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초등학생 방화 살인사건
울산광역시 남구 달동 D주공아파트 13층에는 박아무개군(8)이 살았다.
2006년 9월6일 오후 3시40분쯤, 이곳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불은 삽시간에 이웃으로 퍼져나갔다.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성난 불꽃이 위층까지 올라갔다. 놀란 주민들은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소방관들이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화재가 난 아파트 안으로 물을 뿜어대며 안으로 서서히 진입했다. 그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연기 사이로 누군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집의 아들인 박군이었다. 소방관은 급히 박군을 업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박군의 모습이 석연치 않았다.
머리에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고, 손과 발이 청테이프로 결박되고, 입도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박군의 입에 붙여진 청테이프를 떼어냈으나 심장이 뛰지 않았다.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소방관은 112에 전화를 걸어 “아파트 화재 진압 현장에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초등학생을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울산 남부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화재 현장으로 출동했다.
박군이 숨진 채 발견된 곳은 큰방이었고, 그 옆에는 검게 그을린 야구방망이와 부엌칼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박군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박군의 기도에는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박군의 집에 침입한 범인이 야구방망이로 오른쪽 뒷머리를 내리친 다음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손과 발을 결박하고 입을 테이프로 막은 것으로 봤다.
그런 다음 불을 지르고 도망갔고, 박군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범인은 큰방과 작은방에 불을 지른 뒤 진열장 위에 놓여 있던 열쇠로 현관문까지 잠근 뒤 사라졌다.
불은 아파트 17평 내부를 모두 태우고 20여 분만에 진화됐다. 소방 당국과 경찰 과학수사반이 정밀 감식에 들어갔다. 화재 현장은 참혹했다. 이전의 집안의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찰관들이 현장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질렀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뿌린 물에 집기가 튕겨나가며 집은 아수라장이었다.

화재가 일어난 아파트는 1993년에 준공된 복도식 구조였다.
입구는 물론 단지 내부에도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보안 장치도 없었다. 가을이라고 해도 여전히 무더웠던 탓에 아파트 유리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범이 취약한 구조였다.
도대체 누가 8살 초등학생을 야구방망이로 내려치고 불까지 지르고 달아난 것일까. 울산 남부경찰서는 형사 50여명으로 수사본부를 꾸리고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화재가 난 아파트 방안에서는 옷장과 화장대 서랍을 뒤진 흔적이 발견됐다. 귀금속 5점도 사라졌다.
그러나 단순 강도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귀금속과 같이 있던 현금과 박군의 목에 걸려 있던 금목걸이가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이 강도로 위장하고자 방안을 뒤진 것처럼 하고 귀금속을 가져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경찰은 원한관계 등에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문수사를 벌였다. 일단 박군의 학교생활과 교우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불만이나 원한을 살 만한 것이 있는지 알아봤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박군의 성격은 내성적이었으나 교우관계는 원만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원한관계를 맺은 것이 있는지도 살폈지만 그렇게 볼만한 것이 없었다. 범인의 범행 목적이 명확하지 않았다.
사건해결의 중요한 단서인 증거물 확보도 여의치가 않았다. 방화로 인해 증거물이 타거나 사라진 상태였다. 야구 방망이, 부엌칼, 청테이프 등 어디에도 범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범인의 족적, 지문 등도 소방장비의 물살에 쓸려 사라졌다. 더더욱 목격자도 없었다. 경찰이 인근 전과자와 중‧고등학생까지 1천명 넘게 조사를 벌였지만, 용의자로 특정할 인물이 없었다.
이렇게 수사는 처음부터 제자리를 겉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떻게 박군 집에 들어왔던 것일까. 경찰은 처음부터 이 사건을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건 당일 차량 탁송기사로 일하는 박군의 아버지는 새벽 5시에 경기도 화성으로 일하러 나갔다.
박군의 어머니 윤아무개씨(32)는 낮 12시쯤 노동부 인력개발센터에 교육받으러 외출했다.
