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죽이고 5명 실명시킨 ‘엄인숙 보험 연쇄 살인사건’
2005년 4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방화 미수 혐의’로 미모의 20대 여성을 체포한다.
그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의 여죄를 수사하던 경찰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그의 주변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이 무려 8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이 여성의 주변을 집중 탐문하고 병원진료기록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밝혀낸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과 가족 등을 차례로 살해한 ‘희대의 연쇄 보험 살인극’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당시에는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해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범인은 당시 29세의 엄인숙이었다.
엄씨는 서울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다 이아무개씨(26)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양가 부모의 반대로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대신 혼인신고를 해서 법적 부부가 됐다. 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다.
엄씨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 이씨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허영심이 많고 사치가 심한 엄인숙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돈’ 문제로 자주 다툼이 있었다.
2000년 2월, 엄씨의 세 살 된 딸이 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엄씨의 잔혹한 범행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그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보험설계사 경력을 범죄에 십분 활용한다.
첫 번째 희생양은 남편이었다. 엄씨는 2000년 3월 한 달 동안 4개의 보험에 잇따라 가입했다. 상해부터 사망까지 맞춤형으로 들었다. 우울증 치료를 이유로 정신과에서 수면제도 처방받았다.
2001년 5월,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엄씨는 남편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뒤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되자 뒤로 밀어 넘어뜨려 뇌진탕을 입게 한다. 엄씨는 우연한 사고로 가장해 보험사에서 34만원을 타냈다.
얼마 후 엄씨는 남편에게 또 다시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후 잠에 들자 오른쪽 눈을 옷핀으로 찔러 실명시킨다. 그의 범행은 갈수록 악랄해졌다. 남편 이씨가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안 돼 다시 수면제를 먹였다. 잠이 깊게 들자 냄비에 기름을 올려놓아 펄펄 끓인 뒤 얼굴에 그대로 들이부었다.
엄씨는 주위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척 했다. 남편이 퇴원한 지 몇 달 후에는 주방용 칼로 복부를 찔러 자해한 것처럼 꾸몄다. 결국 남편 이씨는 2002년 3월 다발성장천공과 장간막파열 등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고통스런 생을 마감한다.
엄씨는 2년 여 동안 58차례에 걸쳐 모두 2억8천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엄씨에게 남편은 그저 돈벌이용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엄씨는 두 번째 먹잇감을 찾았다.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임아무개씨(31)를 만났다. 엄씨의 외모와 다정다감한 말투에 넘어간 임씨는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두 사람은 2002년 5월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엄씨의 첫 남편이 사망한 지 약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엄씨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속이고 조작했다.
결혼사실은 물론 학력, 경력, 가족관계 등도 거짓으로 꾸몄다. 자신은 명문여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생활을 했다고 소개했다. 또 어머니가 자기 앞으로 10억 원 정도를 따로 보관하고 있다며 부유층 자녀처럼 행세했다.
이를 믿게 하기 위해 SUV차량인 쏘렌토를 일시불(3200만원)로 임씨에게 사주면서 호감을 샀다. 엄씨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임씨에게 빼낼 보험금을 생각해서 ‘투자개념’으로 봤기 때문이다.
2002년 11월, 엄씨는 남편인 임씨에게 음료수에 탄 수면제를 먹였다. 첫 남편에게 했던 수법을 그대로 답습했다. 임씨의 정신이 혼미해지자 뒤로 밀어 전치 4주의 부상을 입혔다. 얼마 뒤에는 다시 수면제를 먹인 후 잠들자 오른쪽 눈을 침으로 찔러 영구 실명시켰다.
엄씨는 임씨 가족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간호하는 척 했다.
혼인신고도 남편이 병원에 있을 때 구청에 혼자 가서 처리했다. 결국 임씨는 2003년 2월 병원에서 치료 중 상처가 악화돼 사망했다. 엄씨는 두 곳의 보험사에서 상해와 사망재해보험금 3900만원을 타냈다. 최소 수 억 원은 타내려고 했었으나 남편이 일찍 숨지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고 말았다.
건강했던 임씨가 엄인숙과 결혼한 후 각종 사고와 질병에 시달리며 사망하자 유족들은 의심을 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신부검까지 의뢰했으나 타살을 의심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엄씨가 눈물을 보이며 “영혼결혼식까지 올리겠다”고 하자 유족들은 의심을 접었고 오히려 미안해했다. 당시 엄씨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여서 동정심까지 유발했다. 하지만 엄씨는 임씨의 장례식이 끝난 뒤 보험금을 챙기고는 시댁식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엄씨의 세 번째 먹잇감은 다름 아닌 친어머니였다. 2003년 7월, 엄씨는 고향인 강원도에 찾아갔다. 엄씨는 “엄마, 이거 몸에 좋은 거야”라면서 음료수에 수면제를 탄 석류주스를 권했다.
딸이 건넨 음료를 마신 어머니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엄씨는 준비해 온 주사 바늘을 꺼냈다. 그리고 어머니의 양쪽 눈에 망설임 없이 바늘을 찔렀다. 이로 인해 엄씨의 어머니는 시력을 잃게 된다.
엄씨의 네 번째 먹잇감은 친오빠였다. 같은 해 11월 엄씨는 오빠에게 “술 한 잔 하자”고 말한 뒤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게 했다. 오빠가 잠들자 양쪽 눈에 염산을 넣어 실명시켰다.
두 사람의 병명은 세균에 급성으로 감염돼 시력을 잃게 되는 봉와직염, 죽은 엄씨 남편들과 같았다. 엄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 링거 호스에 이물질을 넣어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다.
