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유그룹 다단계판매 사기사건
국내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사기는 일명 ‘조희팔 사건’이다.
조희팔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다단계판매를 통해 투자자 3만 명으로부터 약 4조원을 가로 챘다.
피해규모가 워낙 커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으로 불린다. 경찰은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이 죽었다고 결론 내렸지만, 지금까지 숱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조희팔 사건이 터지기 전 까지 ‘최대 사기’ 타이틀은 제이유그룹 회장이던 주수도가 가지고 있었다. 조희팔이 사기금액은 더 크지만 피해자 숫자와 우리 사회에 미친 악영향은 주수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주씨는 1956년 11월 울산에서 염전 집 2남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영어 과외지도교사를 하며 고액과외로 돈을 벌었다.
입소문이 나자 1970년대 말부터 학원가로 진출했고, 영어강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1980년대 초에는 서울 강남에 직접 학원을 설립해 학원 경영에나서기도 했다.
그는 학원 사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7년에는 신민주공화당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변신을 꾀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다단계 판매업에 눈을 뜬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유명 다단계판매 업체였던 숭민그룹(SMK)의 사업자로 발을 디디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주씨는 일영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사업자를 끌어 모았다.
그의 다단계판매 방식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사업자에게 ‘꿈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았지만 사막의 신기루와 같았다. 주씨는 1999년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업체 이름을 ‘주코’로 변경했으나 2002년 또 다시 같은 혐의로 구속된다.
그는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해 상호를 제이유네트워크로 변경하고 ‘소비생활 공유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다단계판매 기법을 창안했다.
물건을 많이 사면 수당을 더 많이 받아간다는 일종의 ‘돈 놓고 돈 먹기식’이다. 제이유는 투자자들에게 고액의 배당을 약속했다. 예를 들어 100원어치 물건을 구매하면 적립포인트 50%를 부여해 250원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 말을 믿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주수도는 공유마케팅을 기존의 피라미드와는 차원이 다른 ‘신개념 마케팅’이라고 소개했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만족하는 방식이라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달변가였던 주수도는 자신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그는 매일 아침 화상 강의를 통해 전국의 사업자들에게 소비를 독려했다. 회사 강당에서는 사업자들을 모아 놓고 공유마케팅을 알리는 강의를 이어갔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도 공유마케팅에 끌어들였다.
제이유는 지역 특산물을 사주겠다는 미끼를 던지며 지자체에 접근했다. 민선 단체장들은 제이유의 회원수에 놀라며 서둘러 제휴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제이유의 본사에 마련된 연출 테이블에서 주수도와 손 맞잡고 사진을 찍었다.
제이유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을 얼굴 마담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2004년 5월 45명으로 ‘자문위원단’을 출범시켰다. 1년 뒤에는 62명으로 늘어났다. 주로 언론계, 학계, 법조계, 정계, 재계 출신 인사들로 구성됐다. 여기에는 전직 판사, 전직 군 장성, 전직 국정원 간부, 전직 경찰 간부, 전직 고위직 교육공무원, 현직 언론사 간부, 인기 연예인 등이 참여했다.
전직인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제이유의 공유마케팅과 주수도를 극찬하며 홍보 대사로 나섰다. 현직 고위층 인사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면서 ‘제이유 전도사’ ‘제이유 방패’가 됐다. 이들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주수도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은 것은 ‘돈’과 ‘조직’ 때문이다.
전직 국회의원들은 재기하기 위해서 돈과 조직이 반드시 필요했다.
‘조직이 있는 곳에 정치인이 있다’는 말처럼 정치인은 조직에 약하다. 수십 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제이유가 내민 손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얼굴만 내밀고도 엄청난 돈을 챙길 수 있다는 유혹도 있었다. 즉 전직 정치인들에게 제이유는 꿩 먹고 알 먹으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안식처였던 것이다.
실제 제이유는 얼굴마담 대가로 막대한 돈을 벌게 해줬다.
개미 사업자들에게 약속한 후원수당은 주지 않았어도 자문위원들에게는 꼭꼭 챙겨줬다. 이들은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제이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제이유와 주수도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갔다.
제이유는 틈나는 대로 이들을 앞에 내세웠다.
각종 행사에 연사로 내보냈으며, 사내방송, 사보, 소식지 등에 홍보도구로 이용했다. 제이유의 리더사업자들은 이런 홍보도구를 미끼로 사업자들을 끌어들였다. 얼굴마담이 필요했던 제이유와 조직과 돈이 필요했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궁합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언론도 춤을 췄다. ‘제휴’, ‘공동캠페인’, ‘토종업체 살리기’ 등의 명목으로 제이유의 돈을 받았다. 국내 굴지의 한 언론사는 제이유의 돈으로 경제 월간지를 창간했다. 제이유에 회사의 지분 일부를 판 언론사도 있었다. 몇몇 언론사는 제이유의 부정을 눈감아주고 광고를 받거나 더 큰 대가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유와 특수관계에 있었던 언론사들은 ‘최고’, ‘최다’, ‘혁명’, ‘기적’ 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사용하며 주수도와 제이유의 공유마케팅을 극찬했다. 제이유의 홍보 마케팅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수많은 개미사업자들은 언론보도를 믿고 제이유에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방위 물량 공세에 힘입어 제이유는 다단계판매 업계 부동의 1위인 암웨이를 제쳤다. 2004년 매출이 1조5천억 원에 육박하면서 ‘매출 1위’에 올라섰다. 언론에서도 주수도가 성공신화를 이룬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제이유는 또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문을 닫을 때까지 계열사가 20여개에 달했다. 유통업에 진출해 ‘제이유백화점’을 개장했고, ‘제이유마트’를 브랜드로 슈퍼마켓 체인사업에도 나섰다. 식기제조업체인 ‘세신’의 지분을 확보한 후 이 기업을 통해 석유시추사업을 하는 지구지질정보에 투자했다.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한성에코넷’, 보험판매를 하는 ‘포라리스’, 온오프라인 교육기관 ‘한샘닷컴’, 골프와 콘도 등을 거래하는 ‘알바21회원권거래소’, 나노기술 상품 개발업체인 ‘넵클러스터’, 택배업체인 ‘주코택배’, 고급 인력‧사외이사 알선업체 ‘유니맥코리아’ 등도 운영했다.
