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저수지 살인사건
전남 무안군 ‘운남면’은 무안군 남부에 위치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낮은 구릉지로 이뤄져 밭이 논보다 많으며, 바다에서 양식업이 발달돼 있다. 인구는 1천300여명(658가구)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2006년 7월23일 오후 10시30분쯤 운남면에 사는 이정수씨(남·57)가 실종됐다.
이씨는 이날 읍내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온 후 친한 친구‧후배와 함께 다방에 가서 차를 마셨다. 이씨는 오후 10시쯤이 되자 “민들레즙을 먹을 시간”이라며 귀가를 서둘렀고, 함께 있던 후배가 이씨 집까지 태워다 줬다. 집 안에는 이씨의 재혼한 아내가 있었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뒤 이씨의 종적이 묘연했다. 4개월 전 구입한 승용차(흰색 스포티지)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얼마 동안 이씨의 형제들은 그가 바람이라도 쐬러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다림은 불길함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실종 3일째인 26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씨의 형제들은 경찰과는 별도로 직접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막내 동생 정일씨는 3일 동안 무안과 함평 쪽을 샅샅이 뒤졌다. 형을 찾아다닌 지 얼마 후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흔적을 발견한다. 그곳은 실종된 이씨 집에서 28km쯤 떨어진 무안군 청계면 청수리 청수제 저수지였다. 정일씨의 눈에 지형이 특이하게 보였다. 산 아래 도로가 있고, 그 밑에 저수지가 있었다. 그는 뭔가 싸~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차를 세우고 좁은 뚝방길로 들어가 보니 풀이 저수지 쪽으로 눕혀 있었다.
차바퀴 한 쪽이 지나간 듯한 흔적이 저수지 안쪽으로 선명하게 나 있었다. 현장에는 누군가 엔진오일을 빼낸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변 어디에도 차량이 나온 흔적이 없었다. 정일씨는 “야, 이건 100% 차가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씨 형제들은 무안경찰서에 청계 저수지 수색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차량이 빠진 흔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수색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정일씨는 8월9일 오전 사비 200만원을 들여 사설 잠수부를 고용해 저수지 수색에 나섰다. 여기에는 잠수부 4명이 투입됐다.
장마가 끝난 직후라 저수지 안은 1m 앞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잠수부들은 더듬다시피 하면서 차량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물속에 들어간 지 채 10분도 안 돼 뭔가를 발견했다. 승용차였다. 잠수부들은 물 밖으로 차량을 찾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씨 형제들은 장비를 동원해 물속의 승용차를 밖으로 꺼냈다. 운전석에는 실종됐던 이정수씨의 시신이 있었다. 실종 17일 만이다. 시신은 별다른 외상이 없었으나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차체는 손상이 없었다.
그런데 시신의 형태가 기이했다. 두 다리를 운전대 위에 걸쳐 놓고 있었고,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다. 오른손은 기어위에 올려져 있었으며, 운전석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잠시 휴식을 취하려다 승용차가 물속에 들어가 사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량 기어에 단서가 있었다. 차량의 기어는 P(주차), R(후진), N(중립), D(주행)다. 이씨의 차량은 P나 N이 아닌 ‘D’에 놓여 있었다. 알다시피 D에 놓으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이상 차는 앞으로 나가게 돼 있다.
특히 저수지 뚝방길이라면 자칫 물속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실수로 기어를 주행모드에 놨다가 차량이 물속에 빠졌다고 치자. 그럼 차 안에 있던 이씨는 안전벨트를 풀고 물 밖으로 빠져 나왔어야 정상이다. 최소한 이런 시도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씨는 물속에 들어가서도 밖으로 나오려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경찰은 이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결과 석연찮은 죽음의 비밀이 드러났다. 이씨의 사인은 익사가 아니라 ‘약물중독’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수면유도제인 ‘독실아민’이 상용양의 최소 10배가 넘게 검출됐다. 독실아민은 일반약으로 처방전 없이도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씨의 몸에서는 그가 숨지기 직전 마셨던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물질 하나가 나왔다. 국과수에서 해당 물질을 분석해보니 ‘민들레즙’이었다. 이씨는 실종 1주일 전부터 “간에 좋다”며 아내가 꼬박꼬박 챙겨주는 민들레즙을 먹고 있었다.
