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미제사건

속초 콘도살인 암매장 사건


진짜 기막힌 우연이다.

2001년 11월3일 강원 고성경찰서에 강도 상해혐의로 붙잡힌 20대 남성 2명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황아무개씨(20)와 이아무개씨(23)였다. 두 사람은 속초 인근에 살고 있었다. 황씨는 속초, 이씨는 인근 고성 출신이었다.

이씨와 황씨는 특수절도 전과 5~6범의 전과자였다. 경찰은 황씨와 이씨를 각각 다른 방에서 취조를 시작했다. 그런데 황씨를 취조하던 형사가 당황했다. 범행을 부인할 줄 알았던 황씨가 너무도 순순히 자백했기 때문이다.

형사는 오히려 이게 더 이상했다. ‘어, 얘가 왜 이렇게 순순히 자백하는 것이지?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떠나질 않았다. 담당 형사는 이제 ‘강도 상해’ 혐의가 아니라 황씨의 자백 뒤에 숨은 것이 궁금해졌다. 취조는 더욱 강도를 높였다.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던 형사는 황씨의 표정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뭔가 허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황씨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너 사람 죽였다면서?”라며 허를 찔렀다.

황씨는 이전과는 달리 확연하게 감정의 동요를 보이기 시작했다. 형사는 직감으로 ‘분명 뭔가 있구나’라고 믿게 됐다. 더욱 강도를 높여 “이씨가 다 털어놨다”며 황씨를 압박했다. 황씨는 얼덜결에 “내가 아니라 이씨가 죽였다”고 말했다.


시신과 피해자가 없는 ‘살인사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더불어 ‘속초 콘도 암매장 살인사건’의 서막이 올랐다. 경찰은 ‘살인사건’이 있었다고 보고 이씨와 황씨를 회유하고 설득하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두 사람을 분리시킨 가운데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다 뒤집어쓴다”면서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했다. 경찰의 이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

결국 황씨는 “속초에 있는 H콘도에서 강도 살인을 하고 그 시신을 바닷가 묘지 옆에 암매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씨가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이씨에게도 황씨에게 한 것 같이 “황씨가 다 불었다. 네가 협조하지 않으면 다 뒤집어 쓴다”며 자백을 강요했다.

이씨는 황씨의 진술서에 더해 살을 붙였고, 형사는 앞 뒤 상황이 맞게 내용을 꾸몄다. 두 사람의 진술 내용을 보면 한 사람의 역할이 더 필요했다.

형사는 이씨에게 “야, 누구 없냐”라는 식으로 얘기했고, 이씨는 동네에 살면서 가끔 어울리던 방아무개씨(26)를 공범으로 지목했다. 방씨는 IQ44의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경찰은 방씨를 살인 공범으로 긴급체포해 세 사람의 신병을 확보했다.

시신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상태에서 진술서가 만들어지고 범인들이 잡힌 상황이 된 것이다.


경찰이 밝힌 이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2001년 7월, 세 사람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도행각을 벌이기로 공모한다. 이들은 속초에 있는 H콘도를 범행 장소로 지목했다. 세 사람은 어느 날 새벽 2시쯤 H콘도 별관에 가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그러다 40대 남성 한 명을 노리고 그의 뒤를 따라가서 직원 행세를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강도로 돌변한 이들은 흉기로 방안에 있던 남녀를 위협해 13만원을 빼앗았다.

그런 다음 남자는 5층 옥상으로 끌고가 쇠파이프로 구타한 후 흉기로 찔러 옥상에서 떨어뜨려 살해했다. 여자는 소화기로 내리쳐 실신시켰다. 1층으로 내려간 이들은 시신을 승용차에 싣고 인근 묘지 옆 공터에 암매장했다. 실신해 있던 여성은 차에 싣고 한 병원 앞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이제 이들이 암매장했던 곳에서 시신을 찾고 신원만 확인하면 미제사건 하나 해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같은 해 10월, 중장비를 동원해 이들이 말한 공원묘지로 갔다. 세 사람이 말한 지점을 포크레인으로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조금씩 발굴 장소를 확대해 나갔고, 얼마 후 마대자루에 담긴 키 175cm쯤 되는 성인 남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미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백골화 된 상태였다.


복장은 휠라 상의(등산복) 차림이었다. 마대에 외출복을 입은 채로 매장된 것을 보면 살해당한 것이 분명했다. 실제 시신이 나오면서 ‘3인조’의 범행은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신의 신원 확인 절차만 남았다.

경찰은 콘도를 탐문해 사건발생 날짜에 투숙객이 실종된 사실이 있는지를 물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남녀 투숙객은 체크인을 한 상태였고, 도중에 범죄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체크아웃을 하지 않았다.

콘도 입장에서 보면 객실료를 지불하지 않고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콘도측은 이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매장된 시신의 신원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과 검찰은 이씨, 황씨, 방씨 세 사람을 ‘강도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시신과 범인은 있으나 신원을 밝히지 못한 남성의 살인사건이었다.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세 사람은 모두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자백은 자의가 아니라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이씨에게 무기징역, 황씨와 방씨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7년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억울하다며 항소했다. 그런데 2심 재판의 양상은 달랐다. 경찰이 앞 뒤 정황을 짜맞추고 시신이 나오기는 했으나 진술서와 실제 상황에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많아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경 조서와 공판과정에서의 진술이 엇갈리고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가 증언과 증거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범행은 7월로 기재됐으나 발굴된 사체는 겨울옷이 입혀진 채 발견 됐고, 매장기간도 4개월이란 경찰주장

또 세 사람이 범행일자로 진술한 날 투숙기록도 없었고, 유류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남성과 함께 있다가 폭행 당해 실신했던 여성 신원도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여성의 존재가 불분명했던 것이다. 약 17m의 옥상에서 떨어졌다면 뼈에 골절이 있어야 하는데, 남성의 사체는 골절 하나 없이 멀쩡했다.

더욱이 의아한 것은 검찰이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보관할 곳이 없다’며 증거물을 불태운 것이다. 시체가 입고 있던 옷과 시체를 담은 마대자루를 모두 불에 태워 증거물이 사라졌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을 원점에 놓고 다시 심리를 시작했다.

2003년 1월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 5부(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자백은 상식에 어긋난 부분들이 많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이들이 강도살인을 행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별건으로 기소된 강도혐의만 적용해 황씨와 방씨에게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경찰의 짜맞추기 수사와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강도 살인범으로 몰렸던 20대 청년 3명은 가까스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기막히게 발견된 시신. 그 시신은 누구이며 왜 살해된 채 공동묘지 공터에 매장돼 있었냐는 것이다.


검찰은 이 시신을 화장 처리함으로써 신원을 밝히지도, 유족을 찾지도, 또 억울함을 풀지도 못하게 됐다. 영원한 미제 사건이 된 것이다. 그는 누구였을까. 혹시 ‘기막힌 우연’은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달라는 남성이 보낸 무언의 신호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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