영화 기획‧제작사업에도 뛰어들어 ‘JU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영화 ‘써클'(주연 강수연), ‘까불지마'(주연 최불암 오지명 노주현) 등을 제작 지원했고, 써클에는 주수도가 조연배우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2004년에 열린 제41회 대종상 시상식을 협찬하면서 조직위원장을 맡아 감독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그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도 후원했다.

이렇게 주수도는 한 편의 ‘성공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모래성에 쌓은 탑이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했을지 모르나 속에서는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2004년부터 재무구조가 엉망이었다. 제이유는 2004년에 총1조4천9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위인 한국암웨이 보다 5천330억원이 더 많았다. 그러나 제이유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부채비율은 마이너스였다.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할 정도로 재무상태가 위험단계에 있었다.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 회사의 유동부채가 총자산보다 880억원이나 많았고, 회사의 총부채가 총자산보다 901억 원이나 많았다. 자본도 전년보다 897억원이 감소했고, 부채도 4천694억원이나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업손실과 손순실도 각각 920억원과 921억원이 발생했다. 매출액 중 6천250억원이 선수금 매출이었다. 선수금은 돈은 받았으나 물건이 지급되지 않은 매출로 부채나 다름없다. 제무재표만 보더라도 제이유는 정상적인 재무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이유는 회사로서 더 이상 존속하기가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업자도 속출했다. 주수도는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수당은 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수표에 그쳤다. 납품단가를 지급하지 못해 도산하는 업체들도 줄을 이었다. 제이유의 모래성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2006년 4월 제이유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활동을 벌였다는 ‘국정원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보고서에는 제이유그룹과 주수도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방법과 규모, 비자금의 사용처, 정·관계 로비 과정 등이 적혀 있었다. 주씨가 2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검찰, 경찰, 공정위 공무원, 정치권 등에 100억원대 로비자금을 사용했다는 것이 골자다.
사망상태에 이르렀던 제이유는 ‘국정원 보고서’를 통해 숨통이 끊어졌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주수도는 검찰이 출석통보를 하자 이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고, 한 달여 만에 검거됐다. 검찰은 주수도가 11만여 명으로부터 2조 1천억 원을 가로채고 회삿돈 284억원을 횡령했다고 밝혔다.
제이유의 로비 실체도 일부 드러났다. 로비 대상에는 정계, 관계, 언론계 등이 총망라됐고, 밝혀진 액수만 72억 원이 넘었다. 로비 수법은 단순 금품 전달 외에 공익성 법인 후원금, 상품 납품 기회 제공, 고문료, 협회 지원금, 투자금 형식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차명 통장을 만들고 도장과 비밀번호를 통째로 넘겨 추적을 어렵게 했다. 피해자의 숫자, 피해규모, 구속전력, 범죄수법 등으로 봤을 때 중형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였다.
주수도는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해 만반의 대비를 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 제갈융우 전 대검 형사부장, 김영진 전 대구지검장, 박태석 전 동부지검 차장 등 30여명의 법조계 인사로 호화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변호사 비용만 최소 수 십억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실제 주수도의 변호인단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검찰은 피해규모가 적지 않고, 죄질이 무겁다며 주수도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징역 12년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최소 15년형 이상을 기대했던 제이유 피해자들은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형량이 선고되자 불만을 터트렸다.
유사한 다른 사건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010년 회사자금 1천898억원을 횡령한 전 동아건설 자금부장에게 법원은 징역 22년 6월과 벌금 100억원을 선고했다. 2018년 3월에는 투자자 1천200여명으로부터 투자금 600억원을 가로챈 지엔아이(GNI) 그룹 회장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나 피해금액이 제이유 보다 훨씬 적은데도 형량은 거의 두 배이거나 같다.
제이유에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돈을 받은 유명인들도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주수도에게 법률개정 등의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은 것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이아무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는데 그쳤다.
제이유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염아무개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3천만 원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국세청 간부에게 제이유그룹의 청탁을 해주는 대가로 수억 원의 후원금을 받은 서아무개 목사는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에 반해 제이유에 투자했다가 빚더미에 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자살한 피해자만해도 10여명에 달한다. 제이유에 투자했다가 2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날리고 6천여만 원의 카드빚을 진 전직 군인 출신의 60대 남성이 한강에 투신해 사망했다. 3억 원을 투자한 후 빚더미에 오른 가장이 일가족 3명을 승용차에 태우고 바다로 돌진해 모두 숨지기도 했다.
주수도가 세운 제이유개발(113억 원)과 제이유네트워크(109억 원)는 법인세 체납 상위에 올라있다. 2015년 10월 서울시는 주수도의 은닉재산 70억 원을 찾아내 압류하는데 그쳤다.
이런 가운데 주수도는 교도소 안에서도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는 은닉재산을 가지고 다단계 업체를 설립한 후 옥중경영을 통해 피해자 1천329명으로부터 투자금 명복으로 1천137억원을 받아챙겼다. 2020년 5월 법원은 주수도에게 추가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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