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헬멧 쓴 그놈’ 인천 용현동 모자 살인사건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살던 김아무개씨(58·여)는 2003년 남편과 사별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던 3층짜리 원룸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매매가는 10억원 정도였다. 김씨는 이곳에서 미혼인 장남 정아무개씨(32)와 함께 지냈다.
2013년 8월13일 오전 8시30분쯤, 김씨가 갑자기 사라진다. 김씨는 집 근처 새마을금고 현금인출기에서 20만원을 인출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후 행방이 묘연했다. 휴대전화는 집에 두고 나간 상태였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김씨의 장남 정씨도 같은 날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는 이날 오후 7시40분쯤 친구와 전화통화 후 행방불명됐다. 지갑과 시계, 승용차는 집에 있었다.
정씨는 경기 지역에 있는 한 전자부품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8월14일에는 재계약을 하는 날이었지만 그는 이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 사이에 어머니와 장남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모자가 실종된 지 3일째인 8월16일 오후 4시40분쯤 차남 정영석(29)은 인천 남부의 한 경찰 지구대를 찾아가 “어머니가 없어졌다”며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정씨는 결혼한 뒤 어머니가 살던 원룸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남동구 논현동에 분가해 살고 있었다.
그는 경찰에서 “지난 13일 어머니 집에 찾아갔더니 형만 있었고, 15일까지 있는 동안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어머니에 대해 물어봤으나 ‘등산 갔다’고 말해 이틀 후 다시 찾아갔으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모자가 같은 날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볼 때 범죄 관련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리고 차남 정씨를 의심했다.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지고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형과 관련된 진술에는 모순이 있었다.
그의 말대로 형을 15일까지 봤다면 통화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장남의 통화기록은 13일 이후에 전혀 없었다. 경찰은 8월20일 차남을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했다. ‘어머니’, ‘형’ 등의 단어가 나올 때 음성(거짓) 반응이 감지됐다. 경찰은 차남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차남 정씨는 금전 문제로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어머니와 갈등을 빚으면서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형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차남은 또 불면증을 앓고 있으며 게임중독 증세도 있었다.
어머니와 형이 살던 집 화장실에서는 세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범죄 서적들이 가득했다. 경찰은 단순 실종이 아님을 직감했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차남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리고 8월22일 새벽 정씨를 긴급 체포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범죄와 연관성이 없다고 잡아떼며 결백을 주장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결국 경찰은 15시간 만인 이날 오후 4시에 증거불충분으로 정씨를 석방했다. 그는 경찰서에 나오면서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등 치밀했다.
경찰은 정씨를 석방한 지 한 달 만인 9월22일, 그를 다시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한다. 정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함께 집행됐다. 경찰은 “차남 정씨가 자살을 기도했고, 범죄 혐의가 상당한데다 출석에 불응할 우려가 있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이 차남 정씨를 범인으로 본 이유는 크게 4가지였다.
1.금전적인 문제로 어머니와 갈등
퀵서비스 배달원인 정씨는 어머니와 금전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생활고와 채무에 시달려온 데다 도박에 손을 대면서 돈이 절실했다. 경찰에서 확인해보니 정씨는 지난 1년여 동안 강원랜드에 32회 출입했다.
금융기관과 개인 채무 등이 8000여만 원에 달했다. 그는 어머니와 형이 사망하면 총 7000여 만원을 보험회사에서 받을 수 있었다. 정씨가 진 빚과 비슷한 금액이다.
어머니 김씨 주변 인물들도 돈과 관련해 들은 이야기를 경찰에 증언했다. 한 친목계 회원은 김씨의 말을 빌어 ‘7월20일쯤 둘째아들이 아무 말도 없이 출입문 번호 키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와 5000만~1억 원 정도를 해달라고 했다’ ‘돈을 해주지 않으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등등. 김씨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경찰은 최근 어머니가 사준 빌라를 팔아 둘 사이의 관계가 나빠졌다는 진술을 정씨 부인에게 확보했다.
2.경북 울진에 시신 유기 가능성
정씨는 어머니와 형이 실종된 이튿날인 8월14일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들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이 어머니 집 주유소 부근에 설치된 CCTV에서 정씨가 형의 차를 몰고 경북 울진을 다녀온 것을 확인했다.
