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국책연구기관
중부권 내륙화물기지 용역을 맡은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교통개발연구원(현 한국교통연구원, KOTI)이다.
복합화물터미널과 내륙화물기지(ICD)를 분리 개발하는 용역을 수행한 것도 KOTI였다. 이 용역은 엉터리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건교부는 다시 KOTI에 2억8000만원의 세금을 주고 재 발주했다. 참 이해 안가는 행정이다.
자기들이 수행한 1차 용역이 엉터리인데 그걸 재 수주했다고해서 제대로 할 리가 만무하다. 건교부는 다른 연구용역기관에 발주했어야 했는데, 세금 축내는 일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건교부는 연구 용역결과를 토대로 1999년 3월11일 경기 일산 KOTI 대회의실에서 ‘중부권 내륙화물기지 전문가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또다시 최적의 입지를 ‘충남 연기군 동면 명학리’라고 발표했다. 1차 엉터리 용역 결과와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3월24일자 물류신문에 ‘입지평가 엉터리’라고 보도했다. 단순한 의혹제기가 아니라 아예 ‘엉터리’라고 못 박으며 KOTI의 연구용역을 무력화시켰다. KOTI의 입지 선정평가 결과는 이번에도 엉터리였다. 기본적으로 용역내용이 현지 입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연구용역으로서의 가치가 없었다. 국민 세금이 약 3억원이 들어갔는데도, 내용은 형편없었던 것이다.
‘엉터리 연구용역’이라는 기사에 KOTI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연구용역을 수행했던 KOTI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해명자료를 만들어 제시하겠다”고 하는 정도였으나, 나중에도 아무런 반박이나 해명 등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분명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KOTI 연구용역팀의 연구용역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현지 주민들은 KOTI에서 평가한 17개 항목별 내용 중 “실제지역과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의혹은 실타래처럼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보통 지역개발 연구용역을 수행하면 현지를 수시로 실사해서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고 있는 건 기본이다. 나는 KOTI가 현지실사를 얼마나 했는지에 집중했다. 현지답사를 했다면 주민들의 눈에 띠었을 것이다. 또 후보지였던 충북 청원군 갈산리를 실사하려면 충북도 관계자의 협조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충북도와 마을 주민들은 “KOTI 용역팀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용역하청을 맡은 업체의 과장이 현지답사를 몇 번에 걸쳐서 했고, 업체의 대리는 충북도에 팩스로 자료요청을 요구한 것이 전부다”라고 전했다.
충북도는 또 “KOTI 관계자들은 지난 2월초에 충북도에 연락해서 현지 답사할 예정이었으나,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랬다. KOTI는 연구용역을 발주받은 후 한 번도 현지 답사를 가지 않았다. 대신 하청업체를 시켜 몇 번 다녀오게 했을 뿐이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국책사업으로 무려 40만여 평을 개발하고, 약 6천억원에 가까운 세금이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인데도 정작 연구용역을 맡은 국책연구기관은 현지 실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3월31일자에 ‘중부권 내륙화물기지 현지답사 했을까?’ 라며 용역팀에 대한 의혹을 전면 제기했다. 용역부실의 문제가 자꾸만 커지고 내가 계속해서 용역팀의 문제를 파헤치고 이들의 행적을 역 추적해 나가자 KOTI는 3월31일 충북도에 현지답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나는 3월30일 마을 현지를 다녀왔는데, 충북도는 내가 다녀온 다음날인 31일에 물류기지 입지 현장에 갔다. 나는 마을 주민들과 충북도에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이들의 언행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몇 가지 중요사항을 알려주며 자세하게 물어보라고 했다.
KOTI 연구용역팀은 현지에서 모든 게 탄로났다. 이들은 현지 지리도 모른 채 허둥지둥했다. 지역경계와 지리도 못 찾고 충북도와 주민들이 반박했던 지형지장물 등 현지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았으며,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은 채 부랴부랴 현장을 떠났다.
팀장인 책임연구원은 주민들이 몇 번에 걸쳐 현장을 답사했냐는 질문에 “3월부터 용역팀을 맡아 처음으로 현지를 방문했다”고 밝혀 팀장조차도 평가결과를 발표한 후에 현지를 실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세대 도시공학과 93학번이라는 여자연구원은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에 현지를 잘 모르는 것 아니냐”며 당연하다는 듯 내게 따져 묻기도 했다. 지역 현지도 모르고 책상에 앉아서 연구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KOTI의 연구용역 결과가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연구 용역팀은 현지에 가지도 않고 책상에서 연구를 했고, 용역보고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건교부는 이런 연구결과를 믿고 공청회까지 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모두 폭로했다. 필자의 추적보도로 인해 건교부도 당황했다.
이번 용역과 관련한 건교부의 공식입장을 묻자 “지자체와의 충분한 협의와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입지선정이 돼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KOTI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일종의 ‘책임 떠넘기기’였는데, 서로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KOTI의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내가 KOTI 연구용역팀을 집중취재하고 보도한 것은 방향을 잘 잡은 것이었다. 이것은 마을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켜주는데 큰 전환점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