭이 한 마리당 일정한 보상금을 주인에게 지급했다. 원숭이를 잃은 이들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직업 훈련을 시켜주거나 전통시장 노점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오래가지 못했다.
거리 공연을 하던 이들은 대부분 다른 생계 수단이 없는 극빈층이었다. 글을 읽지 못하거나 기술이 없어 정부가 주선한 다른 직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이들은 단속이 느슨한 자카르타 외곽이나 서자바 주 같은 다른 지방 도시로 자리를 옮겼다.
단속반이 뜨면 원숭이를 숨겼다가 밤이나 새벽에 다시 길거리로 나오는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도심 골목길에서 차량이 밀리는 고속도로 진입로나 외곽 국도로 무대를 옮기기도 한다. 기사에 등장하는 분홍색 운동복을 입은 원숭이 역시 이러한 단속을 피해 지방 도로로 밀려난 이들이 벌인 생계 활동의 결과물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정부가 더 강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다행히 구조된 원숭이들은 보호소로 보내져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상처 입은 원숭이들이 다시 고향인 숲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어릴 때부터 사람 손에 자라며 이빨이 뽑힌 원숭이들은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 무리 생활을 하는 원숭이의 특성상, 사람 행동을 흉내 내도록 길들여진 원숭이는 다른 야생 원숭이 무리에서 공격을 받거나 쫓겨나기 일쑤다. 몸의 상처는 고칠 수 있어도, 사람에게 학대받으며 생긴 정신적인 상처와 잃어버린 야생성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오늘도 인도네시아의 어느 도로 위에는 노란 가발을 쓴 원숭이가 서 있다.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원숭이가 진짜 기다리는 것은 주인의 바구니에 담길 지폐 몇 장일지, 아니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푸른 숲의 나무 그늘일지, 원숭이의 깊은 눈망울은 조용히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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