실종 당일에도 이씨는 민들레즙을 먹을 시간이라며 다방에서도 일어났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후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씨의 아내가 민들레즙에 독약을 넣어 독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도 이씨의 아내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내 김씨는 경찰이 영장없이 몸을 수색했다고 강압수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도 했다. 결국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씨 형제들은 숨지기 2년 전에 있었던 오토바이 교통사고가 마음에 걸렸다.
2004년 5월16일 오후 9시30분쯤 이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낙지를 사러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1톤 트럭이 이씨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는데, 오토바이가 붕하며 날아가고 이씨 또한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됐다.
당시 사고를 낸 문 아무개씨(54)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차량에 도움을 요청해 이씨를 병원으로 후송했다. 상태는 심각했다. 의사는 “6시간 이상 방치됐으면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 아내는 가해자와의 합의 등은 모두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형제들이 “어떻게 합의했느냐”고 했더니 “집에 가보니 단칸방에 살고 있고, 10원짜리 하나 나올 게 없어서 그냥 합의해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형제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피해자인 남편은 중상을 입었는데, 가해자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씨가 숨지고 나서 형제들은 오토바이 사건에 대한 의문은 커졌다.
그래서 경찰에 사고 정황을 이야기 하고 수사를 요청했다.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보험범죄수사팀이 면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수상한 돈의 흐름을 포착했다. 교통사고가 나기 전 교통사고를 낸 뭉칫돈이 오간 것이 드러났다. 정아무개씨(57)가 문씨에게 수표로 2천만 원(100만원권 수표 20장)을 건넨 것과 식당을 근저당설정해 준 것이었다. 문씨에게 흘러들어간 이 돈의 출처가 궁금했다.
경찰은 문씨와 정씨를 불러 돈의 출처를 캐물었다.
이들은 서로 채권채무 관계였다고 진술했으나 그 경위나 자금의 출처가 전혀 맞지 않았다. 경찰은 문씨를 집중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당시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숨진 이씨를 죽이기 위한 치밀한 작전이었다. 문씨를 끌어들인 건 정씨였다. 두 사람은 화투판에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정씨는 자신도 의뢰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의뢰인’은 다름아닌 이정수씨 아내 김씨였다. 정씨에게 빚이 상당한 것을 알게 된 김씨가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사람 하나를 죽여주면 1억원을 줄 테니까 죽일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고 했다. 정씨에 따르면 실제 교통사고 작전을 짜고 지휘한 것은 김씨였다는 것이다.
정씨와 김씨의 관계도 특별했다.
숨진 이씨는 2002년 김씨와 재혼했다. 이씨가 식당 개업을 준비하면서 식당 운영 경험이 있는 김씨의 조언을 받았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했다. 김씨에게는 재혼하기 전 내연관계를 맺고 동거하며 함께 식당을 운영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게 바로 정씨였던 것이다.
김씨는 정씨와 통화하면서 “죽여야 할 사람은 남편”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 김씨는 이씨에게 “낙지를 사다 달라”며 남편을 밖으로 내보냈고, 그걸 신호로 해서 작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문씨는 작전대로 이씨의 오토바이를 뒤에서 들이받았으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 부상당한 이씨를 병원으로 옮겼다고 진술했다.
이 사고로 이씨는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고, 아내 김씨는 남편 앞으로 나온 보험금 1억2천만 원을 챙겼다.
경찰은 김씨가 개입된 또 하나의 단서를 포착했다. 숨진 이정수씨 앞으로 가입된 보험내역이 무더기로 드러난 것이다. 그녀는 이씨와 결혼한 지 5개월, 오토바이 교통사고 나기 6개월 전부터 모두 7건의 보험에 집중 가입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김씨는 그 후에도 이씨 앞으로 많은 보험에 가입했다. 2003년 5월까지 이씨 앞으로 가입된 보험은 총 16건. 이중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씨가 가입한 것이었고, 수혜자도 김씨였다.
더 수상한 것은 보험 상품이다.
상해‧사망시에만 적용되는 것이었고, 교통사고시에만 나오는 보험이었다. 보험금은 총 12억 원에 달했다. 이 중에는 교통사고 사망 시에 1억 원이 나오는 보험이 있었는데, 이씨가 오토바이 교통사고 당하기 두 달 전 가입했다가 사고 후 해지한 것도 있었다.

