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낚싯배로 태평양서 14개월 표류하다 구조된 남성


지도를 펼쳐도 점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는 광활한 태평양 한복판, 사방을 둘러봐도 오직 푸른 물과 하늘뿐인 그곳에 인간이 홀로 던져진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끝없는 고독과 타는 듯한 갈증, 그리고 매일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 인류가 가진 생존의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무려 14달 동안 바다 위에서 버텨낸 한 남자가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련을 맞이하고도 끝내 삶의 끈을 놓지 않은 이 위대한 인간승리의 기록은, 우리가 절망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다.

평범했던 출항, 그리고 시작된 악몽

2012년 11월 17일,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작은 고기잡이 마을 파레돈에서 배 한 척이 바다로 향했다. 배에 탄 사람은 엘살바도르 국적의 어부 호세 살바도르 알바렌가(37)와 신참 어부 에세키엘 코르도바(22)였다. 이들이 탄 배는 길이 7m짜리 작은 모터보트였다. 지붕도 없고, 파도를 막아줄 벽도 없는 플라스틱 배였다. 당초 계획은 하루 동안 상어와 참치를 잡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출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표류의 시작이 되었다.

알바렌가와 코르도바가 거센 폭풍과 파도를 만나 표류하는 모습(AI 생성 이미지).

출항 직후 바다의 날씨가 급변했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고, 거대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이 밀려왔다. 알바렌가는 육지와 무전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필사적으로 배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배의 엔진이 고장 났다. 무전기 배터리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배는 통제력을 잃었고, 강한 바람과 해류를 따라 육지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멕시코 연안에서 시작된 표류는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태평양 한복판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넓디넓은 태평양 위에서 두 사람에게 허락된 공간은 사방 몇 미터에 불과한 작은 보트가 전부였다. 가장 큰 문제는 물과 음식이었다. 쨍쨍거리는 햇볕 아래에서 마실 물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이었다. 알바렌가는 생존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비가 내리면 보트 바닥에 고인 빗물을 플라스틱 통에 모았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음식은 맨손으로 해결해야 했다. 알바렌가는 배 주변을 맴도는 바다거북을 잡아 올렸다. 거북의 고기를 날로 먹었고, 수분이 부족할 때는 거북의 피를 마셨다. 가끔 배 위로 날아와 앉는 바다새를 맨손으로 낚아채기도 했다. 새의 깃털을 뽑고 생고기를 씹어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배 밑 그늘로 모여들면 손을 물속에 집어넣어 잡았다.

그러나 동행했던 코르도바는 이 거친 생존 방식을 견디지 못했다. 도시에서 자란 젊은 청년에게 날생선과 새의 생고기, 거북의 피는 받아들이기 힘든 음식이었다. 코르도바는 새 고기를 먹고 심한 배탈을 앓은 뒤로 날것을 먹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점차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그는 정신적인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기력을 잃었다.

홀로 남은 알바렌가가 거북이를 잡아 먹는 모습(AI 생성 이미지).

결국 표류를 시작한 지 약 4달 만에 코르도바는 숨을 거두었다. 알바렌가는 동료의 시신을 바로 바다에 던지지 못했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며칠 동안 시신을 앉혀놓고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동료를 수장했다. 이제 넓은 바다에 남은 사람은 오직 알바렌가 한 명뿐이었다.

혼자가 된 알바렌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눈앞에서 구조의 기회를 놓치는 순간들이었다. 표류 기간 동안 알바렌가는 저 멀리 지나가는 대형 컨테이너선과 화물선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 숫자는 스무 척이 넘었다. 알바렌가는 옷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냈다.


어떤 배에서는 선원들이 배 위에 선 알바렌가를 발견하고 신기하다는 듯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대형 선박의 선원들은 그저 먼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어부라고 생각했거나, 조류에 떠밀려가는 조난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배들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희망이 찾아왔다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1만 2000km를 날아온 기적

시간이 흘러 2014년 1월30일, 멕시코 출발지에서 약 1만 2000km 떨어진 마셜제도의 최남단 에본 아톨 섬 해안가에 작은 배 한 척이 밀려왔다. 섬 주민들이 발견한 배 안에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란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옷은 다 찢어져 겨우 몸만 가린 상태였다. 그가 바로 알바렌가였다. 2012년 11월에 표류를 시작해 무려 438일 동안 바다 위를 떠돌다 마침내 땅을 밟은 순간이었다.

표류하던 알바렌가가 섬 주민들에게 발견되는 순간(AI 생성 이미지).

처음 그가 발견되었을 때 세상은 믿지 않았다. 14개월 동안 바다에 떠 있었다고 하기에는 몸이 너무 부어 있었고, 피부 상태도 생각보다 양호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기극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검증이 시작되면서 의혹은 사실로 바뀌었다. 미국 하와이 대학교 연구진은 당시 태평양의 해류 지도와 바람의 방향을 토대로 정밀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멕시코 연안에서 동력을 잃은 배가 자연 해류를 타면 정확히 14개월 뒤에 마셜제도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료진 역시 알바렌가의 몸에 나타난 부종이 고립 생활로 인한 심각한 영양실조와 비타민 결핍, 그리고 기생충 감염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의 생존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버텨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기적이었다.


고향 엘살바도르로 돌아온 알바렌가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공항에 내린 그가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얇은 옥수수빵인 토르티야였다. 고향 집 대문에는 그의 딸 파티마가 쓴 환영 문구가 걸렸고, 방앗간을 운영하는 그의 부모는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기적 같은 귀환 뒤에는 씁쓸한 현실도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배를 탔다가 사망한 코르도바의 유족들이 알바렌가를 상대로 100만 달러(약 10억 53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유족들은 알바렌가가 바다 위에서 생존하기 위해 코르도바의 시신을 훼손하거나 인육을 먹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알바렌가는 이발소에서 덥수룩한 머리를 잘랐다.

알바렌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받았다. 조사 결과 알바렌가의 진술은 모두 사실로 판명되었고, 식인 의혹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밝혀졌다. 그는 자신이 겪은 상상치 못할 경험을 널리 알리고자 저널리스트인 조나단 프랭클린과 함께 <438일>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 인세의 일부를 코르도바의 가족에게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알바렌가는 목숨을 건졌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삶이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밤마다 바다에 갇혀 떠돌아다니는 꿈을 꾸며 가위에 눌렸고, 작은 물소리에도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혼자 있는 공간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한동안은 물을 보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14살 때부터 바다로 나가 바다가 인생의 전부였던 어부는, 이제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떨게 되었다. 넓은 바다는 그에게 기적 같은 생존의 기록을 남겨주었지만, 동시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흉터도 함께 남겼다. 수평선 저 멀리 홀로 떠 있던 작은 배 위의 기억은, 여전히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파도치고 있다.


1813년 식량이 가득한 대형 화물선에서 484일 동안 버틴 일본인 오구리 주키치의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식량도 없는 작은 낚싯배에 홀로 남겨져 자력으로 생존한 사례 중에서는 알바렌가의 438일이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표류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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