정씨는 이를 완강히 부인해 왔으나 고속도로(동해IC→제천→군자IC) 통행료 영수증에서 정씨의 지문 2개가 발견됐다. 또 울진의 모 식당 부근과 주유소 인근 CCTV에 찍힌 정씨의 차량이 통과한 시간을 분석한 결과, 네비게이션 시간으로 51분인 구간을 무려 5시간30분이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은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가 매장 등 유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과수는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즉 영상물에 나타난 차량에 운전자만 탔는지, 적재물까지 실렸는지를 분석하는 실험을 했다. 이를 위해 뒷좌석과 트렁크에 각각 125kg(김씨 55kg, 형 73kg )의 무게를 실어 각 50회씩 차량을 지나도록 한 뒤 찍힌 영상물을 분석한 결과, 96% ‘적재물이 실려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3.사건 전후 차남 정씨의 이상한 행적
정씨는 사건 발생 전인 11일 PC를 포맷하고 휴대전화를 초기화 했다. 디지털 증거분석결과 PC에서 ‘가족 간 명의이전 서류’, ‘가족명의 주택담보대출’, ‘인천 뉴질랜드 달러 환전’ 이라는 검색어가 나왔다. 이뿐 만이 아니다.
사건 발생 전에 면장갑 2개, 청테이프 4개, 표백제(락스) 등을 구입했다. 8월19일에는 어머니 김씨의 금반지를 처분했고, 다음날에는 형 소유의 뉴질랜드 화폐 300달러를 환전했다.
김씨 집에 있던 등기권리증에서는 정씨의 지문도 발견됐다. 실종된 형 소유의 컴퓨터 모니터, 노트북, 카메라, 외장하드 등과 같은 기종을 검색 한 뒤 판매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정씨가 5∼7월 자신의 컴퓨터로 시사고발 방송프로그램 등 29편의 동영상을 내려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친족 간 살해를 다룬 영화를 포함한 살인·실종 관련 프로그램이 다수였다.
4.정씨 아내 “남편이 살해한 뒤 시신 유기했다” 진술
정씨 아내는 경찰에서 “남편이 시어머니와 아주버님을 살해한 뒤 시신을 경북 울진군 인근에 유기했다”고 실토했다. 정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심적 압박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했다.
정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쳤지만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또 방어권을 위해 고모의 도움을 받아 검사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한다.

정씨는 막무가내였다. 경찰이 유력한 증거를 들이대도 “난 모른다”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등 더 이상의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정씨의 아내 김씨를 설득했고, 경찰에 협조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또 모자의 시신을 발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어머니 김씨의 시신은 9월23일 오전 9시10분쯤 정선군 신동읍 음지리 마차재 근처에서 발견됐고, 장남 정씨의 시신은 24일 오전 7시50분쯤 경북 울진군 서면에서 발견됐다. 장남의 시신은 토막난 채 버려져 있었다. 그러자 차남 정씨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고, 범행일체를 자백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경찰은 수사에 적극 협조했던 정씨의 아내를 공범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남편 정씨가 범행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락스 등을 구입할 때 아내 김씨가 주도적으로 고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또 초기화된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정씨 부부가 “울진에서 사체를 태우면 어떨까. 어머니 집을 담보로 몰래 대출을 받으면 불법인가”, “캠핑했을 때처럼 땅 파서 위에 자갈을 깔자. 톡으로 이런 거 보내면 안 되는데” 등 아내 김씨가 행동 지령을 내리면서 범행을 주도하고 있었다.
김씨는 당초 “남편이 어머니와 아주버님 시신을 유기할 때 수면제를 먹고 차안에 자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시신을 넣은 듯한 가방을 남편이 묻은 것 같아 경찰에 알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가 공범 뿐만 아니라 사건을 주도했다고 보고 경찰서로 불러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이어 김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다.
그런데 김씨는 경찰서에 나와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를 이상히 여기고 119구급대를 불러 김씨의 집으로 갔으나 집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김씨는 현관문 손잡이에 목을 맨 채 숨져있었다.

김씨가 왜 자살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황상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심리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것에 무게가 실렸다.
정씨는 존속살해와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정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배심원들도 대부분 ‘사형’ 의견을 냈고, 국민참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정씨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데다 수법도 극악무도했다”며 “반성하지도 않고 아내에게 범행을 떠넘기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는 1심에 불복, 항소했다. 이듬해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정상참작의 요소가 있다는 점, 반성하는 점 등을 감안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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