김씨는 남편 이씨 사망 후 보험사로부터 5천만 원을 받아냈다. 김씨는 보험설계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정씨가 입을 열면서 이씨가 저수지에 빠졌을 당시의 상황도 드러났다. 사건 당일 밤 정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씨였다. 그녀는 정씨에게 청계저수지로 와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했다. 정씨가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이씨가 조수석에 축 늘어져 있었다.
정씨에 따르면 “김씨가 ‘민들레즙에 수면제를 타서 먹였더니 골프장쯤 오다가 잠이 들었다. 차를 타고 오다보니 남편이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남편을 둔 채 김씨가 저수지까지 차를 몰고 왔다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김씨가 (이씨를 처리하는데) 도와달라고 했으나 자신은 무서워서 도와주지 못하고 차 뒤에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씨를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기고 차량을 저수지에 빠트린 모든 범행은 김씨가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정씨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당일 통화내역 등을 확인해보니 그의 말과 어느 정도 일치했다.
그러나 김씨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2004년 오토바이 사건과 2006년 저수지 사건 둘 다 관련 없다고 부인했다. 이 모든 것이 정씨의 모략이라며 자신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두 사람의 주장은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며 평행선을 팽팽하게 그었다.
경찰은 2012년 6월13일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내연남 정씨와 공모, 남편 이정수씨를 살해한 혐의로 김씨와 내연남 정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또 정씨의 사주를 받고 1톤 화물차로 치어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문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교통사고로 피해자를 살해하면 그 사례비로 5천만 원을 주겠다고 살인을 청부했다. 2004년 4월9일 목포 농협 용담지점에서 수표 2천만원을 인출, 착수금으로 지급했다.
같은 해 5월6일 무안군 소재 자신의 소유 식당 건물을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채권 최고액 5천만원의 근저당 설정을 해줘 범행 후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씨의 뒤에는 김씨가 있었다고 봤다.
또 김씨는 남편 이씨가 정신을 잃은 상태였을 때 억지로 차에 태우고 기어를 주행에다 맞춘 다음 운전석 창문을 열어놓아 저수지쪽으로 가게 했고, 그 열린 창문을 통해 저수지의 물이 고스란히 들어와서 차를 수장시킴과 동시에 이씨를 익사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정씨가 자신은 지켜만봤다고 했으나 이씨를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기고 차량을 물속에 밀어넣을 때 정씨도 가담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과 2심은 살인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미수만 유죄로 인정해 김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독극물 살해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공범인 정씨와 문씨도 각각 징역 5년과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2004년 한 차례 남편을 살해하려 했고, 이후에도 남편 앞으로 보험에 가입하거나 가입하려 한 사실 등은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김씨가 다량의 독극물을 샀다고 볼 증거가 없고, 김씨의 남편이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 해당 독극물 치사량을 먹었을 때 어느 정도 후에 사람이 사망할 수 있는지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씨가 남편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해 살해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으나 법원이 면죄부를 줌으로써 이 사건은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이정수씨는 5남매의 맏형이었다. 이씨의 어머니는 큰아들이 비명에 간 후 시름시름 앓다가 한을 품고 눈을 감았다.
가족은 애타는데 경찰은 무사태평
이정수씨 사건을 보면 경찰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그대로 드러난다. <무안신문> 보도를 보면 숨진 이씨의 형제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시신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막내 동생인 정일씨가 3일 동안 함평과 무안일대를 샅샅이 뒤져 이씨가 수장된 저수지를 찾아냈다. 누가 봐도 차량이 저수지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씨 형제들이 무안경찰서에 청계 저수지 수색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차량이 빠진 흔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일씨가 사비를 들여 사설 잠수부를 고용해 저수지를 수색했다.
정일씨는 물속에서 차량을 꺼내기 전 무안경찰서에 참관을 요청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현장에 나오지도 않았다. 경찰은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후에야 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경찰은 “통상적인 실종사건으로 판단, 수사를 벌이던 중이었다”며 “타이어 자국이 난 저수지에 대한 수색작업은 물이 워낙 탁한데다 뚜렷한 정황도 파악되지 않아 시일을 두고 진행하려 했을 뿐 고의로 수색을 회피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고의로 회피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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