사치와 향락에 젖어 돈을 탕진한 엄인숙은 가족들이 살던 아파트까지 몰래 팔아넘겼다. “새 집으로 이사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입주 날이 다가오자 무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집에 불을 질러 오빠와 동생을 살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실제 2005년 1월, 엄씨는 실명한 오빠에게 수면제를 탄 주스를 마시게 한 후 방에 있는 이불에 불을 붙였다. 다행히 불은 집 전체로 번지기 전에 진화됐지만 오빠와 남동생은 중화상을 입었다. 엄씨는 가족들을 희생양 삼아 보험사에서 모두 2억400만원을 받아냈다.
집을 팔아넘긴 후 갈 곳이 없어진 엄인숙은 자신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던 강아무개씨(여)에게 접근한다. 보험금으로 수 억 원을 챙겼지만 정작 강씨의 월급은 몇 달간 주지 않았다.
엄씨는 강씨를 찾아가 “한 달간만 머물게 해주면 밀린 월급도 다 갚고 집에서 신세진 사례금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엄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강씨는 엄씨에게 방 하나를 내줬다. 이때부터 엄인숙은 강씨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엄씨는 처음부터 강씨에게 밀린 월급을 줄 생각이 없었다.
약 한 달이 지난 후 엄씨는 강씨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 집에 불을 질렀다. 수건에 불을 붙인 뒤 거실 소파에 던졌다. 강씨의 집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강씨 가족 4명 중 남편이 사망하고, 강씨와 두 자녀들은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마터면 일가족 모두 불에 타 죽을 뻔했던 것이다. 엄인숙은 오갈 데가 없는 자신을 거둬준 강씨 가족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단란했던 강씨의 집안을 하루아침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엄씨. 그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씨와 자녀들이 입원한 화상 전문병원 계단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시도하다가 발각돼 경찰에 넘겨졌다.
엄씨는 경찰서에 붙잡혀와 조사를 받으면서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더니 극도의 불안감을 보이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경찰은 엄씨를 둘러메고 급히 병원에 옮겼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자 경찰은 엄씨가 왜 이러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씨의 남동생이 받았다. 뜻밖이 말이 들려왔다. “형사님, 저희 누나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죽거나 다쳐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엄씨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들려줬다. 마치 공포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했다.
경찰은 동생 말이 사실인지 관련 기록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병원진료기록과 보험지급내역을 샅샅이 찾아봤다. 엄씨 동생 말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엄인숙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졌다. 그때서야 이상한 행동도 모두 연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엄인숙은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불치병을 앓는 세 살배기 아들을 보살필 사람이 없다”며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 엄씨에게 속아 넘어간 판사는 그를 석방했다. 엄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된다.
엄씨의 범죄 본능은 멈추지 않았다. 오빠의 병원비를 결제할 때가 되자 또다시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누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한 명을 떠올린다.
첫 번째 남편이 병원에 있을 때 알게 된 유아무개씨(여)였다. 유씨에게 전화를 걸어 반가운 척 하다 “집에 한 번 놀러가겠다”고 말하고는 며칠 후 찾아갔다. 유씨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건넨 뒤 가방을 뒤져 신용카드를 훔쳐내 오빠의 병원비를 결제했다.
아들의 병원비가 필요해지자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의 여자친구인 전아무개씨를 노렸다. 엄씨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씨에게 다이어트에 좋다며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인 후 핀으로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하게 했다. 전씨의 가방을 뒤져 신용카드를 꺼낸 뒤 아들의 병원비 900만원을 계산했다.
두번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엄씨의 아들은 임신 6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부터 허약 체질이었던 아들은 심혈관 관계 질병인 가와사키병을 심하게 앓아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결국 2005년 4월1일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은 4월19일 엄인숙을 다시 검거해 구속했다. 체포 당시 엄씨는 또 다른 남성을 만나고 있었다.
엄씨는 형량을 줄일 궁리를 했다. 그는 경찰이 범행을 추궁하자 “딸이 사망하자 우울증에 걸려 마약에 취해 벌인 일이다”고 말했다. 즉 마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경찰은 엄씨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소변과 체모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검사결과 엄씨의 몸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심신미약을 노린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밝혀진 것만 보면 엄씨는 3명을 살해하고, 4명을 다치게 했으며, 5명(사망·부상자 포함)의 눈을 멀게 했다. 이를 통해 보험금 약 5억9600여 만원을 챙겼다. 엄씨는 정신감정을 받았는데 반사회성 성격장애(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40점 만점에 40점을 받았다. 역대 흉악범 중 최고 점수다.
엄인숙은 재판에서 방화치사상, 중상해 등 9가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시키는 형량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는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허영심과 집착이 부른 끔찍한 살인극
강원도가 고향인 엄인숙은 1976년 2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문제아로 찍혔다. 고등학교 때는 다른 학생의 돈을 훔친 것이 들통 나 강제로 전학 당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엄씨는 서울에서 보험설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인성은 밑바닥이었지만 엄인숙의 외모는 연예인 뺨칠 정도였다. 키 170cm에 늘씬한 몸매, 하얀 피부, 여기에 얼굴까지 예뻤다. 참한 인상에 여성스런 말투까지 겉보기엔 거의 완벽했다.
그를 본 사람들은 “남자라면 한 번쯤 호감을 느낄 정도의 외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겉과 속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엄씨는 허영심과 집착이 강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도 철저히 속이고 조작했다.
결혼사실은 물론 학력, 직업, 가족관계, 재산 등을 거짓으로 꾸며 상대방의 환심을 샀다. 또 어머니가 자기 앞으로 10억 원 정도를 따로 보관하고 있다며 부유층 자녀처럼 행세했다.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천사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이를 위해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는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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