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중부권 물류기지’ 입지 선정
정부는 지난 1995년부터 국책건설사업으로 전국 내륙화물기지 2단계 조성사업을 시작한다.
1단계 사업인 수도권(경기 군포, 의왕)과 부산권(경남 양산)은 이미 운영되고 있었고, 2단계로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족한 재정은 민간자금을 끌어들여 ‘민자유치’로 보완하기로 했다.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물류기지 건설을 추진한 것은 과도한 물류비를 줄이고 물류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입지는 최적의 장소에 최고의 효율을 가져올 수 있는 곳으로 정해야 한다.
그런데 ‘중부권 내륙화물기지’가 수상했다. 건설교통부는 1996년 12월 중부권 물류기지의 입지로 충북 청원에 약 20만평 규모의 복합화물터미널과 충남 연기에 약 18만평의 내륙화물기지(ICD)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런데 물류기지의 분리개발을 결정하면서 그 배경에 의혹이 커져만 갔다.
물류업계나 전문가들도 입지선정이 경제적 시각에 따른 물류 효율화 측면을 고려하기 보다는 단순한 정치논리에 의한 지역 안배, 즉 지역 간 나눠먹기로 결정됐다고 지적했다.
나는 이때부터 ‘중부권 물류기지’의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당시는 월간 물류정보에서 물류신문 창간 멤버로 합류했을 때였다.
물류신문은 창간 전 예비호 2번을 냈는데, 1997년 7월16일 창간예비 1호 톱 기사로 ‘중부권 내륙화물기지 입지선정 의혹’을 전면 제기했다.
당시 나는 국회 건설교통위원이던 한화갑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실과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한 의원은 국회 상임위에서 물류를 테마 이슈로 정해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1997년 6월 국정감사 때 한화갑 의원실에서 전화가 왔다. “대정부 질의를 준비 중인데 ‘물류분야’는 정 기자가 질의서를 만들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이런 사실을 물류기자협의회 소속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내용을 보내주면 그걸 취합한 후 질의서로 만들어 한화갑 의원실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중부권 내륙화물기지 분리 의혹’에 대한 질의에 중점했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직접 한화갑 의원실에 가서 보좌관 등에게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한 의원도 정책질의에서 이 문제를 집중 부각하면서 점점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같은 해 8월 초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물류기자단 공동인터뷰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질의했다.

‘중부권 물류기지가 물류효율성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역 안배차원에서 선정됐고,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가 빚어낸 결과’라고 했더니, DJ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해야 하고 정치적 영향력은 배제되어야 한다. 경제적 논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을 방해하는 수가 많다”고 답변했다.
이렇게 국회 상임위와 제1야당 총재이자 유력 대통령 후보를 통해 ‘중부권 물류기지 입지선정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했고, 건교부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선정 배경을 추적해 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인 1998년 5월 감사원은 건설교통부 등 8개 기관에 대해 물류관리실태 실지 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감사결과를 관계기관에 통보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국책건설사업이 얼마나 엉터리로 추진됐는가를 알 수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건교부는 충청북도와 충청남도가 내륙화물기지 건설을 두고 유치경쟁에 나서자 이를 무마시킬 목적으로 입지를 분리 선정했다고 지적하고, 이를 한 지역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동안 업계에 떠돌던 ‘지역 간 나눠먹기 입지선정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다.

또한 입지선정 부적절로 용지매입비, 철도인입선 투자비 및 부지조성비 등 총 852억7600만원 상당의 불필요한 개발비가 투자되고, 화물의 상호교환 능력저하와 이에 따른 물류비 증가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입지선정품의서를 부적정하게 작성한 비리 관련자에 대해서는 주의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인사자료로 활용토록 건교부에 통보했다.
건교부는 감사원에 통보한 ‘조사결과 통보’를 대외비로 취급함으로써 정책 오류 담당공무원에 대한 문책이 어느 정도 선에서 이뤄졌는지, 아니면 책임소재를 묻지 않고 넘어갔는지를 비밀에 부쳤다.
‘제 식구 감싸기’이며 부처 이기주의의 한 단면이었다. 잘못된 정책을 추진해 수백억원의 혈세를 낭비했는데, 이에 대한 조치가 어떻게 됐는지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도 공개돼야 했다. 이를 위해 국회를 통해 관련 자료를 모두 받아내기로 했다.
나는 한화갑 의원실의 신현구 보좌관으로부터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국회 건설교통위원이던 송현섭 의원실을 소개받았다. 김길섭 보좌관과 통화했더니 건교부에 요청할 자료목록을 보내달라고 해서 ‘중부권내륙화물기지에 대한 감사원 감사자료’와 ‘감사원에 통보한 건교부 조사결과 통보 자료’를 요청하도록 했다.
얼마 후 건교부에서 보내 온 자료를 받아보니 막대한 세금 낭비와 국책건설사업 추진의 차질을 빚은 공무원들에게 솜방망이 징계로 끝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류시설과장 윤00, 행정사무관 구00에 대해 엄중주의 촉구와 인사자료 활용하는 것으로 적당히 무마했다.
나는 송현섭 의원실에 입지선정 분리 배후를 조사하자고 제안했다. 송 의원실에서는 김길섭 보좌관 주도로 건교부 관계자들을 하나씩 불러 조사에 나섰다.
건교부 관계자를 불러 입지선정과정을 추궁한 끝에 “충남과 충북도 고위관계자 등에게서 당시 담당공무원들이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여러 번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정감사와 예결위 등에서 이 지역 국회의원들이 집중적으로 서로 자기지역 건설을 주장했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또한 충남북도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자기지역에 입지가 선정되도록 압력을 행사한 정황도 밝혀졌다. 나는 이런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송현섭 의원실은 외압의 실체를 끝까지 밝히는 데는 부담스러워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충청권의 자민련과 공동 정권을 표방했기 때문에, 충청권에 들어서는 중부권 물류기지를 들춰낼수록 자민련 의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됐던 물류기지의 분리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대통령 후보에게 이런 상황을 인식하게 했으며, 집권 후 감사원 감사를 통해 입지를 재선정하도록 한 것은 큰 성과였다.
여기에다 외압이 있었다는 것까지 밝혀낸 것은 필자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내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