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때 극적으로 살아난 ‘코미디언 이상해’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은 1989년 완공됐다. 당시 매출액 기준 업계 1위를 달린 초호화 백화점이었다.
처음에는 4층 규모의 상가용 건물로 허가를 받았다. 해당 지역은 주거용 토지로서 상업용 건물이 들어설 수 없었다.
시공사인 삼풍건설산업은 서초구청장에게 뇌물을 주고 인허가를 받아냈다. 삼풍은 건축을 하면서 백화점으로 용도를 변경했고, 1개의 층을 추가로 얹어 5층으로 건축을 진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위해 해당 기둥을 25% 절단, 이로 인해 기둥이 건물의 하중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만들었다.
이렇듯 정밀 구조진단 없이 엿장수 맘대로 건물 구조를 불법으로 변경하면서 화근이 됐다.
지상 5층, 지하 4층 규모인 삼풍백화점은 붕괴 며칠 전부터 금이 가고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면서 건물이 기우는 등 붕괴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영진은 영업을 강행했다.

붕괴 당일인 1995년 6월29일에는 5층부터 심각한 붕괴 조짐이 나타났다. 경영진은 대책회의를 하면서도 직원과 고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이때 1천여 명 이상의 고객들과 종업원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백화점 내에 있었다.
당일 오후 6시쯤 5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백화점 건물은 20여 초만에 붕괴됐다. 엘리베이터 타워를 제외한 삼풍백화점 A동 전체가 먼지와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사고로 502명이 죽었고, 6명이 실종됐으며, 부상당한 사람이 937명이나 됐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로 기록됐다. 재산 피해액은 약 2천700억원으로 추정됐다. 사고의 책임을 물어 삼풍그룹 회장 이준 등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됐다.
삼풍백화점 붕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고객들 중에는 붕괴 직전에 백화점에 입장해 죽음을 맞이했는가 하면 또 어떤 고객은 붕괴 직전에 빠져나와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이중 코미디언 이상해는 후자에 속한다. 그는 어떻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까.
붕괴 당일 낮 12시30분쯤, 삼풍백화점 경영진은 5층 균열 현상을 둘러보면서 뒤틀림과 침하된 곳이 곳곳에서 발견되자 균열의 원인으로 지목된 옥상의 냉각탑 작동을 중단했다.
동시에 백화점 내의 에어컨 작동도 멈췄다. 이로인해 백화점 안은 찜통으로 변했다. 이날 서울 최고 낮 기온은 29도였고, 안개까지 껴서 체감온도와 불쾌지수가 꽤 높았다.
이때 백화점 안에는 유명 코미디언인 이상해가 있었다.
그는 당일 후배와 옷을 사러 삼풍백화점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실내가 푹푹 찌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나갈 상황도 아니었다. 옷을 산 후배가 수선을 맡긴 후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했다. 새로 산 옷을 빨리 줄여서 입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해는 달랐다.
평소 급한 성격이었던 그는 숨이 턱턱 막혀오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자 후배에게 “나중에 와서 찾아. 너무 더운데 여기서 어떻게 기다려”하며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결국 이상해의 성화에 못이겨 후배도 마지 못해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백화점 건물이 거짓말처럼 무너졌고, 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상해는 “들어가자마자 유독 더웠다. 이유를 물어보니 에어컨이 고장났다고 했다”며 “옷을 산 후배는 수선을 맡기고 기다리려고 했으나 내가 ‘빨리 나가자’고 재촉해 나왔다. 우리가 나온 후 10분도 채 안돼서 백화점이 붕괴됐다”고 말했다.

이상해는 급한 성격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김영임씨는 평소 남편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날은 처음으로 그 성격에 감사했다고 한다. 당시 함께 있던 후배에게는 이상해가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이후 그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수십 년째 음식을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이상해는 2020년 1월 KBS1 <아침마당>에 초대손님으로 출연해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전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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