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대전 갈마동 빌라 살인사건


대전 서구에 위치한 갈마동은 풍수설에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현재의 지명도 이것에서 유래했다. 갈마동 일대는 원룸과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이다.

2005년 11월 2일 오후 1시30분쯤, A씨(남)는 한 다세대 주택 2층 원룸의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일하던 그는 며칠 전부터 아내 김아무개씨(26)가 연락이 안 돼 걱정이 태산이었다. A씨는 이날 대전으로 급히 올라갔다.

집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서 재차 문을 두드렸지만 똑 같았다. A씨는 의아했다. 분명 TV소리는 흘러나오고 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던 것이다.

A씨는 하는 수 없이 열쇠공을 불러 현관문을 열었다. 그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악취가 코를 찔렀다. A씨는 불을 켜고 방안을 둘러보다 기겁하고 말았다.

아내가 방바닥에 누운 채 숨져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시신의 부패가 심해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방안은 또 부침가루로 난장판이 돼 있었다. A씨는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해 현장 감식을 벌였다. 범인이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창문이나 현관문도 멀쩡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보일러가 켜진 상태였다.

당시 계절이 늦가을인데도 시신의 부패가 빨랐던 것도 보일러가 작동하면서 방안 온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TV도 켜진 상태였다. 범인이 범행과정에서 켜 놓은 것인지 아니면 범행 후 집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김씨의 시신은 외투를 입은 상태였다. 그녀가 밖에 외출했다가 미처 외투를 벗기 전에 살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신은 방바닥에 누워 있었으나 윗옷은 가슴까지 들춰져 있었다. 바지 또한 무릎까지 벗겨진 상태였다. 양 발목은 노란색 포장용 테이프로 결박돼 있었다.


집 안에는 살림살이가 널브러져 있는 등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침대 위에는 부엌칼, 지갑과 카드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김씨의 휴대전화도 배터리가 분리된 채 침대 위에 놓여있었다.

특이한 점은 방바닥에 부침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범인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면은 영화 <공공의적>에서 나왔었다.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패륜범이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밀가루를 뿌리는 장면이 있었다. 범인은 이 영화를 모방했던 것이다. 다만 밀가루 대용으로 부침가루를 이용했을 뿐이다.

범인은 또 침대에 있던 이불을 걷어서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이불에 남아 있을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범인의 ‘흔적 지우기’는 어설펐다.

김씨를 살해할 당시의 흔적은 지웠는지 모르나 그 후 은폐과정에서 증거를 남겼다. 부침가루 봉지에서 범인의 지문이 채취됐고, 족적도 나왔다. 침대를 덮고 있던 이불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으나 그 아래에 있던 매트리스에서는 혈흔이 발견됐다. 김씨 시신의 발등에서도 혈흔이 검출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김씨 사체의 부검을 의뢰했다. 사망원인은 목졸림에 의한 ‘경부압박질식사’였고, 내장도 파열된 상태였다. 김씨가 범인에게 폭행을 당한 후 목이 졸려 살해됐다는 정황이다.


범인의 목적은 무엇일까.

김씨 시신의 상의가 가슴까지 올라가고 하의가 무릎까지 벗겨진 것을 보면 성폭행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국과수 부검결과 김씨의 몸에서는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김씨 지갑에 있던 현금이 사라지고, 방안을 뒤진 것으로 볼 때 강도가 목적일 수도 있다. 물론 강도나 성폭행 둘 다 노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씨의 정확한 사망시각은 사건을 푸는 중요한 열쇠다. 김씨는 남편 A씨를 20세에 만나 결혼했고, 6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김씨의 결혼생활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김씨는 남편과 이혼했고, 아들은 시부모에게 보냈다. 혼자가 된 김씨는 당장 생활고가 찾아왔다. 하는 수 없이 유흥업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술에 취하면 아들 생각 때문에 자주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의 재결합이 절실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3개월 전부터 그토록 원했던 남편과 재결합에 성공했다. 남편은 지방에서 일했고, 김씨는 다니던 유흥업소에 계속 나가고 있었다.

김씨가 남편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10월28일 오후 8시쯤이다. 29일에는 업소에 나갔다가 술에 취해 계속 울음을 터트렸다. 오전 1시40분쯤 업주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김씨를 택시에 태워 보냈다.