오후 12시38분쯤 윤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00야, 집에 도착했나? 엄마 교육가니깐 문 잘 잠그구 쌤 오실 때까지 숙제 단디하고 있으래이”라고 말했다. 조금 전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한 박군은 엄마의 전화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엄마의 당부와는 달리 박군은 현관문을 닫지 않았다. 박군과 함께 놀던 학교 친구는 40분쯤 뒤 집을 나섰다. 이때까지도 현관문은 열어놓은 채 있었다. 박군 친구는 “내가 나올 때 00(박군)이는 TV를 보고 있었고 현관문은 열린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아파트 주민들도 비슷한 진술을 했다. 박군의 집과 대각선 옆 동에 살고 있던 한 주민은 “오후 1시45분쯤 00(박군)이네 집을 봤을 때 문이 열려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 50분 뒤 다시 봤을 때는 문이 닫혀 있었다고 했다. 오후 2시35분쯤에는 방문학습지 교사 A씨가 박군 집을 찾았다.
이때는 현관문이 잠긴 상태였고, A교사는 잠긴 문을 두드리고 박군을 불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A교사는 할 수 없이 포스트잇에 자신이 왔다는 걸 남겨놓고 다른 집으로 향했다.
이날 박군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알리바이는 확인돼 혐의점이 없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범행 시간대는 이웃주민이 문이 열려있었다고 한 오후 1시45분에서 불이 난 오후 3시40분 사이로 볼 수 있다.
좀 더 시간을 좁혀보면 문이 닫혀있었던 오후 2시30분에서 불이 난 시각까지다. 이를 감안하면 범인은 약 1시간 동안 집안에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 사건은 범행 동기, 증거, 목격자 등이 없어 수사에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유일한 단서는 범인이 가져간 박군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새겨진 목걸이용 메달, 전화번호가 새겨진 아기 팔찌 등 귀금속 5점(당시 시가 100만원)이 전부였다.
경찰은 장물 전단을 만들어 부산, 울산 등 인근 금은방에 뿌렸다. 여기에 실 날 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의심가는 제보는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미제로 남고 말았다.

아들을 처참하게 잃고 범인까지 잡지 못하자 박군의 부모는 가슴에 대 못이 박혔다.
이들은 현재 울산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다.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아파트를 떠났다. 도대체 초등학생을 죽이고 불까지 낸 잔혹한 범인은 누구일까? 제보는 울산지방경찰청 미제전담수사팀(052-210-2772)으로 하면 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박군 집을 계획적으로 노렸다
D아파트는 방범이 아주 취약했고, 그 흔한 CCTV 하나 달아놓지 않았다. 범인도 이런 것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초가을이었지만 무더운 날씨가 계속됐다.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현관문을 열어놓은 집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 강도가 목적이면 범행 후 도주가 쉬운 저층을 노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범인은 고층(13층)에 있는 박군 집을 침입했다. 이것은 부모가 집을 비운 사실을 파악하고 계획적으로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2.면식범이거나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범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초등학생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두개골을 함몰시키고, 손과 발 그리고 입을 청테이프로 꽁꽁 결박했다. 이것도 불안했던지 집안에 불을 질러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없앴다. 범인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그가 면식범이거나 최소한 박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박군을 결박한 채로 목적을 달성한 후 조용히 현관문을 잠그고 갔다면 됐을 것이다. 박군을 살해하고 집안에 불을 질렀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의 표출이다.
3.동종 전과자일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범행동기가 불분명하다. 기자가 보기에는 원한보다는 강도에 가깝다. 특히 범행의 잔혹성으로 볼 때 초범보다는 우범자, 즉 전과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의 유력한 증거는 범인이 가져간 귀금속 5점이다. 사건 이후 경찰은 울산과 부산 금은방에 장물 전단을 만들어 뿌렸지만 유력한 제보는 없었다. 범인이 강도가 목적이라면 귀금속을 어떻게든지 처분했을 것이다. 다만, 팔아치운 곳은 다른 지역일 것이며, 시기 또한 범행 직후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범인과 결탁한 금은방 장물아치들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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