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살해하고 처형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알 쑤마마 지역. 이곳은 겨울철이면 선선한 사막의 밤공기를 즐기려는 리야드의 젊은이들과 상류층이 모여드는 유명한 캠핑 지대다. 황금빛 모래 언덕 사이로 최고급 SUV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고,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모닥불 연기가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밤, 캠핑장의 한 대형 텐트 안에는 사우디 왕실의 일원인 투르키 빈 사우드 알 카비르 왕자(20대)와 그의 측근들, 그리고 오랜 친구인 아델 알 무하이미드(20대)가 모여 있었다.
사막의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이들의 모임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현장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술기운과 혈기 왕성한 청년들의 자존심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작은 시비는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이 되었다.
밤 11시를 넘긴 시각, 정적을 깨는 세 발의 날카로운 총성이 알 쑤마마의 대지를 흔들었다. 비명과 함께 한 남자가 쓰러졌고,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한 왕자의 운명과 사우디 사법 역사의 한 페이지가 동시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우발적 충돌인가, 예견된 비극인가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캠핑장에 모인 일행들 사이에서 발생한 집단적인 언쟁은 곧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졌다. 현장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카비르 왕자는 상대측 일행과의 마찰 과정에서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차량으로 달려가 보관 중이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친구 아델은 왕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왕자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를 당긴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발사된 총탄 중 하나는 허공을 가르고 다른 이에게 부상을 입혔지만, 치명적인 한 발은 왕자를 만류하려던 아델의 가슴을 관통했다.

아델은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응급 처치를 시도할 틈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
왕실의 일원으로서 법을 수호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가장 가까운 벗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투르키 왕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사우디 역사상 가장 파급력이 큰 ‘왕실 살인 사건’의 수사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법정에서의 공방과 흔들리지 않는 ‘키사스’ 원칙
카비르 왕자는 살인 혐의로 리야드 일반 법원으로 회부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투르키 왕자 측 변호인은 범행 당시 왕자가 만취 상태였으며, 고의적인 살인이 아닌 우발적인 사고였음을 강조했다. 또한 왕실의 일원으로서 국가에 기여한 점 등을 들어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사우디 검찰의 입장은 단호했다. 검찰은 총기를 차량에서 직접 꺼내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발사한 행위 자체가 이미 살인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수차례의 심리 끝에 투르키 왕자에게 ‘키사스'(Qisas) 판결을 내렸다. 키사스란 이슬람 샤리아 법의 핵심 원칙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에 근거하여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입은 것과 동일한 처벌을 내리는 제도다.
판결이 내려진 후, 사우디 왕실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피해자 아델의 유가족에게 ‘디야(Diya, 혈액전수금)’를 제안했다. 통상적으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지불하고 유가족이 용서의 뜻을 밝히면 사형을 면할 수 있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사법체계에서 국왕은 판결을 ‘승인’하는 역할이지 ‘감형’할 권한이 제한적(피해자 유족의 용서가 있어야만 가능)이다.
이에 따라 왕실 가문은 유가족을 설득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델의 아버지는 단호했다. 그는 “돈으로 아들의 목숨을 대신할 수 없으며, 정의가 실현되는 것만이 유일한 보상”이라며 합의를 거부했다.
사건발생 4년 만에 사형 집행
대법원의 확정 판결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사우디 내부에서는 “과연 진짜로 왕자를 처형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왕족은 성역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18일 오전, 리야드 시내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내무부의 공식 성명이 발표되기 직전까지 보안 요원들이 철저히 배치되었고, 처형장 주변은 삼엄한 경비가 이어졌다. 투르키 왕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범행을 후회하며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무렵, 사우디 내무부는 짧고 강렬한 성명을 발표했다. “투르키 빈 사우드 알 카비르 왕자에 대한 사형 선고가 리야드에서 집행되었다.” 이 발표는 사우디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에 긴급 타전되었다.
왕실의 직계 계보에 속하는 인물이 살인죄로 처형된 것은 1975년 파이살 국왕 암살범 이후 41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범인인 빈 무사이드 왕자는 국왕의 조카였다.
카비르 왕자의 사형 방식은 율법에 따라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로써 카비르 왕자는 2016년 한 해 동안 사우디에서 처형된 사형수 중 134번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죄수가 됐다.

성역 없는 정의인가, 체제 유지 위한 결단인가
사건이 종료된 후, 사우디 시민사회는 복합적인 반응을 보였다. 많은 이들이 “법 앞에는 왕족도 예외가 없음을 보여준 진정한 정의의 실현”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SNS에서는 ‘단호한 국왕의 결정’을 지지하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 처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분석한다. 당시 사우디는 저유가로 인한 경제 위기와 왕실 특권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국왕과 왕세자는 왕족조차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민심을 다독이고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카비르 왕자 사건은 전제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법치’라는 가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로 남았다. 비록 한 청년의 목숨과 또 다른 청년의 처형이라는 비극으로 끝났으나, 이 사건은 지금도 사우디 사법부와 왕실이 정의를 논할 때 반드시 인용되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사막의 밤, 무심코 당긴 방아쇠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대가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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