오전 1시48분쯤, 집 앞에 도착한 김씨는 택시에서 내린 후 업주에게 전화했다. 그 후 김씨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 2시59분쯤, 김씨의 친구가 전화를 걸었으나 신호가 가는 동시에 바로 끊겼다. 그 후에는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이때 범인이 김씨의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분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 발생시각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는 또 있다. 김씨의 옆집에 사는 여성은 오전 2시쯤 ‘아저씨 왜 이래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며, 여성이 끌려가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얼마 후 다시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김씨는 택시에서 내린 후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김씨를 발견한 범인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 현관문을 열려는 찰나에 흉기로 위협해 안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다음 김씨를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성폭행을 시도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김씨가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 성폭행으로 위장하려고 상의와 하의를 일부 벗긴 것일 수도 있다.

옆집에서 비명을 들은 오후 2시를 살해시점으로 본다면 범인은 약 1시간 정도 집안에 머물렀다는 것이 된다. 이때 집안을 뒤지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침대 위 이불을 세탁기에 돌리고, 주방에서 부침가루가 든 봉지를 들고 나와 ‘흔적 지우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하면 김씨는 29일 오전 2시~3시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과수도 김씨의 사망시점을 시신발견 3~4일 전으로 추정했는데 거의 일치한다.

김씨의 남편 A씨도 아내와 마지막 통화이후 연락이 닿지 않자 노심초사했다.


그는 대전에 있는 친구에서 “아내가 며칠 째 연락이 안 된다”며 한 번 찾아가 줄 것을 부탁했다. A씨의 친구는 30일 오후 7시와 31일 오전 10시30분쯤 두 번에 걸쳐 원룸에 갔다.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대신 문 앞에는 전단지가 쌓여있었다. 그는 김씨가 “외출한 것 같다”고 A씨에게 전했다.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원한관계나 치정관계, 면식범 소행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놨다. 특히 유전자(DNA)와 족적을 확보하면서 용의자를 쉽게 특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용의자의 신발은 공장이나 공사현장 등에서 많이 신는 작업화일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

용의자에 대한 유력한 목격자도 있었다. 사건 당일 범행 현장 주변에서 수상한 남성을 태웠다는 택시기사의 제보였다. 그에 따르면 10월29일 오전 2시40분쯤 사건 현장 인근에서 20대 남성을 태웠다고 한다. 그는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면서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가 내릴 때는 1천 원짜리 지폐를 놓고 내렸는데 그곳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특히 이 남성이 의심스러운 것은 앉은 자리에 흰색 가루가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에 따르면 남성의 키는 175~180cm 정도였고, 운동을 많이 한 것처럼 날렵하게 생겼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경찰수사는 여기까지다.

동일한 유전자가 있는지 전과자 등을 상대로 대조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지금까지 미해결사건으로 남아 있다. 경찰은 범인이 유사사건을 저지를 경우 곧바로 DNA를 대조해 검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범인이 또 다른 범행에 나서도록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범인은 지금도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양의 탈을 쓴 채 지내고 있을 게 틀림없다. 또 다른 누군가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 전에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한 제보는 대전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042-587-7000)으로 하면 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사건현장 인근에 거주했을 가능성 높다.

갈마동의 경우 원룸이나 다가구 주택이 밀집해 있고, 혼자 거주하는 여성이 많아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됐다. 그만큼 방범이 취약하고 범죄에 노출돼 있었다. 범인은 이런 지역적 특성을 파악한 후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계획적으로 노렸을 것으로 보인다.

범행이 새벽시간대에 이뤄진 것을 보면 범인은 사건 현장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거주했을 수 있다. 택시를 타고 내린 것도 진짜 목적지가 아니라 수사에 혼선을 주기위한 눈속임의 일환일 수 있다. 실제 경찰은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의 하차지점 주변을 탐문했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영화를 모방해 방안에 부침가루를 뿌릴 정도라면 나름대로 범행 후 동선도 충분히 계산했다고 봐야 한다.

2.전과가 없는 초범이다.
경찰은 범인의 DNA와 족적 등 유력 증거를 확보한 상태다. 문제는 기존에 확보하고 있던 전과자 DNA와 일치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범인은 사건 이후에도 유사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거나 실형을 산 적이 없다. 그가 지금까지 검거되지 않은 이유다. 범인은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며 선량한 양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 수 있다.


3.완벽을 추구하지만 어설픈 성격이다.
범인은 나름 완전범죄를 노렸으나 실제로는 어설펐다. 이불을 세척하고 부침가루를 뿌려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으나 정작 곳곳에 흔적을 남겨놓았다. 택시기사가 제보한 남성이 범인이 맞다면 피 묻은 지폐를 요금으로 내고, 앉았던 자리에 부침가루를 남겨놓았다.
이것은 평소 범인의 성격을 반영할 수도 있다.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지만 정작 많은 허점이 노출되는 성격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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