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 살인범’ 33년 후 보복한 마을주민들
데이비드 거트(54)는 살인자다. 그는 21세였던 1985년 7월 사우스웨일즈에 있는 여자친구 제인 피콜의 집에 찾아갔다.
그녀는 “술 약속이 있다”며 거트에게 17개월 된 아들 치밍 셰크를 돌봐달라고 했다. 피콜이 술을 마시러 나간 사이 아기가 울자 거트는 잔인하게 학대했다.
아기의 발바닥을 때리고 발로 차며 온몸을 구타했다. 거트는 이렇게 여자친구의 아기를 무자비하게 때려 죽였다. 얼마 후 집에 들어온 피콜은 참혹한 아들의 시신을 집안 서랍장 아래에서 발견한다.
피콜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거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부검결과 아기는 목과 팔이 부러지고 간과 비장이 다쳤고 두개골이 골절되는 등 다발성 부상으로 숨졌다. 거트는 처음에는 “아기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병리학자인 오웬 윌리엄스 박사는 아기의 부상은 주먹질, 발차기, 넘어짐, 던짐, 혹은 이것들의 조합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피콜이 집을 비운 뒤 “집안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아기를 학대해 살해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거트는 “아기가 울자 홧김에 주먹이 나갔다”고 자백했다. 그는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2017년 거트는 32년을 복역하다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웨일즈 지역의 한 마을에 가명을 쓰며 정착했다. 정체불명의 남성이 마을에 들어오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가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거트는 “나는 군인을 죽이고 억울하게 감옥에 갔다”며 “사실 누명을 쓴 피해자다”라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금세 탄로나고 만다.
마을 주민들은 우연히 그의 정체를 알아낸다. 우편물을 통해 거트의 정확한 이름을 확인한 후 구글 검색으로 그의 과거를 밝혀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범행에 경악하며 경멸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갓난아기 살해범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웃 3명이 직접 단죄하기로 결심하고 살인을 모의했다. 여기에는 데이비드 오스본(51), 대런 에베셈(47), 이이안 할리(23)가 가담했다.


얼마 후 거트가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자 3명은 그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를 집으로 유인한 후 흉기로 살해했다. 이들은 거트의 죄질이 흉악하다는 이유를 들며 칼로 150여 차례 찔렀고, 숨이 끊어진 후에도 26번을 더 찔렀다. 거트가 죽자 시신에서 손톱까지 잘라냈다.
이들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현장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피 묻은 옷을 없앴다. 또 거트의 시신을 차량에 싣고 불을 질러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 후, 이들 3명은 거트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이후 재판이 이어졌고 에베셈과 할리는 범행을 부인했다.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본만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현지 법원은 체포된 3명 중 1명은 무죄, 나머지는 실형을 선고했다.

이후 거트가 살해되기 직전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영상 속 거트는 청바지에 흰 셔츠와 짙은 색의 쟈켓을 입은 매우 평범한 모습이었다.
남웨일즈의 카에필리 기차역을 따라 걷는 모습도 포착됐다. 영국 BBC는 거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CCTV 영상을 보도하며 “아이를 죽인 살인자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갓난아기를 잔인하게 죽인 거트. 그는 형기를 마쳤으나 정착한 마을의 이웃들에게 아기에게 했던 것처럼 잔혹한 보복살인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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