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고양 ‘아버지 살해’ 장롱 유기사건


2010년 9월26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112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지난해 추석 때부터 이아무개씨(63)가 보이지 않고 있고,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는 이씨의 친척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이씨 집으로 출동했다. 집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봤더니 작은 방이었다. 경찰이 방안에 있던 장롱을 열자 대형 비닐에 싸인 정체불명의 물체가 나왔다.

비닐을 한 겹씩 벗기다보니 점점 물체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이 집안의 가장이었던 이씨의 시신이었다. 김장용 비닐봉투에 무려 53겹이나 덧씌워진 상태에서 테이프로 밀봉돼 있었다.

경찰은 숨진 이씨와 한 집에 살던 아들 A씨(30)를 검거해 조사를 벌였다. 그는 경찰의 추궁에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A씨에 따르면 2009년 2월 아버지가 술주정을 하자 수차례 주먹과 발로 때리고 목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는 시신을 집안에 유기하고 김장용 비닐로 감싼 뒤 테이프로 밀봉해 19개월 동안 작은 방 장롱에 감췄다고 자백했다. 함께 살던 누나(32)에게는 “아버지가 숨져 화장했다”고 말해 의심을 피해왔다. 누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었다.


이씨의 가족이 살던 집은 약 8㎡(2.5평)로 작은 방 두 칸에 화장실도 없는 허름한 곳이었다. 살림살이를 놓고 나면 바로 누워 자는 것도 좁을 정도였다. 창문이 없어 대낮에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아 어둠 컴컴했다. 전등을 켜지 않으면 암흑지대나 다름없었다.

A씨가 시신을 처음부터 비닐로 겹겹이 감싼 것은 아니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악취가 나면 그때마다 비닐 한 겹씩 덧씌우다보니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냄새는 테이프로 밀봉해서 막았다.

그런 탓인지 발견 당시 시신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다. 인근 주민들도 이곳에 시신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고양이들이 무리지어 이씨 집 문 앞에서 어슬렁거린 것 외에는 이상한 점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이씨 집 주변에는 논밭이 있고, 인근에 공사장도 있어 하루에도 공사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녀 시끄러웠다.

만약 A씨가 아버지의 시신을 외부에 유기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암매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집안 장롱 유기를 선택했다. 아버지 이씨가 키 160cm 정도로 왜소한 체격이었기 때문에 장롱에 유기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일까.

여기에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불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이씨는 아내와 잦은 갈등을 빚으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급기야 참다못한 아내가 가출하면서 자녀들은 더욱 고립됐다. A씨는 중학교 때에는 공부도 잘 하고 착한 아들이었다고 한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 어머니의 가출은 큰 상처로 남았다.


A씨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하루 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방안에서 무협지나 만화책만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인기피증 때문인지 사람들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늘상 못 마땅했다.

A씨 또한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 아버지 이씨는 아내가 가출한 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술에 의지해서 살았다. 경제적인 무능력에 매일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 여기에다 잔소리가 심해지자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를 원망하고 불신하는 부자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사이가 좋았을 리 만무하다.

두 사람의 불신과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급기야 A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2005년 쯤 부터는 아버지가 술주정을 할 때마다 폭력을 행사했다. 이씨의 얼굴에 시뻘건 멍이든 모습이 사람들 눈에 목격되기도 했다. A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도 술주정하는 아버지를 폭행하면서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죽이기 위해 때린 것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죽을 거란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폭행을 당해 오다 보니 감정이 쌓여 지속적인 폭행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살해해 시신을 장롱에 유기한 후에는 누나와 방을 함께 사용했다. 잔인한 일본 만화와 추리소설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바깥출입도 거의 안 했다. 가끔 주식인 라면과 콜라 등을 사러 인근 편의점에 잠깐 들렀을 뿐이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집 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언론사 취재진에 의해 있이 집 내부가 공개됐다.

부엌으로 쓰이는 방 앞 작은 공간에는 빈 음료수병과 컵라면 용기 수십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한쪽에 놓인 가스레인지와 식기구들은 녹이 슨 채로 몇 년은 지난 듯이 보였다. 마땅한 수입이 없던 이들이 라면과 음료수 등으로 끼니를 해결해 왔던 것이다.

유일한 수입원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누나가 장애인재활작업장에서 매달 벌어오는 약 80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이 돈으로 월세(10만원)를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 등으로 충당했다. A씨를 조사한 경찰은 그가 아버지를 죽인 패륜범인데도 너무도 태연했다고 전했다.

죽은 아버지의 행방을 속이고, 시신을 비닐로 꽁꽁 동여매 냄새까지 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의심은 피할 수가 없었다. A씨의 엽기적인 범죄행각은 친척들에게 꼬리가 잡혔다.

2009년 추석 때부터 아버지 이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친척이 집에 찾아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면서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A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사실을 알고 서울로 달아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당일 검거됐다.

경찰은 A씨를 ‘존속살해 혐의’ 검거해 구속했으나, 검찰은 사망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살인 혐의대신 ‘존속유기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지만 시신의 상태로는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년 전부터 술주정하는 아버지를 수차례 폭행하고 아버지 건강이 악화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는데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평소 행태로 봤을 때 상습적인 폭행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시신을 비닐로 감싼 뒤 19개월이나 장롱에 숨긴 행위는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극도의 패륜적인 범죄로 중형이 마땅하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